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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미 Oct 20. 2022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 리뷰

영국 시대물 영화&드라마 리뷰(2) 조지안 시대



1995년작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이안 감독의 초창기 필모그래피로 제인 오스틴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국내 번역서 제목은『이성과 감성』이지만 영화는 그냥 원제(Sense and Sensibility)를 음차해서 표기했다. 고전 작품인데도 아직까지 많은 찬사를 받는 영화이며 제 4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제 49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작품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극중 엘리너 대쉬우드 역을 맡은 엠마 톰슨이 이 영화를 위해 소설을 각색하여 각본을 썼는데(엠파이어지 리뷰에 따르면 각본을 쓰느라 5년이 걸렸다고 한다 https://www.empireonline.com/movies/reviews/sense-sensibility-review/) 이후 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엠마 톰슨은 캠브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그녀가 쓴 각본은 원작을 정말 섬세하게 반영하면서 동시에 독창적이다. 영화를 찍는 동안 기록했던 개인적인 일기 『Sense And Sensibility: The Diaries』도 출간되어 있다. 나는 이것까지 읽어 보진 않았다.


리뷰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의 출처:

(1)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aver?code=17458

(2) https://www.filmaffinity.com/en/filmimages.php?movie_id=309352






하노버 왕조와 조지안 시대


『이성과 감성』은 1811년 익명으로 출간된 제인 오스틴의 첫 번째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이 스무 살이던 1795년에 『엘리너와 마리앤』(Elinor and Marianne, 작중 두 여성 주연의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집필한 원고를 개작한 뒤 출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비화를 알고 싶다면:


https://jasna.org/austen/works/sense-sensibility/


작중 시대 배경은 제인 오스틴이 소설을 집필했던 무렵(1790년대)이다. 이때 영국은 조지 3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이 시대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자. 지난 <더 페이버릿> 포스트에서는 스튜어트 왕조의 최후까지 이야기했다. 제임스 1세(&6세)의 마지막 직계 후손이었던 앤 여왕이 죽자 스튜어트 왕조의 대가 끊겼고, 다음 왕위 계승권은 앤 여왕의 독일 방계 친척이면서 하노버 선제후국의 선제후(Kurfürstentum)였던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Georg Ludwig von Braunschweig-Lüneburg)에게 넘어간다. 하노버의 역사에 관해 좀더 알고 싶다면:


https://www.britannica.com/place/Hanover-historical-state-Germany


독일인인 게오르크 선제후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다만 불어, 네덜란드어, 라틴어 등에는 능통했다고 한다.) 대체 왜 언어도 다르고 지리적으로도 먼 하노버 선제후국의 군주가 영국의 다음 군주로 지목된 것일까?


1701년 영국 의회는 권리장전을 개정하여 왕위계승법(Act of Settlement)을 발효시켰다.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뒤 프랑스에 망명 중이던 제임스 2세가 왕위를 되찾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의회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쫓아낸 왕이 다시 왕좌에 앉는 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왕위계승법을 통해 가톨릭 신자는 영국의 군주가 될 수 없다고 땅땅 못박아 버린 것이다. (토리당과 휘그당이 손을 잡고 제임스 2세에게 반발해 명예혁명까지 이끌어 냈던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종교였다. 굳건한 가톨릭 신자였던 제임스 2세는 재임 당시 개신교도들이 대부분인 의회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왕위계승법 전문을 살펴보면 실제로 이런 구절이 나온다:



That whosoever shall hereafter come to the Possession of this Crown shall joyn in Communion with the Church of England as by Law established

영국의 왕위를 잇는 자는 법률에 따라 영국 성공회(국교회)에 동조하고 상통하여야 한다


(전문을 읽고 싶다면: https://www.legislation.gov.uk/aep/Will3/12-13/2)



앤 여왕 사후 약 5~60명쯤 되는 인물들이 나서서 서로 자신이 다음 왕위 계승 서열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지만 모두 가톨릭교도였기에 이 왕위계승법을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앤 여왕의 가장 가까운 개신교도 방계 친척은 제임스 1세(&6세)의 손녀였던 소피아 공주(Princess Sophia of the Palatinate)였고 소피아는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Ernest Augustus)와 결혼했으며, 그녀의 아들이 바로 게오르크다. 소피아가 앤과 마찬가지로 1714년에 죽었기 때문에 게오르크에게 왕위가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스튜어트 왕조 이후 영국에는 하노버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는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연합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의 군주 조지 1세로 즉위한다. 같은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니 영국과 하노버는 동군연합을 맺는다. 이 동군연합은 훗날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조지 1세 이후로 같은 이름을 가진 후계자들인 조지 2세·3세·4세가 연이어 집권했기에 18세기 초-19세기 중반에 걸친, 한 세기가 조금 넘는 이 기간을 조지안 시대(Georgian era)라고 부른다.



