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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쌤 Oct 12. 2023

남편은 내 충전기

오늘 아침엔 정말 오랜만에 눈이 뿅 하고 떠졌다.

거의 한 달간 이른 아침엔 이부자리 밖으로 나오지 못했기에 잠이 깨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동안과 대체 뭐가 다른 걸까?


먹은 것도

한 일도

읽은 책의 분량도

날씨도

별 다를 것이 없는 날들인 걸.


크게 다른 한 가지가 생각난다. 어젯밤, 남편과 정말 오랜만에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는 것. 최근 남편 직장에 묵직한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그간 바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 그가 집에서는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못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어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과 의견을 교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상형, 독특한 배우자관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어떤 이들은 따지는 것이 더 많아지기도 하는데 나는 단 두 가지 조건 외에는 다 버린 쪽이다. 같이 사는 사람의 세계관이 중요해서 기독교인이길 바란 것이 하나, 나와 말이 통할 것이 나머지 하나다. 그만큼 나라는 인간은 소통에 대한 욕구가 강한 모양이다. 그러니 깊이 있는 한 번의 대화가 나에게 주는 영향은 꽤나 큰 것일 테지.


말이 통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어릴 적부터 갖고 있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내가 가진 호기심을 이해하기 힘들어했고, 아빠랑은 지적인 대화는 가능했지만 마음의 교류는 힘들었다. 엄마는 집안일로 바빴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외로웠다. 궁금한 게 많고 말도 많은 나를 받아줄 사람도, 답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 적 있다. 아마도 나보다는 아는 게 더많고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질문하는 이유가 궁금한 걸 해소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임을 이해해 주면 좋겠는데 그건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지? 여러 모로 궁리해 봤지만 답이 나오진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초등교사니까 결혼을 잘하고 빨리 할 거라는 기대를 했고 (나 역시그랬지만)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를 만나고 나서 알았다. 말이 잘 통한다는 건 단순히 지적 수준이 비슷하고 정치성향이 같고 동일한 종교를 믿고 있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상대방이 말하고 싶다는 걸 알아주는 것, 무슨 말인지 모를 땐 일단 들어보자 마음먹는 것,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준비가 되었는지 잘 살펴보는 것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그렇기에 어제 남편과의 대화로 충전되었나 보다.

100% 가득.


매 순간 풀파워라면 제일 좋겠지만

오늘은

나만의 충전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만하게 감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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