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걸 잘 안다. 스스로 그렇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퇴근 후 미친 듯이 춤을 추거나 글을 쓰거나 잠을 참으며 예능을 본다. 스트레스에게 지지 않으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고찰을 토대로 나의 속성을 인정하고 외부에 알렸을 뿐인데 주위 반응이 재밌다. 마치 구경거리가 된 동물원의 동물이 된 기분이다.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면 문제가 없으나,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이런 말을 하면 염려와 동시에 내 눈치를 보거나 경계를 한다. ’그렇게 물러터져서 앞으로 더 큰 일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아,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시구나‘ ’그럼 회사 생활 쉽지 않을 텐데...‘ ’엥 정말요?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스트레스받긴 해요?‘
세상의 어떤 문장들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서울 정도로 힘과 권력이 생긴다. 이를테면 “저는 외로움을 잘 탑니다” “나 사실 그/그녀를 좋아해”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야”같은 말들. 이 말들은 이상하게도 문장이 가진 순수한 뜻과 다르게, 타인에게 인지되는 순간 어떤 프레임에 가려져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저런 말들을 잘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로 말한다. “저 외로움 잘 안타요.“ “그 사람 제 스타일 아니에요!“
분명 사회에 나오기 전엔 나의 솔직함을 말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들어주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든든해서 자꾸만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쏟아내면 뭉친 마음도 풀리고, 그때 함께한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젠 안된다. 그리고 안된다고들 한다.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규칙처럼 ’회사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들 TOP10‘으로 분류되어 SNS상에서 돌아다닌다. 혹은 반대로 어떤 조직에서는 내 이야기를 많이 안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비밀이라고 겨우 꺼낸 이야기가 어느 순간 만인이 알고 있어서 뒤통수를 아주 얼얼하게 맞은 기억이 있다. 분명 조심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지만 그 와중에 궁금하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 누구에게 내 이야기를 해야 안전한 건가?
그렇다고 그 창구가 SNS가 되어버리면 더욱 혼란스럽다. 나의 이야기를 썼다니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몰려와 싸우고 물어뜯기 바쁘다. 도대체 왜 남의 공간에서 다들 난리일까. 나는 그 이유가, 자기 속마음을 더 이상 털어놓지도 이해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가 쌓이고 쌓이다가 절대 깨지지 않을 연필의 흑심처럼 단단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 조금은 고달픈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언제부터 사람과 소통할 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 외에, 공식처럼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외워서 입력값에 따라 결괏값을 추출해야 성공한 인간관계의 기준이 된 걸까. 사람 간의 관계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우정과 사랑의 유통기간이 짧아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나는 손해 본다는 말을 들어도, 특정 상황과 타이밍에 놓이면 내 이야기를, 타인에 대한 소재가 아닌 정말 ‘내 속에 담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멋쩍은 마음에 피하기보단 나 한번, 상대방 한번 진솔한 대화를 주고받으면, 도파민은 덜 충족될지 몰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는 가십거리나 자극에 얽매이지 않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조금씩 마음의 소리를 흘려본다. “저는 사실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고, 사람을 정말 좋아해요. 그렇지만 가끔은 사람이 피곤할 때도 있답니다. 그쪽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