조지안 시대를 연 조지 1세는 즉위하자마자 자코바이트 반란(Jacobite Risings)을 겪는다. 자코바이트란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제임스 2세의 추종자들로, 명예혁명도 인정하지 않고 명예혁명을 통해 집권한 공동군주(메리 2세+윌리엄 3세)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예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며 제임스 2세가 다시 영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746년 컬로든 전투(Battle of Culloden)에서 영국군에 패배하고 결국 괴멸한다.


조지안 시대에 영국은 역사에 기록된 굵직한 전쟁들을 겪었다. 조지 2세 재위기에 발발한 프렌치-인디언 전쟁(1754~1763)과 7년 전쟁(1756~1763), 조지 3세 재위기에 보스턴 차 사건(1773)으로부터 점화된 미국 독립 전쟁(1775~1783)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1789)이 일어나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페인, 네덜란드와 연합하고 1792년부터 프랑스 혁명 전쟁에 가담해 프랑스 공화정과 대치한다. 그러다 프랑스군이 우세하자 1802년 아미앵 조약(Treaty of Amiens)을 맺어 일시 화해를 하지만 1년만에 조약이 깨지고 1803년부터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된다.



조지 3세. 이미지 출처: https://www.royal.uk/george-iii


리젠시 시대와 리젠시 로맨스


조지 3세는 1760년부터 1820년까지 60년이라는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영국을 통치했다. 그런데 미국 독립전쟁 이후 건강이 악화되고 정신병이 들어서 재위 후반 9년(1811~1820) 동안에는 아들인 웨일즈 공 조지(조지 4세)가 아버지를 대신해 통치했다. 이 기간을 리젠시 시대(The Regency Era, 섭정 시대)라고 부른다. 리젠시 시대는 메가 히트를 친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을 포함해 수많은 영국 시대물 로맨스의 배경이다. 조지 4세가 공식적으로 섭정한 기간은 언급한 대로 9년에 불과하지만 복식, 가구, 건축 양식의 경향성에 따라 대략적으로 1790년대~1830년대 사이의 비교적 긴 기간(조지안 시대 말기부터 빅토리아 시대 직전까지)을 리젠시라는 용어로 통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통상적으로 리젠시 로맨스라 분류된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만 봐도 출간일은 공식적인 리젠시 시대에 속하지만 1790년대부터 집필되었기에 엄밀히 따지면 조지안 시대 배경 작품들인데, 그냥 리젠시 로맨스라 불린다.)


조지 3세 재위기 영국은 대내외적으로 격동을 겪었다. 나라 밖에서는 아까 살펴보았듯 유럽 열강들끼리 계속 전쟁이 벌어졌고,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자유주의의 물결이 퍼졌다. 내부에서는 1760년대부터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인구가 점진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1770년 탐험가 제임스 쿡이 호주 보타니 만(Botany Bay)에 도착한 이후로는 호주 식민지 개척이 본격화된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펴냈고, 1783년에는 노예무역선 종 호 학살(Zong Massacre)재판이 벌어져 그랜빌 샤프가 주도한 노예제 폐지 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한편 1792년 토마스 하디가 런던통신협회(London Corresponding Society)를 결성해 의회의 민주적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온갖 거대한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영국 국민들 특히 시골에 사는 농민들의 일상적 삶은 매우 팍팍해졌다.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연달아 벌어지는 동안 해외로부터의 식료품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곡물 가격이 치솟았다. 또 1795년 기후 때문에 흉작으로 농작물 수확량이 줄어 기근이 찾아왔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민중 봉기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었다. 이 위험성을 차단하고 농촌 빈민층을 구제하기 위해 지주들과 지방 의회가 합심해 스피넘랜드 법(Spreenhamland System)이 제정된다. (이 법은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차등적으로 세금을 지원해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주는 빈민구제법이다. 노동 생산성이 저하되고 빈민이 오히려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을 저해한 실패한 법이라고 평가되나, 전시에 하층민을 위한 경제적 안전망을 구축해 민중의 분노를 어느 정도 잠재웠다 견해도 있다.)


