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친구와 첫 상담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항상 물어본다. "어떤 과목을 가장 좋아하세요?" 친구의 대답은 다양하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좀처럼 수학이 가장 좋다는 말은 듣기가 힘들다. 간혹 '수학은 싫은 건 아니에요.' 정도는 들을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평범한 학생 친구들은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 구구단을 누가 누가 더 빨리 외는지 우쭐댔던 시절도 있었을 텐데. 나름대로 수학을 가르치면서 정립된 나만의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는 3단계 가설이 존재한다.
1단계. 나눈다구요?
(좌) 꾸질꾸질 신신애가 내 사탕을 두 개나 가져간다구? / (우) 선생님, 피자 나누지 말고 저 혼자 다 먹으면 안 돼요?
더하고 빼는 건 재밌다.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상자에는 사탕이 2개, 저 상자에는 사탕이 3개, 모두 꺼내면 5개다. <지붕뚫고하이킥>이라는 시트콤 에피소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수학 시험 0점을 맞은 해리가 신애에게 갈비를 양보하기 싫어 개수를 정확하게 셈하는 것을 보고 현경이 그를 활용하여 수학을 가르친다. 해리한테 갈비가 10개 있는데 신애가 3개 먹으면 몇 개 남지? 와 같은 실생활 활용 문제를 통해 해리는 다음 시험에서 일취월장한다. 곱하기도 해볼 만하다. 노래를 붙여 구구단을 외우고, 구구단을 외자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또 곱셈도 시각적으로 쉽게 확인을 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수월하다.
복병은 나누기에서 나타난다. 사칙연산의 끝판왕 나누기. 단순한 나눗셈은 괜찮다. 예를 들면 6개의 사탕을 3명에게 나누어준다던지 하는. 하지만 괜찮은 문제들을 풀며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자연수가 아닌, 분수의 나눗셈이 나온다. 이제 막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4학년들에게 첫 좌절을 느끼게 한다.
우선 왜 나눠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가장 많이 나오는 피자. '선생님 왜 피자 나눠 먹어야 돼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도 피자는 괜찮다. 하나의 피자를 쪼개서 8조각을 만들었는데, 그중 한 조각이니까, 1/8이라고 쓰기로 약속해 본다. 하라는 대로 빈칸을 눈치껏 채우다 보면 동그라미가 쌓여간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나눗셈을 하게 된다. 나눈다는 게 확실히 뭔지 모르면서. 그러나 분수를 받아들이지 못한 친구들은 1차 수포자의 길로 빠지게 된다.
2단계. 수학에서 영어와 그림이라니?
(좌)미지수를 네모와 세모로 표현하는 시대는 끝났어. 나 엑스가 나왔다구. / (우) 수학 시간이야, 미술 시간이야?
1단계에서 잘 버텨준 친구들은 생각보다 방정식까지는 잘 헤쳐나간다. 방정식은 흥미롭다. 초등학교 때는 모르는 수를 유치해 보이게 네모(□)라고 칭했는데, 아주 멋진 x라는 미지수 친구를 만나게 됐다. 왠지 모르게 어른이 된 기분이다. 네모 대신 x라는 문자를 얼마나 사용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x를 그리는 방법도 천차만별. 아주 멋지게 엑스를 그려내고 싶은 친구들이 참 많다. 그런 흥미로움으로 방정식까지 잘 버텨내다 보면(사실은 초등학교 과정과 이어져서 크게 어렵지는 않다. 숫자가 복잡해졌을 뿐.), 갑자기 x의 친구 y를 소개한다. 그리고 이들을 함수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후로 그림을 엄청 그려댄다. 숫자를 마구 넣어서 점을 찍더니 선으로 연결하라고 한다. 그림(그래프)은 수학을 풀어내기 위한 아주 좋은 그리고 필수적인 도구이지만 아이들은 생각한다. 수학하는데 웬 그림을 이렇게나 그려야 하나요. 중학교 1학년 1학기 마지막에 잠깐 배우는 원점을 지나는 일차함수 그리고 1/x꼴의 유리함수를 넘어서면(교육과정에서는 정비례와 반비례 정도로 쉽게 가르치고 있다.), 2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일차함수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루트와 함께 이차함수, 포물선 모양의 곡선을 그려야 한다. 사실 차근차근 배우면 아주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집합 단원이 고등학교 교과과정으로 올라가 버리면서 함수의 대응을 쉽게 설명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냥 외울 뿐이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어서 만나는 함수는 너무 낯설다.
