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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Apr 27. 2024

친정 엄마가 <범죄도시 4>를 보고 왔다.

"카톡"


부모님과 함께 하는 카톡방에 알림이 울렸다. 사진이 2장 왔다고 알리는 소리에 창을 열어보니 어두운 공간 안에 팝콘과 회덮밥 사진이 있었다. 친정 엄마는 건강검진을 마치고 친구분들을 만나신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들과 영화도 본 것일까? 방금 문자가 왔기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영화 봐?"

"응, 이제 곧 시작해 아직 광고 중이야"

"누구랑? 엄마 친구들이랑?"

"응"

"어떤 거?"

"범죄도시?? 라던데"


재밌게 보시라는 말과 함께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영화라니.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60년생이라면 대부분 그럴 테지만 어려운 형편에 장녀로 태어난 엄마는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직장을 나갔다.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일을 시작하시더니 시집을 와서도 가게를 차려 장사를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쯤 시골로 이사를 가면서 잠시 전업 주부를 하셨지만 딸의 적응 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일을 하러 나가셨다.  엄마는 환갑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일을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었다.


엄마가 하는 일은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 달을 보며 출근해 밤하늘의 별을 보며 퇴근하는 일이 당연했다. 명절에도 예외없이 엄마는 소처럼 일하러 무거운 발을 이끌고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엄마와 내가 늘 우스개 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여름 오전에 태어난 소띠는 일 할 팔자가 늘어질 거라고. 엄마는 그 말에 순응을 하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일을 해왔다. 그렇게 소처럼 쉼 없이 달려오던 엄마에게 잠시 휴식이 주어졌다. 무릎 수술을 계기로 강제로 외양간에 앉혀진 것이다. 자주 보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우리를 이어준 것은 전화뿐이었다. 전화선을 통해 엄마의 안부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문화 센터에 가서 여러 강좌를 듣거나 친구를 만나서 카페라도 가시면 좋을 텐데 일 만 하며 지내온 엄마는 갑자기 텅 비어 버린 시간에 붕 뜰 수밖에 없었다. 갈비도 뜯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놀아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시간을 어찌 쓸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하셨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일이 없다고 해도 늘 바쁘다. 잡초는 영양분을 주지 않아도 농작물보다 한 뼘 더 크게 자라기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때마다 해야 할 일이 지척에 널려 있으니 직장에 나가지 않아 쉰다 하여도 자리 보전하고 누워 계실 분이 아니셨다.


휴일이 되어도 일상은 아빠를 기준으로 돌아가셨다. 친목 모임을 나가도 아빠 중심으로 만남이 이뤄지다 보니 엄마는 가끔 푸념 섞인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도 어려서부터 친구들하고 놀았으면 좋았을 텐데, 일만 하느라 참 바빴어"


이제는 아이 둘의 엄마가 된 내가 딸들이 친구들을 만난다고 하면 많은 생각이 앞선다. 어떤 놀이를 할지, 괜찮은 친구인지 등등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느라 머리가 쇤다. 친정엄마가 영화를 본다고 자랑하듯 보낸 문자를 보는데 물가에 내놓은 딸이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기쁨과 걱정이 공존했다. 친구분들을 만나서 영화는 어떻게 보게 된 건지 어떤 영화를 보는지 무슨 이야기로 즐거우셨을지 들뜬 마음으로 걱정을 했다.


엄마가 보낸 메시지에 걱정하는 나와 달리 아빠는 잘했다는 의미로 엄지 척 이모티콘을 날리셨다. 주말이지만 근무 일정이 있으셨던 아빠는 엄마의 외출을 격하게 응원하는 모습이었다. 오후가 되어 엄마가 영화를 잘 보고 왔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영화 재밌게 잘 봤어요?"

"너무 재밌더라!!!"

"오 잘 됐네요~그런데 지금 어디예요?"

"아빠가 논에 물 주러 가야 한다고 해서 가는 중이야~"


구름 타듯 즐거웠던 친구들과의 데이트를 짧게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셨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엄마의 안부를 들으니 알 수 없는 안도와 아쉬움이 공존한다. 가족을 항상 우선하는 친정엄마에게 오늘과 같은 일탈이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분들과 영화도 보고 마동석 사진 앞에서 해맑게 찍은 사진을 딸에게 전달하는 카톡이 더 늘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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