이 시대의 여성 인권은 말하지 않아도 대충 상상이 될 것이다. 당시 여성의 일생에서 가장 핵심적인 중대사는 결혼이었다. 1756년 윌리엄 블랙스톤은 「영국법 주해」(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라는 논문을 발표해 영국 관습법(Common Law)을 상세히 해설했는데 이 논문은 관습법의 실제적 적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기혼 여성의 법적 권리에 대한 조항(Couverture)이 있다.



By marriage, the husband and wife are one person in law: that is, the very being or legal existence of the woman is suspended during the marriage, or at least is incorporated and consolidated into that of the husband: under whose wing, protection, and cover, she performs every thing;

결혼에 의해, 남편과 아내는 법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 결혼 상태에서 여성의 [법적]존재는 유예되거나, 적어도 남편의 그것에(남편의 [법적]존재에) 포함 또는 합병된다. 그녀는 남편의 날개 아래서 보호받고, 은폐된 채로, 모든 일을 수행한다.


[...] If the wife be injured in her person or her property, she can bring no action for redress without her husband's concurrence, and in his name, as well as her own: neither can she be sued, without making the husband a defendant.

만약 아내가 신체적인 혹은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을 경우, 남편의 동의가 없으면 [남편의 이름으로든 자신의 이름으로든]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고소를 당했을 때도, 남편을 피고로 삼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없다.


(영국법 주 전문을 읽고 싶다면: https://www.gutenberg.org/files/30802/30802-h/30802-h.htm)



결혼과 동시에 여성은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남편에게 철저히 종속되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상속금부터 패물에 이르기까지 아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법적으로는 남편의 재산이었다. 즉 법적으로 기혼 여성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었고, 어떤 종류의 계약도 체결하지 못했고, 발췌한 인용구에 명시되어 있듯 누군가에 의해 다쳐도 고소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고소를 당해도 남편이 없으면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었다. 남편이 죽었을 경우 보통 남편의 재산(토지를 포함한 모든 재산)은 아들에게 넘어갔고, 아들이 없는 경우 가장 가까운 남성 친척에게 넘어갔다. (<센스 센서빌리티>도 엘리너와 매리앤의 아버지 헨리 대쉬우드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 대쉬우드에게 모든 재산이 넘어가면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 죽은 뒤 재산을 물려받은 남성들은 보통 죽은 가장이 부양하던 아내/딸 등 집안 여성들에 대한 책임도 함께 물려받았다. 사실상 여성도 남성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92년에『여성의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출간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시대에 여성이 결혼을 하면 그 이후 삶과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전적으로 남편 손에 달린 문제였다. 당연히 여성들은 결혼을 신중하게 하려고 했다. 남편이 될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했고, 나와 내 가족의 편에 섰을 때 이득이 되도록 평판이 괜찮은 집안이어야 했고, 부유할수록 좋았다. 이런 ‘일등 신랑감’의 조건이야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자체는 18세기에 들어서 크게 변화했다. 웬디 무어(Wendy Moore)에 따르면* 18세기 영국인들은(특히 젊은 세대는) 점차 전통적인 결혼 방식, 즉 부모에 의한 정략결혼이나 중매결혼을 비극적이고 끔찍한 거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연애를 통해 상호 간의 사랑이 확인되어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낭만적 사랑에 대한 기대 심리가 퍼지면서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사랑의 도피를 한 커플이 상당히 많았던 듯하다. 결국 1753년에 21세 미만 커플이 결혼하려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결혼법(Marriage Act)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Moore, Wendy. “Love and Marriage in 18th-Century Britain.” Historically Speaking, vol. 10 no. 3, 2009, p. 8-10. Project MUSE, doi:10.1353/hsp.0.0038.