3단계. 어마 무시한 고등학교 수학
(좌) 초면에 반말은 좀.... / (우) 함수 체조로 쉬어가기!
'중학교 때는 잘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알록달록했던 문제집은 채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출제자는 말도 짧아졌다. 'x를 구하시오.' 정도로는 말해줬었는데 이젠 'x를 구하라.' 다. 중학생 때는 수학이 싫다한들 그래도 공부를 했던 친구라면 수학 시험을 망쳐봤자 80점은 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굳은 결심을 하고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봤는데 웬걸, 점수는 반 토막이 났다. 같은 문제집을 풀어도 풀어도 모르는 문제가 어디서 튀어나온다. 사실 틀리는 문제는 계속 틀린다. 초등학교 나눗셈 빈칸 채우기를 하던 시절부터 눈치로 적당히 푸는 방법을 외워 풀었으니, 혼자 논리 있게 어떤 개념을 사용해야 하는지 알 턱이 없다. 주관적인 견해지만, 고등학교 수학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가장 어렵다. 앞으로 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기본적인 내용을 다 때려 넣은 단원이기 때문이다. 뭔 공식은 왜 그렇게 많고, 증명은 해도 해도 이해가 안 가는지. 1학년 1학기 첫 단원부터 20여 개의 곱셈 공식을 설명하면 마지막쯤엔 나까지 넉다운이다. 중학교 때도 분명히 풀었던 방정식은 푸는 방법은 같은데 갑자기 너무 어려워져 있고, 그림(그래프)을 그리지 않으면 풀어낼 수 없는 문제까지 나온다. 점점 수학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앞의 내용도 모르겠는데 뒤의 내용은 왜 배우는 거지? 그렇게 첫 학기를 보내고 나면 2학기에는 고대하던 집합이 나온다. 중학교 교육과정에 집합이 있을 때는 조금씩 여러 번 나눠 배워서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친구들도 '나 집합은 알아.' 하며 우쭐대던 시절이 있었는데, 늦게 배운 집합은 이미 집합이 없이 정립된 개념 사이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헤집어 놓는다. 그다음 또 함수. 일차함수, 이차함수는 이제 지겹지? 하며 무리함수와 유리함수를 선보인다. 그리고 얕잡아봤던 경우의 수는 하나라도 놓치는 부분이 생기면 죄다 틀린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수학을 포기할 법한 고비가 많지만, 보통 이 정도 따라온 친구라면 아까워서라도 수학 공부를 계속해나가기 때문에 수포자 가설은 3단계에서 마무리가 된다.
번외. 수학이 없는 삶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 게 아니라면 보통 수학과 멀어진 삶을 산다. 산수만 남을 뿐, 수학은 이제 멀고도 낯선 존재다. 하지만 수학은 우리 삶 곳곳에 숨어있다. 삶과 연결되어 있는 수학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이미 수학과 멀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나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 수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수학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논리력과 사고력,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너무 진부하지만 중요한 사실이다. 구해야 하는 답을 찾기 위해 문제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힌트를 발견한다. 발견한 힌트로 떠올릴 수 있는 공식을 사용하거나 계산을 한다. 나온 식들을 연관 지어 답을 구한다. 이런 논리적인 과정이 없으면 수학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물론 직관적으로 답이 나오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그런 직관을 갖기 위해서는 위의 과정이 선수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수학은 문제를 틀리지 않고 잘 맞히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진짜 수학은 맞는 답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답이 틀려도 답을 도출해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원에서는 모든 문제를 노트에 풀이 과정을 적어 풀어야 하는데, 이렇다 할 식이 없는데도 정답을 고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냥 그럴 것 같아서.' '다른 답들은 이상해서.'가 그 이유다. 넌센스 퀴즈의 답을 고를 때 쓰는 말이 아니라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수학 답을 고를 때 할 수 있는 대답이라니. 그렇게 맞힌 문제는 조금이라도 변형되면 틀릴 수밖에 없다. 문제를 풀기 위해 논리적인 사고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책에 쓰여있던 대로 뭔지는 몰라도 문제에 나와 있는 숫자를 대충 넣었더니 답이 나오네? 와 같은 풀이 과정은 아주 기본 드릴 문제에만 적용된다. 양질의 문제를 풀려면 문제를 푸는 마인드를 논리적인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수학이 싫은 쪽에 가까운 보통의 친구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배운 수학 문제 풀이 방법 때문에 이를 쉽게 고치지 못한다. 언젠가는 이런 수학 교육 방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하는 과목이 수학이 될 수 있는 날들을 그리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