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라이프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미미하리라

by SoundLast

2015년 10월 5일 부푼 기대를 안고 회사로 출근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거 같다. 그때 당시에만 하더라도 몸무게가 상당히 늘어있던 상태였는데 내 인생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도착을 하였고 간단히 팀원들과 인사 후 스타렉스를 타고 창고로 이동하였다.


보통 무엇인가를 판매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우리가 무엇을 판매하는지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제품의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첫 번째의 임무일 것이다. 창고에 도착하여 300평 남짓한 창고의 1,2층을 둘러보며 제품 한 개의 가격이 이리도 비쌀 수 있나 하며 대략 얼마나 출고되고 어떻게 입고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들었던 것 같다.


“창고에 재고가 상당히 많네요”

“음 그렇지. 많이 나가고 많이 들어와”


모든 제품이 박스에 가려져 있고 이름만 쓰여 있으니 어떤 제품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감도 못 잡고선


“박스가 종이가 아니라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으면 편하겠네요”

“편하긴 하겠지만 불가능하지”


간단히 이런 유의 대화를 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는데, 업무의 주 목표는 창고정리였다. 즉 제품을 보통 2박스 정도 쌓으면 내 키보다 살짝 작은 정도이고, 이걸 4박스를 쌓게 되면 천장과 닿을 정도가 된다. 즉 5박스는 쌓을 수가 없었기에 주로 4박스까지 쌓았다. 3단까지는 혼자 할 수 있으나 4단은 한 명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상태에 아래에 있는 다른 한 명이 제품을 올려주고 사다리에 있던 한 명이 제품을 받아 4단을 쌓는 방식이었다.


이런 류의 작업을 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몸무게가 85~89 정도 되었던 때였다. 걸어가는 것보다 굴러가는 게 더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로 둔했었고, 살집이 많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시큰한 땀냄새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런 창고 정리 작업 중에 오전 배송팀이 복귀해서 같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택배로 보낼 제품 포장 작업이었다. 몇 가지의 방법이 존재했다. 택배 배송을 보낼 때의 가장 중요한 점은 제품의 파손 금지다. 제품들은 모두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이었기에 파손이 되면 다시 입고가 될 때까지 고객은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점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배송 중 박스를 튀어나올 정도의 뾰족함이 있는 곳은 못 튀어나오도록 조치를 취하고, 종이 박스에 맞닿아 있어서 긁힐 수 있는 위치엔 에어캡을 휘둘려 준다거나, 포장재를 덧대어 준다거나 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다 포장이 완료되면 테이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느슨하게 하기보단 힘을 주어 테이프를 늘어뜨린다 라는 생각으로 힘을 실어 테이프질을 해야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을 배워가며 사람들과 말을 섞기도 하고 그러다가 오후 5,6시가 되었다. 본사로 복귀하여 아까 포장했던 제품을 택배차량이 오면 가격을 기사님과 같이 형성하고, 내일 있을 배송에 대한 준비를 하고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처음엔 6시에 끝난 것이 꿈만 같았다. 이게 말이 되나. 정시퇴근. 그 얼마나 가슴 설레고 매번 들어도 듣기 좋은 단어란 말인가. 마지막에 쇼룸, 사무실에 들려 직원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지하철을 탔을 땐 긴장이 풀렸는지 10월인데도 땀이 등을 흠뻑 적셨다. 그날 들었던 정시퇴근의 희열과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드는 한마디는


드디어 해냈다.


오랜 공무원 시험으로 피폐해진 몸과 정신상태에 대하여 스스로 당근이 아닌 채찍을 주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전화도 했다. 무슨무슨 회사에 들어왔는데 예상외로 할만하더라. 그때 친구가 이야기했던 게

“회사가 작으면 어때. 네가 키우면 되지”

그래. 회사 규모는 문제가 안된다. 내가 키워보자. 열심히 하자. 세상에 가장 좋은 미사여구는 모두 다 갖다 붙이고 열정과 정열이 불타올라하고 있을 무렵, 등이 조금 아파왔다. 그래 근육통이다. 얼마나 평소에 안 썼으면 이렇게 조금 움직이고 몸이 아프겠냐 하며 더 채찍질을 가했다.


결론은 한 달 만에 10킬로가 빠졌다. 사람들이 이건 이렇게 들면 편하다 라고 알려주어도 살을 빼고 날렵해져야겠다란 생각에 오히려 어렵게 만세 자세로 들고 뛰어다녔다. 제대 이후 사라져 갔었던 근육들이 조금씩 안녕을 외치며 살 들을 헤치며 나오더라. 물론 한 달 정도 되었을 땐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음을 눈치채긴 했다. 하지만 마음으로만 생각할 뿐 직접적으로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처음의 좋아했던 감정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오버했다. 너무 경솔했다. 물론 며칠 만에 회사의 구조와 업무의 사이클을 알아차린 건 그 회사에 자연스레 녹아드려 노력했던 부분이라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으나, 너무 섣부르게 판단했다. 이 회사를 크게 키우려 생각을 내가 왜 했을까. 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물론 그때 당시엔 정말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안쪽을 잘 파헤칠 경험에 찬 눈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 않아서 사람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그때 당시의 느낌은 좋았던 느낌이었다. 나중에 같은 상황에 같은 위치에 가게 되더라도 분명 좋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또 같은 과정으로 겪더라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어떤 상황에 언제라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힘을 키워야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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