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인>, <펜트하우스>, 영화 <윤희에게>, <세 자매>의 접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말이 있다. 요즘에야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속담으로 분류되지, 20년 전으로만 가도 이 가부장적 속담은 소위 '먹히는' 말이었다. 최근 <미나리>로 국내외 영화제를 그야 말로 휩쓸어버린 윤여정도 영화 <화녀>를 비롯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대거 출연하면서 인기를 모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윤여정은 똑똑한 척 하고 건방지다"는 말이었다고 하니. 그러나 최근 콘텐츠 흐름은 바뀌었다. 암탉이 울면 울 수록 관객 수는 높아지고, 시청률은 폭증한다. 서럽게 울던 암탉은 이제 타인의 구원 없이 자립가능한 존재로 미디어에서 다뤄지고 있다. 콘텐츠의 여풍(女風) 속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세 여성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복수와 분노로 가득찬 <펜트하우스> 속 세 명의 주인공과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고군분투기 <마인>이 그렇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성장기 <윤희에게>와 외모도 성격도 전혀 다른 <세 자매>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특히 이 미묘한 세 명의 인물 구도는 2000년대 유행한 드라마의 멜로 삼각관계와는 전혀 다른 구도를 보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성공하는 콘텐츠 속 여성 중심의 새로운 삼각관계도를 지금 소개한다.
▶ 영화 <윤희에게> : 윤희에게 새봄은 올 수 있을까?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새봄(김소혜 분)의 엄마 윤희(김희애 분)은 오늘도 이른 아침 출근 버스에 오른다. 쳇바퀴 같은 윤희의 삶 속에 일본에 있는 쥰(나카무라 유코 분)의 편지가 찾아오고, 새봄은 쥰과 윤희의 묘한 관계를 파악하고 일본으로 졸업여행을 떠나자고 윤희에게 칭얼댄다. 마침내 도착한 일본. 윤희는 쥰을 만나려 하지만 주저하고, 새봄은 그런 윤희를 위해 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가는데...
윤희에게의 묘한 삼각구도는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특히 새봄의 역할이 그러하다. 새봄은 윤희와 그녀의 옛사랑 쥰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적 존재 그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일본여행을 제안하고, 쥰의 위치와 일정을 파악하고 있는 것도 모두 새봄의 노력덕분이다. 이는 기존의 콘텐츠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의 이해와 지지로 두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과는 반대이며, 특히 보통의 여고생같은 새봄이 어머니의 동성연애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설정은 가히 참신하다고 평가할 만 하다. 새봄으로 인해 겨우 맞닿은 윤희와 쥰. 두 사람은 새로운 봄,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 영화 <세 자매> : 서로 다른 세 자매의 이해와 치유 (티빙)
여기 세 명의 자매들이 있다. 첫째 희숙(김선영 분)은 꽃집을 운영하며 양아치 같은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항상 기가 죽어 있는 그녀의 입버릇은 '미안해'로, 어딘가 암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둘째 미연(문소리 분)은 오늘도 주님의 축복을 기다리며 남편과 함께 두 자녀를 양육 중이다. 이런 그녀에게 괴팍한 성격의 미옥(장윤주 분)은 술에 찌든 목소리로 항상 전화를 걸어오고, 미연은 주님께 기도한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어딘가 이상한 이 세 자매. 세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게 된 걸까?
초반, 영화는 세 자매가 극도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매 간의 연결고리를 철저히 숨긴다. 세 자매 희숙, 미연, 미옥은 그저 다른 하나의 섬일 뿐 직접적인 교류와 만남 없이 영화는 흘러가지만, 세 자매의 캐릭터성을 즐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캐릭터쇼가 끝나갈 때 즈음 세 명의 인물을 연결하는 다리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며 <세 자매>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윽고 세 자매는 드디어 한 컷에 담기게 되고 서로 다른 개성은 묘하게 같은 빛을 내기 시작한다. 세 자매를 어떤 고리로 연결되어 있던 것일까? 세 자매의 묘한 관계 속 그들을 옭아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비밀의 문이 지금 열리려 한다.
