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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Jan 05. 2024

환자분, 다른 치과에도 제발 가보세요.

며칠 전부터 치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비염 혹은 부비동염으로 인해 치통과 안면통증까지 오는 것이라고 치부하고 감기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감기약을 먹고도 자기 전에 진통제 두 알을 먹어야만 잘 수 있는 지경이 되자 치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감기약을 먹은 지 7일째 되는 날,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고 소개받은 동네 치과를 향해 발걸음을 향했다.


이가 너무 아파서 귀까지 아플 지경이라고 말하며 부비동염에 의해서 이가 아픈 건 아니냐고 물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부비동이 아래쪽 어금니까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는 짧은 이야기와 함께 x-ray를 먼저 찍으러 가자고 했다.


치과는 괜히 오기 싫은 곳이다. 어린 딸들도 치과를 가자고 하면 지레 겁을 먹고 드러눕기를 반복하는데 나라도 다를 것이 없었다. 미루고 미루기를 반복하면서 정말 어쩔 수없이 가야 함을 체감해야 목줄에 끌려가는 소처럼 향하는 곳이 치과인 것이다. 해골의 하관이 찍힌 것 같은 x-ray 사진 보면서 치과에서 유일하게 안락함을 주는 의자에 누웠다.


자동기계에 의해 몸이 스르륵 눕혀지고 향긋한 향이 나는 초록색 구멍 난 천이 얼굴 위로 덮였다. 어떤 섬유 유연제를 쓰는지 궁금증을 느끼는 찰나 "아~해보세요"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자동으로 입을 벌렸다.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구강 카메라가 벌어진 입 사이에서 문제의 치아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징~소리와 함께 모니터 앞으로 바로 앉아 어딘가 일반적이지 않은 나의 어금니를 마주했다.


어금니 끝은 치아 파절, 즉 치아의 끝부분이 깨진 상태였다. 그 외 다른 부분은 금이 가 있다고 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렸다. 신경치료를 해서 크라운을 씌우는 것을 할 테지만 금이 뿌리까지 갔을 경우 발치 후 임플란트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상황이 심각했으나 치통에 의해 일상생활이 불가한 나에게 치료를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인의 소개도 있었고 합리적인 가격이라 남편과 상의 후 고민할 것 없이 치료를 감행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어릴 나 지금이나 겁나는 어마무시한 마취주사와 함께 신경치료를 위한 도구들이 세팅되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앞서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다른 치과를 한 번 다녀와 보세요"


귀를 의심할만한 소리를 들었다. 당장 치료하라고 말해도 모자란 판국에 다른 치과에서 견적을 받아보라니. 보통 치과는 손님을 잡으려고 애쓴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양심적인 의사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덴탈 쇼핑하듯 여러 곳을 둘러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곧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가 있었고 내일이면 방학을 맞이하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치료를 만류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치료를 받고 싶다고 말했지만 완곡한 거절을 당했다. 치과에서 환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의사들의 말에 현혹될 수 있다고. 그러니 다른 의사에게 한 번 더 점검을 받아보고 정말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오시라고 했다.


반강제적으로 치과를 나와 도로변에 섰다. 어디로 가야 하지? 알고 있는 치과는 여기뿐이었는데 전화기를 들어 지인에게 새로운 치과를 급하게 소개받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그것도 바로 길 길건너에 치과가 있었다. 두려움의 대상이라 관심을 두지 않아서 몰랐을 뿐 하나 건너 있는 게 치과였다.


 처음 갔던 치과보다 시설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느껴졌다. 사람은 하나도 없고 대기실은 넓은 치과. 빠르게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오랜 시간 대기를 해야 했다.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던 치과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나와 같은 손님 시간을 헌납하듯 기다림을 감수해야 했다. 20분이 넘게 텅 빈 대기실에 있던 나는 데스크에 가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물어봤다. 그러자 x-ray부터 찍어보자는 말이 나왔다. 뭐라도 하고 기다리니 조급한 마음의 물이 껴져 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렸다. 그냥 다른 곳을 갈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내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마주한 의사는 추가 촬영을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첫 번째 방문했던 치과에서와 달리 좀 더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500원 동전크기만 한 엑스레이 판을 입 안에 넣고 치아 뿌리를 측면에서 찍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구강 카메라를 이용하여 치아를 찍었다.  