이런 시대상 속에서 리젠시 로맨스의 큰 주제는 결국 ‘주인공이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 이다. 장르가 로맨스니 당연히 결혼까지 가는 과정에서 낭만적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그러나 결혼은 결코 사랑만으로 성립되지 않으며 여성이 자신의 남은 인생 전부와 가족의 안위까지 걸어야 하는 중대한 도박이라는 냉정한 현실도 크게 부각된다. 물론 이 시대의 남성들에게도 결혼은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인생의 중대사였다. 로맨티스트들이 사랑의 도피를 할 때 현실주의자들은 돈과 가문의 부흥을 내다보며 결혼하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불타는 사랑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게 맞을까, 아니면 미래를 내다보고 안정적인 배우자를 선택하는 게 현명할까.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통해 제인 오스틴이 내린 답을 들을 수 있다.







영화는 헨리 대쉬우드(Henry Dashwood) 씨가 사망하면서 시작한다. 대쉬우드 씨는 영국 남동부 서섹스(Sussex) 지역의 놀랜드 파크(Norland Park)라 불리는 광활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였다. 그는 결혼을 두 번 했는데,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존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딸 셋을 두었다. 대쉬우드 씨가 죽고 나자 상속자인 아들과 손주에게 대부분의 재산이 넘어간다.


[...] Mr. Dashwood had wished for it more for the sake of his wife and daughters than for himself or his son;—but to his son, and his son’s son, a child of four years old, it was secured, in such a way, as to leave to himself no power of providing for those who were most dear to him, and who most needed a provision by any charge on the estate, or by any sale of its valuable woods. The whole was tied up for the benefit of this child, [...]

대시우드 씨는 본인이나 아들이 아니라 아내와 딸들을 위해서 영지를 원했던 것인데, 아들과 네 살짜리 손자한테 그 재산이 묶여버리는 바람에 그에게 가장 소중하며 부양이 가장 필요했던 아내와 딸들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되었다. 그 재산을 담보로 차용도 일절 할 수 없었고, 값나가는 숲도 처분할 자격이 없었다. 재산은 통째로 손자아이의 것으로 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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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 and Sensibility』Chatper 1.
https://www.gutenberg.org/files/161/161-h/161-h.htm

번역본: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저, 윤지관 역, 민음사, 2006. p.11


대쉬우드 씨는 죽기 직전 아들 존을 불러 두 번째 부인과 딸들을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존은 임종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맹세까지 하지만, 깐깐하고 치졸한 아내 패니의 간언에 넘어가 과부가 된 대쉬우드 부인과 그 딸들에게 주려던 재산을 없던 일로 해 버린다. 놀랜드의 저택도 상속자인 존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대쉬우드 부인과 딸들은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가족의 닻이 되어 준 사람은 장녀 엘리너다. 오스틴은 엘리너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Elinor, this eldest daughter, whose advice was so effectual, possessed a strength of understanding, and coolness of judgment, which qualified her, though only nineteen, to be the counsellor of her mother, and enabled her frequently to counteract, to the advantage of them all, that eagerness of mind in Mrs. Dashwood which must generally have led to imprudence. She had an excellent heart;—her disposition was affectionate, and her feelings were strong; but she knew how to govern them: it was a knowledge which her mother had yet to learn; and which one of her sisters had resolved never to be taught.

    이렇게 톡톡히 효과를 본 충고를 한 맏딸이 바로 엘리너인데, 그녀는 깊은 이해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겸비하고 있어서 불과 열아홉인데도 어머니의 조언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그녀는 그냥 두면 대개 경솔한 짓을 저지를 것이 뻔한 대시우드 부인의 안달복달에 자주 맞서서 그들 모두의 이익을 지켜냈다. 그녀는 뛰어난 마음을 가졌다. 성향은 다정했고 감정은 강렬하였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았다. 그것은 어머니도 배워야 할 지혜였고 동생 중의 하나는 한사코 배우지 않으려 한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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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d.
번역본 p.14


