feat.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회
자연
1.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2.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생겨난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따위의 존재. 또는 그것들이 이루는 지리적, 지질적 환경
3.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
4.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나 본질
위와 같이 '자연'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3번째 풀이까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로 시작하며 뜻을 정의하고 있다. 무릇 자연이란 사람의 힘이 가해지지 아니한 상태, 생겨난 모습 그대로의 것이나 상태를 뜻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세상에 나와 살아가면서도 자연의 일부로 만족하지 못하고 끝내 자연에 사람의 힘을 더한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고 싶어 한다.
공들여 꾸미고도 사람들 눈엔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듯 어딘가 멋스러운 데가 있는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패션을 선호하고 어딘가 달라졌으나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변모의 성형을 하고 싶어 한다.
타고난 대로 두는 것이 자연인데 그 자연에 애써 무엇인가를 더하고 변형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싶어 하니 인간의 마음은 참 아리송하다.
물 밑 요란한 발차기는 숨기고 물 위로 드러난 고고한 자태만, 그다지 애쓰지 않고도 원래 그게 기본값이었다는 듯 한 마리의 우아한 고니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그러나 물밑 버둥거림이 없다면 어찌 고니의 아름다운 자태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겉으로 드러난 자연스러움이 절대로 그냥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린 자주 간과한다.
지난 행주산성 휘호대회 현장 결선에서 심사위원장님이 하신 말씀이 오래 남았다. 서예 학자면서 미학 박사라는 그분은, 글을 쓸 때 유념할 점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 글자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도록 글자의 강약과 먹의 진함과 연함을 활용할 것.
- 두껍고 여린 선들이 서로 엇갈리도록 써서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쓸 것.
- 그렇게 하려면 붓 끝을 세워서 쓰는 연습을 할 것.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쓴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그분의 말씀이 크게 와닿았다. 특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쓰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여전히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들여도 글씨의 멋을 살리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분의 말씀을 들은 뒤 긴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에 조금은 변화가 생겼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고 전체적인 숲을 생각하며 써보자는 쪽으로.
물론 전체 글숲의 모습이 아름다우려면 한 글자, 한 글자의 형태와 짜임이 조화로워야 함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숲을 떠올리며 나아가는 방식과 나무를 한 그루씩 세워가며 어쩌다 만들어지는 숲을 만드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 기질상 후자 쪽에 가깝긴 하지만(글 쓰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아 길을 헤매기 일쑤...^^;;) 내가 그리고 싶은 숲의 모양을 머릿속에 그리며 물 흐르듯 흘러가는 글을 쓰다 보면 내 개성이 담긴 나만의 글숲을 완성할 날도 오겠지. 조태호 작가가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에서 말했듯,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히는 지혜와 이를 해내는 최선과 소망, 결과를 기다리는 인내 후에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니까.
자연스럽다
1.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고 이상함이 없다.
2.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자연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들이다. 아직은 꾸며 쓰는 노력을 기울여야 꾸안꾸 글씨를 흉내라도 낼 수 있는 단계지만, 언젠간 너무 힘들이거나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연의 모습과 닮은 글과 글씨를 쓰고 있는 나를 만나고 싶다.
그러려면 그때까지 물밑 버둥거림은 필수.
오늘도 난 버둥거린다.
글과 글씨 모두에서.
p.s.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회에 제 글도 전시된다고 해요. 저는 전시회 마지막 날에 잠시 방문할까 합니다. 반가운 얼굴 한 분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설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