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의 취향에 맞게 선물을 사야 한다는 압박감과 타인과 비교되는 내 선물의 초라함이 기념일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5월이 가장 힘들다. '친구 누구는 게임기를 받았데'를 시작으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집 아이 선물과 내가 해주는 선물이 비교 대상에 오른다. 어버이날은 받아서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프로필 사진에 넘의 자식들이 챙겨준 선물을 보고 괜스레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스승의 날'은 어쩐지 다른 기념일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가르쳐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방법을 몰라 헤매는 건 어릴 때나 엄마가 된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네 선생님이기에 아이가 스스로 챙긴다면 무리가 없을 테지만, 마음은 한가득이면서 말로만 챙기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는 엄마의 몫이다. 선물에 대한 센스가 없는 엄마는 다가오는 기념일이 두렵기만 하다.
스승의 날이 있기 며칠 전이었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며 딸이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카네이션 브로치를 사 왔다.
'저걸 그냥 어떻게 드려.. 브로치 드린다고 좋아하나.. 옷에 달지도 않을 텐데...'.
그러나 아이가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알기에 엄마의 발품을 팔아 다이소에 가서 인형과 간식 몇 가지를 사 왔다. 옷에 직접 달면 불편할 것 같은 카네이션 브로치를 인형에 매달아 놓으니 세트였던 것처럼 빛나고 예뻤다.
작은 카드에 선생님께 카드를 썼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뻔한 글이지만 일학년 아이가 그은 획 하나하나마다 선생님에 대한 감사가 그려졌다. 그날 오후 학교 선생님께 문자로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아이가 준 편지 잘 받았습니다. 편지 외에 선물은 돌려보낼게요. 감사합니다"
작은 선물조차 받지 않는 선생님께 아이의 편지가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6개월 동안 다니고 있는 필라테스에서 스승의 날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 놓으면 마구잡이 뽑기로 개인 레슨권을 주는 행사였다. 개인 레슨권이 탐나기보다는 이 기회에 평소 좋아했던 강사님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냉큼 펜을 집어 들었다.
'선생님, 평소 수업 잘 듣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배우며 진심으로 운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필라테스는 호흡이 중요한데, 우아하면서도 강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끌어주시니 올바르게 자세로 운동에 임할 수 있어서 좋아요. 깨알 운동 상식도 정말 감사해요!'.
평소에는 운동이 끝난 후 '안녕히 계세요' '수고하셨습니다'밖에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지라 다른 회원들처럼 나서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내 마음을 전달해 준 종이 한 장이 고마웠다. 별 말 아닌 것 같지만 상대를 생각하며 쓰는 동안 다시금 그 사람을 생각하게 했고, 포스트잇에 적힌 몇 글자였지만 선생님에게는 앞으로 가르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스승의 날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했지만 제대로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좋은 선물, 남 보기에 센스 넘치고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면 아예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치부해 왔다. 하지만 선생님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쓰다 보니 '물질적 선물'도 좋지만 결국 진심을 담은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선물은 상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다. 상대가 받아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주는 이도 받는 이도 기뻐한다. 하지만 물건이 내 마음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할 수 없기에 여운이 남는 오랜 기쁨을 선물하려면 '편지'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을 내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꾹 꾹 눌러쓰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고민하고 써내려 가는 시간이 '축하하거나 기릴 일이 있을 때'라는 기념일의 뜻을 더없이 기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