엠마 톰슨의 엘리너는 확실히 집안의 기둥처럼 보인다. 그녀는 슬픔에 빠진 어머니를 위로하고, 감정적인 동생 마리앤에게 태도와 행동거지를 조심하라 충고하고, 토라진 막내 마거릿을 달랜다. 하인들에게 집주인이 바뀐다는 사실을 통보한 뒤 이제까지 고마웠다는 마음을 담아 선물을 준비하기까지 한다. 원작에는 없는 이런 장면들은 엠마 톰슨이 엘리너라는 인물을 얼마나 고심해서 구축했는지 보여준다. 엘리너는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가족들의 중심을 잘 잡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본인이 가족을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영화 초반부, 자매들 중 막내인 마거릿은 존 대쉬우드와 그의 아내 패니를 만나지 않으려고 저택 여기저기에 숨어 다닌다. (마거릿은 겨우 13살이며 두 사람이 자기 가족의 모든 것을 빼앗으러 온 약탈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겨우 마거릿을 발견한 엘리너가 동생을 회유하려 할 때 이런 대화 장면이 나온다.


“왜 놀랜드에 살겠다는 거야? 런던에도 자기네들 집이 있으면서.”

“집은 아들에게 상속되지, 딸에겐 안 돼. 그게 법이야. 이리 와서 네 지도책을 가지고 놀자.”

“내 것이 아니라 그들 것이잖아.”


엘리너는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한다. 마거릿의 지적대로 집뿐만 아니라 집안의 식기, 접시, 책 한 권까지 모두 존 대쉬우드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에 평생 살아 왔던 집에서 더 이상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장면도 원작엔 없지만 당대 법의 부당성/차별성과 그 법에 휘둘리는 약자의 현실을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각색이다. 다행히 대쉬우드 부인과 딸들은 친척 존 미들턴 경의 호의로 놀랜드에서 멀리 떨어진 데본셔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된다.





대쉬우드 부인과 딸들이 놀랜드를 떠나기 전 패니의 남동생 에드워드 페라스가 잠깐 놀랜드를 방문한다. 이때 처음 만난 엘리너와 에드워드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버지를 여읜 엘리너는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뱅이고 패니는 남동생이 그런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게다가 에드워드는 엘리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뭔가 미심쩍은 태도를 취한다. 얼마 뒤 에드워드가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겼다며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고 엘리너는 데본셔로 이사하면서, 둘은 아무런 약속도 없이 이별한다.


오스틴은 에드워드를 잘생기진 않은 남자에다 수줍음이 많지만 잘 교육받았다고 묘사한다. 그는 자신이 ‘큰 사람’이 되길 원하는 어머니나 누이의 기대와 달리 그저 조용한 삶을 원하는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다.


[...] He was not handsome, and his manners required intimacy to make them pleasing. He was too diffident to do justice to himself; but when his natural shyness was overcome, his behaviour gave every indication of an open, affectionate heart. His understanding was good, and his education had given it solid improvement. But he was neither fitted by abilities nor disposition to answer the wishes of his mother and sister, who longed to see him distinguished—as—they hardly knew what. They wanted him to make a fine figure in the world in some manner or other. [...] All his wishes centered in domestic comfort and the quiet of private life.

그는 미남이 아니었고 매너도 친한 사이에서나 붙임성이 있었다. 그는 너무 소심한 나머지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 했다. 그러나 일단 수줍음이 극복되면, 그의 몸가짐에서는 허물없는 다정한 마음씨가 묻어 나왔다. 워낙 이해력이 뛰어난 데다 교육으로 더 단단해졌다. 그러나 그는 자기 어머니와 누나의 소망에 부응할 만한 능력도 기질도 갖추지 못했는데, 이들은 딱히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하여간 그가 뛰어난 인물이 되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서 우러러보는 인물이 되기를 원했다. [...] 가정적인 안락과 사생활의 평온만이 그가 바라는 전부였다.