▶ 드라마 <펜트하우스> : 대물림된 복수와 날선 삼각구도 (웨이브)
최고의 소프라노 천서진(김소연 분)은 학창시절 청아예술제에서 오윤희(유진 분)와의 대결 끝에 아버지의 편파판정으로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천서진은 오윤희가 노래를 할 수 없게끔 트로피로 그녀의 목을 긋고, 오윤희는 음악 대신 생계를 선택한다. 시간이 흘러 펜트하우스의 헤라클럽 속 천서진은 주단태(엄기준 분)와 불륜을 저지르고, 주단태의 아내 심수련(이지아 분)은 주단태의 악행과 자신의 딸을 죽인 진범을 찾아내려 오윤희와 손을 잡게 되는데...
상류층 사람들의 욕망과 복수를 다룬 드라마 <펜트하우스>. 살인, 납치가 판을 치는 이 극을 이끄는 주인공 3인방의 관계는 배신과 복수의 삼각형을 띈다. 거짓말을 거짓말을 낳고, 범죄는 범죄를 부르듯 <펜트하우스>의 삼각관계는 불안정한 상태다. 때로는 목표 달성을 위한 동맹을 맺지만, 이 관계는 곧 쉽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모래성 같은 이들의 관계를 뒤집는 카드는 돈과 명예, 그리고 자식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다. 여기에 숨겨진 비밀과 조력자들은 판을 뒤집는 조커카드로 등장하며 천서진-오윤희-심수련의 삼각구도를 급변하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몰아치는 전개와 반전, 음모와 전략으로 매 시즌 높은 화제성을 기록한 드라마 <펜트하우스>. 긴장감 넘치는 삼각 구도 속 미소짓는 자는 누구일까?
▶ 드라마 <마인> : 자신의 것을 되찾기 위한 여성들의 이야기 (넷플릭스, 티빙)
대기업 효원그룹의 큰 며느리 정서현(김서형 분), 작은 며느리 서희수(이보영 분)은 돈독한 형님-동서 관계다. 아트갤러리 대표 서현은 희수의 아들, 하준(정현준 분)을 전담할 튜터 강자경(옥자연 분)을 소개해주고, 자경은 희수의 아들에 과잉 집착을 보이며 희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이윽고 튜터를 의심하는 서현과 희수는 자경이 하준의 생물학적 엄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편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한지용(이현욱 분)은 거짓말로 희수의 마음을 달래고, 자경에게 아이를 볼 자격이 없다며 튜터자리에서 그녀를 내쫓게 되는데...
드라마 <마인>은 주말드라마치곤 파격적인 소재를 내걸며 화제가 됐다. 출생의 비밀과 재벌가 소재는 그렇다 쳐도, 서현이 동성애자라는 설정을 내세운 것이다. 효원 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고픈 지용은 서현에게 비밀을 폭로하겠다 발언하며 자경, 희수와 더불어 서현과도 갈등하게 된다. 세 여인은 각기 다른 목표로 지용을 파멸시키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것을 되찾으려 한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여인들의 삼각 구도 속 관계 변화. 그들은 지켜야 하는 것을 위해 서로를 향한 태도를 바꾸며 극의 방향성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희수와 서현, 자경은 한지용의 만행을 밝혀내고 자기 자신의 것(mine)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사실 콘텐츠 속 삼각 구도는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히트작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그랬고, 과거 시트콤의 <세 친구>가 그러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새로운 삼각구도는 오로지 여성을 주축으로 했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세 남성 주인공의 아내, 여자친구로서의 조연이 아니라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연으로서의 여성들의 삼각관계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흥미진진한 삼각구도는 또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보는 것도 좋겠다.<마인>은 넷플릭스와 티빙, <펜트하우스>는 웨이브에서, <세 자매>는 티빙에서, 그리고 <윤희에게>는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에서 즐길 수 있다.
본 리뷰를 포함한 필자의 다양한 리뷰는 OTT 뉴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본 리뷰글 http://ottnews.kr/View.aspx?No=1670528
서현진X라미란 주연의 블랙독 리뷰 http://ottnews.kr/View.aspx?No=1631141
본 리뷰에서 다뤘던 드라마 <마인> 리뷰 http://ottnews.kr/View.aspx?No=164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