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받고 판다는 것
올해(2022년)는 고추를 850주만 심었다. 작년에 1350주 심었는데 버거웠다. 해서 좀 규모를 줄였다. 농사를 지어보니, 힘들기는 해도 돈이 되는 게 고추였다. 마침 우리 밭이 있는 지역이 주 생산물이 고추라 어느 집 농가나 고추 농사는 기본이었다.
우리도 지역 농민들처럼 홍고추는 공판장을 통해 판매하고, 고춧가루는 지인을 통한 판매하였다. 하루는 지인이 내게 고춧가루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지인은 친정 언니한테 우리 것을 팔아주었는데, 지인 친정 언니가 고춧가루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았다. 고춧가루 사진 밑에 ‘고추씨를 많이 넣었어요?’ 하는 멘트가 덧붙여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게 현명한 대처법인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니요. 방앗간에서 해주는 대로 했는데요.’ 하고 문자를 보냈다.
받는 쪽에서는 문자만 달랑 보내고 말았다고,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다. 작년에도 지인 언니는 우리 고춧가루를 구매해 주었었는데, 그때는 고춧가루 색깔이 너무 예쁘다는 말을 해주었었다. 작년이나 올해나 같은 방앗간에서 빻아서 보냈고, 내 눈에는 작년 거나 올해 거나 거기서 거기인데…. 내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내년 주문이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달랑 문자만 보내고 말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른 대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날은 그랬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받은 사진과 문자와 내 감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속상할까 봐.
생산한 농산물을 돈을 받고 판매하는 일이 농사 4년 차인데도 좀 어색한데, 특히 지인을 통해 판매하는 경우 더 그렇다. 똑같은 고춧가루를 보내도 어떤 사람은 칼칼하게 매워서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맵지 않아서 좀 그렇다 하고. 고춧가루 색깔이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깝다는 사람도 있고, 고추씨를 너무 많이 넣어 빻았냐는 사람도 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농부였지만 선비 같은 분이셨다. 친정에서 농사지어 보내주는 귤을 맛본 이웃들이 맛있다며, 좀 팔아달라고 했다. 내가 전화로 그 이야기를 하자, 친정아버지는 그냥 선물로 주라고 했다. 왜냐고 했더니, 그러는 게 서로 좋다는 거였다. 맛이 있네, 없네, 비싸네, 싸네, 하는 말들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내가 마음이 상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농산물을 판매해보니, 친정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로컬푸드에 갔더니, 농민들이 올해는 고구마 수확기에 비가 많이 와서 저장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걱정되었다. 나는 얼른 고구마를 산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올해는 고구마 수확기에 비가 많이 와서 저장성이 떨어져요. 구입하신 고구마 될 수 있으면 빨리 드세요.’
벌써 다 먹었다거나, 알았다는 답장이 왔는데, 한 군데에서 온 문자가 신경이 쓰였다. ‘저는 두고 먹으려고 많이 구입한 건데 미리 말씀 좀 해주었으면 5kg만 구입했을 텐데 식구가 적어서…’
‘미리 말씀 좀 해주었으면’ 하는 멘트는 알고도 말을 안 했다는 뉘앙스가 느껴져 그냥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오늘 로컬푸드에 갔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올해는 고구마 수확기에 비가 많이 와서 저장성이 떨어진다고요.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드실 건지 몰라서 염려되어 말씀드린 거예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회수해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죄송한데 일부는 회수해 갔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연락이 왔다. 5kg을 회수하고 15000원을 돌려드리기로 했다.
봉투에 15000원을 담고, 그 집 앞으로 고구마를 회수하러 가는데, 어찌나 속상하던지, “야, 너네 농사 안 지어도 살잖아!” 하던 친구 목소리가 골이 울릴 정도로 생생하게 들려왔다. 속상함을 넘어 비참함이 느껴지려고 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맞아. 우리 농사 안 지어도 먹고 살지. 그러니 괜찮아. 가서 웃는 낯으로 회수하고 오자.’
나는 끝내 그날 일도 남편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속상할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