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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Oct 26. 2023

고양이의 방탕함 <터크와 토마스>

9



 비릿하고 축축한 공기가 터크를 맴돌았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공장 밖으로 나왔다. 창백한 얼굴에 떠오르는 수심 가득한 표정과 식은땀, 이따금 하는 혼잣말들. 일종의 섬망이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에 귀가 먹은 게 아닌가. 그보다 먼저 쓰러진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터크는 몸에 묻은 먼지나 흙탕물을 털어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두 다리로 간신히 서 있을 정도였다. 그의 주변에 털에 윤기가 자르르하고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웅덩이에 고인 물을 할짝거렸다. 고양이는 터크와 눈을 한 번 마주치더니 터크의 발을 슬며시 밟고 사라졌다. 머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실렸다. 무엇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움직여야 했다.

 제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비참함이 터크를 사로잡았다. 손마디마디에 끼어있는 기름자국은 지워질 기미가 없었다. 몇 번을 기워입었는 지 모를 주머니는 이미 찢어진 지 오래였다. 넝마를 걸치고 동생들을 볼 낯짝이 없었다. 차라리 어디 가서 목을 매달고 죽는 편이 나았다. 계속 송곳이 머리를 찌르는 것처럼 욱신 거렸다. 관자놀이 부근을 눌러보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키에르는 농장을 떠나 연락이 되지 않았고, 키티는 남아있지만 잘 지내는지 알 수 없다. 고모부 성격에 키에르 몫까지 일하라고 닦달했을 게 뻔했다. 키에르는 적게 먹고 군말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아이였다. 그만한 일꾼을 찾기 힘드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애가 떠난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생인 키티를 남겨둔 게 어리석었다. 떠나려면 키티도 같이 떠났어야 했다. 기다리고 있는 건 병과 죽음뿐인데.  


 토마스가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터크를 부축했다. 그는 갈색머리에 파리한 안색을 지닌 허우대만 멀쩡한 청년이었다. 휘청거리는 터크를 부축하면서 공장을 빠져나왔다. 손은 이미 굽었지만 누군가를 일으킬 힘은 있었다. 꺼져가는 눈동자에 조그만 불씨를 불어넣을 숨은 붙어있었다. 부모님께 한 소리 들을 작정을 하고 집으로 데려갈 예정이었다.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눈앞에서 더 이상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그만 보고 싶은 심정도 있었다. 토마스는 이미 많은 동료들이 눈앞에서 쓰러지는 걸 봤고 터크는 그중 한 명이 될 수도 있었다. 공장 주변의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은 무엇을 먹고 그렇게 통통한 지는 몰랐으나 눈빛이 섬뜩했다.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고양이들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를 보면 불길하다 여겨 내쫓았지만 고양이들 수는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부모님들 조차 고양이들을 꺼려했다. 고양이를 예뻐하는 건 오로지 토마스의 여동생 동생 하나 뿐이었다. 토마스의 여동생이라고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나이가 어렸을 때 성냥 팔이를 하다가 벌이가 시원치 않자ㅡ이것은 사정이 있는 이야기다. 성냥공장에 간 여자아이들이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보고 들은 집안 사람들은 이럴 바엔 차라리 몸을 파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여동생을 공장에서 급하게 빼왔다.ㅡ얼굴에 숙녀티가 나기 시작하자 제법 돈벌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부모는 모른 척 하고 말리지 않았다. 대신 토마스의 여동생이 유난히 예뻐하는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서 들락날락하며 키우고 있었는 데 싫어하면서도 모른 척 해주고 있었다. 그게 유일한 그녀의 낙이었다. 토마스의 집이나 터커의 집이나 실상 다를 것이 없었으나 토마스의 집이 조금 더 나은 형편이었다. 적어도 토마스는 1페니, 2페니 집에서 잘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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