-
ibid. Chapter 3.
번역본 pp. 25-26


에드워드와 엘리너가 성향이 잘 맞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인데 어떻게 그 단기간에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물론 로맨스는 누군가의 사랑이 시작되어야 성립하는 장르다. 쓰는 입장에서야 그냥 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생겼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독자/관객은 언제나 그 사랑이 움트는 단계를 세세히 음미하고 싶어한다. 이 영화에서 둘 사이의 ‘썸’(즉, 서로에게 스며들어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 엠마 톰슨의 각본은 오스틴이 생략한 ‘썸’ 일부분을 창조해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다. 또한 이안 감독은 원작 설정상 ‘잘생기지 않은’ 에드워드 역에 처진 눈매와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미남 휴 그랜트를 캐스팅했다. 주연 배우의 매력으로 다소 갑작스러워 보이는 사랑의 개연성을 보강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단 나한테는 그 전략이 통했다. 에드워드는 객관적으로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남자인데 휴 그랜트의 소년 같은 미소와 약간 하찮아 보이는 쭈굴한 태도와 펭귄핏 복식이 나의 판단력을 흐트러뜨렸다. 결국 결말쯤 되어선 에드워드가 그래 뵈도 제법 귀엽고 나름 진국인 남자라고 납득해 버렸다. (윌러비만큼 쓰레기는 아니지만 에드워드도 일종의 어장질(?)을 해서 애먼 여자 둘이나 마음 고생을 시키는 남자인데도 말이다. 역시 인간은 책임감을 좀 갖추고 일말의 양심만 지키면 회생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각각 ‘이성’과 ‘감성’을 상징하는 듯한 자매다. 엘리너는 러닝타임 내내 가정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며 가족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준다. 윌러비가 마리앤에게 청혼하지 않고 떠났을 때 대쉬우드 부인, 마리앤, 마거릿이 각자 방에 들어가 통곡하고 엘리너 혼자 계단에 앉아 조용히 홍차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소란 속에서 엘리너는 그저 침묵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울고 싶은 심정이어도 감정을 죽인 뒤 상황이 정리되기를 침착하게 기다린다. 마리앤 말마따나 항상 참고 양보하고 희생하며 견뎌 내는 엘리너는 자신의 행복과 안녕보다도, 다른 그 무엇보다도 눈앞에 닥친 현실을 가장 중시한다. 반대로 열정적이고 솔직한 마리앤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며 스스로를 잘 제어하지 못한다. 오스틴은 마리앤이 신중하지 않고 절제(moderation)를 모른다고 묘사한다.


    Marianne’s abilities were, in many respects, quite equal to Elinor’s. She was sensible and clever; but eager in everything: her sorrows, her joys, could have no moderation. She was generous, amiable, interesting: she was everything but prudent. The resemblance between her and her mother was strikingly great.
    Elinor saw, with concern, the excess of her sister’s sensibility; but by Mrs. Dashwood it was valued and cherished. [...]

    메리앤의 능력은 여러 모로 엘리너의 능력과 맞먹었다. 그녀는 분별력도 있고 영리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너무 열심이었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기쁨에는 절도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이 넓고 사랑스럽고 흥미로운 여성이었다. 신중하지 않은 것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놀랄 만큼 빼닮았다.
    엘리너는 동생의 과도한 감성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대시우드 부인은 그것을 뿌듯해하고 애지중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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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d. Chapter 1.
번역본 p.14


마리앤은 어느 날 빗속에서 자신을 구해 준 신사 윌러비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좋아하는 티가 너무 나는 나머지 언니 엘리너가 “윌러비 씨도 네 마음을 다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돌려서 핀잔을 주는데도 열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나 윌러비는 뻔뻔스럽고 속물적인 파렴치한으로 밝혀지고, 마리앤의 마음은 결국 배신당한다.





엘리너와 브랜든 대령처럼 애틋하게 좋아하는 상대가 있는데도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했던 사람들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반면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하면서도 ‘무절제하게’ 내키는 대로 사랑했던 윌러비와 마리앤은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같은 플롯을 공유하지만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이성의 편을 들어 준 오스틴의 명료한 원작(당대 낭만주의 문학 경향에 대한 반발 내지는 뚝심처럼 보이기도 한다)에 조금 더 따스한 색채를 더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들은 마리앤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과 엘리너가 집요하게 붙잡아 오던 이성의 끈을 내려놓을 때다. 마리앤은 윌러비로부터 버림받고 런던을 떠난 뒤 절망에 빠져 빗속을 떠돌아다닌다. 오랫동안 비를 맞열병에 걸린 마리앤은 사경을 헤매고, 엘리너는 마리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항상 침착하게 행동하고 인내심 깊은 엘리너에게도 마리앤이 사라진 뒤 찾아올 외로움과 상실감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엘리너는 의식을 찾지 못하는 마리앤을 지켜보며 눈물을 보인다. “난 할 수 없어. 너 없인 할 수 없어. 난 다른 모든 것들도 견뎌 왔어. 나도 노력해 볼게. 제발, 사랑하는 마리앤, 날 혼자 남겨두지 마.”


