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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May 13. 2021

젖이 나쁘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시어머니께서 나의 몸조리를 도와주셨다. 산모는 잘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하루에 여섯 번 정도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특히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어머님께서는 미역국을 큰 대접에 한가득 담아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나는 어머님 표 밥상을 받으면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는데, 임신 중에 찐 살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모유 수유를 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체험이었던 것 같다. 내 가슴에서 주기적으로 맑은 젖이 뚝뚝 떨어졌고, 아이는 젖을 힘차게 빨았다. 앉아서 먹이기도 했고, 피곤할 때에는 아이와 같이 누워서 젖을 먹였다. 배 불리 젖을 먹고 난 뒤 아이는 스르르 잠에 빠져 들곤 했다. 나는 모유 수유를 하면서 휴식을 취했던 것 같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부터 인생이 늘 고달팠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행정고시를 준비하거나 대학원 공부를 했다. 늘 공부의 연속이었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모유 수유를 하면서 강제적으로 휴식을 할 수밖에 없었고, 모처럼 제대로 쉬는 느낌이었다. 특히 출산 이후 한 달가량 어머님께서 돌봐 주셨기에 더욱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따금씩 아이가 젖을 빨고 있을 때, 어머님께서 ‘젖이 나쁘다’고 하셨다. 나는 몹시 속이 상했다. 내 젖이 나쁘다고 비난을 하시다니. 어머님께서는 도대체 왜 내 젖을 나쁘다고 하시는 것이지. 내 젖이 영양분이 부족하다는 것인가. 그러면 내가 음식을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수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아이가 약 7개월쯤 되었을 때, 어머님께서 다른 일로 ‘나쁘다’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그때의 의미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님의 나쁘다는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젖이 나쁘다’는 말은 ‘젖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사랑하는 손자가 젖을 먹고 나서 배가 충분히 차지 않을까 봐 염려하셨던 것이다. 나쁘다와 부족하다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내 젖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었다면 나는 그다지 마음 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과 나는 각자의 언어체계를 갖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님과 며느리의 대화에 사용할 수 있는 번역기라도 있었다면 좋았겠다.

일 년 남짓 첫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아이가 내 젖을 오물오물 빨 때 얼마나 행복하던지. 아마 내 인생에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배가 고프면 열심히 젖을 빨았다. 그러다가 배가 좀 차면 젖을 빼고는 벽에다 붙여 놓은 그림을 보거나 시계추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을 빠는 시늉을 했다.

젖이 매일 원활하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아이가 원할 때 젖이 충분히 불어있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분유를 먹여 보았다. 그런데 결국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지는 못했다. 아이는 젖병 꼭지를 몇 번 빨아 보더니 이후에는 혀로 젖병 꼭지를 밀어냈다. 그리고 결국 젖만 먹게 되었다.

첫째가 돌 무렵일 때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경산에서 서울까지 통학을 했다. 새벽에 나서서 서울에서 수업을 듣고 저녁때 기차를 타고 경산으로 돌아왔다. 저녁 6시경에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탔는데, 그 시간에는 하루 종일 젖을 먹이지 못했기 때문에 젖이 퉁퉁 불어서 심하게 젖몸살을 앓았다. 죽을 것처럼 아팠다. 어느 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화장실에 가서 젖을 짜냈다. 당시 내게는 유축기가 없었고, 나는 손으로 젖을 짜냈다. 그런데 젖이 사방으로 튀었고 기차 화장실 전체에 젖이 묻었다. 코레일 관계자께 미안한 마음을 지금에라도 전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내가 세 아이를 낳고 나 자신이 약간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유 수유를 도와주시며, 젖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염려해 주신 시어머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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