사진을 본 선생님은 이에 거즈를 대더니 아픈 곳이 있을 때 이야기 하라고 했다. 몇 군데 물었을 때는 괜찮더니 통증을 유발하는 곳이 있었다. 역시나 파절이 난 곳에 거즈를 물었을 때 저릿한 통증이 동반됐다. 사진을 보아하니 파절이 난 곳 외에도 금이 가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유리에 금이 간 것처럼 치아에 발생된 금이 뿌리까지 이어졌을 경우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앞선 병원에서 들었던 설명보다 구체적인 사진자료와 설명이 있어서 이해가 더 쉬웠다. 아니, 다른 병원에서 이야기를 듣고 왔기 때문에 더 이해가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병원에서는 잇몸을 여기저기 만지더니 뿌리에 영향이 없을 것 같다는 의견에 힘을 줬다. 물론 치아 뿌리에 간 금은 신경 치료를 하면서 확인해 봐야 알 것이지만 찍었던 사진들과 다양한 검진을 통해 내린 의사 선생님의 의견에 믿음이 갔다.


무엇보다 손길에 신뢰가 갔다.


산부인과와 마찬가지로 의사의 손길에 민감한 것이 치과다. 예민한 부위이기 때문에 거칠게 다루는 곳에는 발검음이 닿질 않는다. 처음 치과 선생님의 친절한 배려는 감사했지만 입안을 파헤치듯 강하게 만지는 손길에 걱정이 앞섰다. 신경치료 같은 큰 시술을 하게 될 경우 과연 괜찮을지 지레 겁부터 들었다. 그에 비하여 두 번째 병원에서는 차분한 선생님의 태도와 믿음을 주는 말씀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있었다.

 

소액이 아닌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치과이기 때문에 의사의 섬세함 및 병원의 분위기를 두 번째로 하고 25만 원이 더 저렴했던 첫 번째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방문한 나를 보고 간호사들이 '정말 다시 오셨어요?'라는 표정이었다. 치료를 받기 전, 두 번째 병원에서 설명받은 것을 토대로 크라운 가격에 보충재를 포함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보충재를 포함하고도 25만 원이라는 차이라면 더 이상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설명은 보충제를 포함하지 않은 가격을 안내받았던 것이었다. 이로써 병원 간 비용차이는 15만 원이었다.


그러나 비용보다 큰 간극은 의사의 입장 차이였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이미 나를 임플란트 환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용 부분에서 정확히 전달받지 못한 것도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불안을 일으키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았다.


물론 두 번째 병원에서도 신경치료를 하다가 발치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충분한 자료와 설명이 있었기 때문에 시술하다 발치를 할 수 있겠다고 마음에 준비를 했다. 그렇치만 치료를 함에 있어서 불안함보다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주었기에 15만 원을 더 주더라도 두 번째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단 돈 천 원이라도 싼 곳을 찾으려고 항상 최저가를 찾아서 물건을 찾아왔던 나였다. 그런데 심각한 치아 상태 앞에 서게 되니 더 저렴한 곳보다는 돈을 더 주더라도 신뢰를 주는 곳에 몸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피를 보게 되는 일인데 자칫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치료를 받기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두 번째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첫 번째 병원에서 의사의 말을 곱씹어봤다. 의사 선생님이 제발 다른 곳에서 견적을 받아보라고 하셨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투명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막에는 나를 진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다 달았다. 앞다투어 치료를 하려고 환자를 유치해도 모자랄 텐데 그 의사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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