마리앤에게는 늘 적절한 충고와 조언을 건네 주고 마음을 차분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줄 엘리너가 필요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항상 모든 일을 참고 견디던 엘리너에게도 답답한 마음을 환기시켜 줄 마리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성과 감성은 대립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가치다. 아무리 이성적인 엘리너라 해도 살다 보면 감정을 끝내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결정적 순간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장면에서, 소설 속의 엘리너는 아픈 와중에 어머니를 찾는 마리앤을 보고 괴로워하며 자책한다. 또 어머니가 늦게 도착해 마리앤의 죽은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오스틴이 묘사한 엘리너는 동생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어머니)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Marianne’s ideas were still, at intervals, fixed incoherently on her mother, and whenever she mentioned her name, it gave a pang to the heart of poor Elinor, who, reproaching herself for having trifled with so many days of illness, and wretched for some immediate relief, fancied that all relief might soon be in vain, that every thing had been delayed too long, and pictured to herself her suffering mother arriving too late to see this darling child, or to see her rational.

   간간이 표출되긴 했지만, 메리앤의 생각은 여전히 어머니 주변에서 종작없이 맴돌고 있었다. 동생이 어머니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엘리너의 가슴은 에이는 듯했다. 그렇게 여러 날 앓아왔는데도 어영부영하고 있었던 것을 자책하면서 당장 치료되는 수가 어디 없나 애를 끓였는데, 이제 곧 백약이 무효가 될지도 모르고 모든 것이 너무 오래 지체되었다고 걱정하였고, 속이 타는 어머니가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이 사랑하는 자식을 보지도 못하거나 정신을 놓아버린 모습을 보게 되는 광경만 눈에 어른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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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d. Chapter 43.
번역본 p.412


한편 남성 주연들도 소설에 비해 감정적으로 훨씬 풍부하다. 에드워드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듯 아예 각본 새로운 장면들을 창조해서 부족한 감정선을 보충해 줬다. 앨런 릭맨이 연기한 브랜든 대령은 오스틴 소설 속의 인물처럼 대체로 과묵하고 진중하지만 사랑하는 마리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미칠 것 같다는 대사를 내뱉으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나중에 마리앤에게 피아노도 선물해 주는 등 전형적인 로맨스 남주의 행보를 보인다. 성격 자체는 소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데 섬세한 연기로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감정선을 구축했다. 캐스팅 자체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이 영화를 세 번 봤는데도 케이트 윈슬렛과의 나이 차이가 거슬려서 개인적으로 마리앤-브랜든 대령의 로맨스는 몰입이 좀 힘들었다…. 그나마 브랜든 대령이 남성 인물들 중 가장 어른스럽고 멀쩡한 축에 속하는데다 절절한 순애보도 보여주고 얼굴도 앨런 릭맨이라 애써 거슬림을 견디며 봤다. (<화니 페이스>랑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이런 영화들도… 나이 차이 나는 로맨스가 다 싫은 건 아닌데 거의 아버지-딸처럼 보일 정도면 좀 거부감이 든다….)

 




우유부단한 에드워드가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러 찾아오고, 참기만 하던 엘리너가 안도감을 제어하지 못한 채 눈물을 터뜨리면서, 이 둘은 먼 길을 돌아 결국 결혼하게 된다. 아무래도 리젠시 로맨스의 바이블은 <오만과 편견>이라고 간주되지만 요즘처럼 옆구리 쌀쌀한 가을날 오스틴의 첫 작품을 멋지게 각색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이 시대의 향기를 먼저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영화 개봉 당시 1995년 뉴욕타임즈 기사. 감독과 각본가가 오스틴의 원작인 리젠시 시대 텍스트에 충실하다기보다 당대(20세기)의 입맛에 맞춰 편집했음을 짚어 주고 있다. 영화와 원작을 비교하면서 감상하면 디테일한 요소에서 더 많은 차이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But Mr. Lee and Ms. Thompson are not above winking at their audience over such musty, Regency-era conventions. Nor are they overly reverential about the text itself, which has been artfully pruned and sometimes modified to suit broader comic tastes.



https://www.nytimes.com/1995/12/13/movies/film-review-in-mannerly-search-of-marriageable-m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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