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한국산문에 실림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 불법 투기 기사가 연일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부동산 타짜라는 새로운 합성어까지 등장하였다. 어찌하다 부동산에 타짜라는 말까지 따라붙었을까? 이 말을 처음 조합한 사람은 저작권 등록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민심은 공분을 넘어 노란 냄비에 라면 물 끓듯이 들끓고 있다.
타짜란 ‘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남을 잘 속이는 것도 재주일까? 의문을 품다가 만약 그것도 재주라면 상대방의 패를 읽고 내 패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수완이 뛰어난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이기는 패를 안다면 더욱 확실할 것이고.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19세기 초 제정 러시아 시절의 한 사내가 떠오른다. 푸시킨의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에 나오는 장교 게르만이다.
도박은 욕구나 요행을 전제로 한다. 운칠기삼 확률의 게임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승률임에도 꾼들은 묘한 충동에 빠진다. 우연으로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건다.
게르만도 그렇다. 사랑과 탐욕, 출세와 돈에 대한 욕망이 광기에 가깝다. 도박판에서 한탕을 꾀하여 그 꿈을 이루고자 한다. 그러나 섣부르게 덤비지는 않는다. 확신이 없는 한 “여분의 돈을 따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라며 도박판 주변을 맴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소식을 듣는다. 한 백작 부인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실한 히든카드를 알고 있다고. 게르만은 혹한다. 혹한 정도가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을 알아내려고 백작 부인이 후견 하는 리자라는 아가씨에게 접근한다. 그녀의 창가를 맴돌기 며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거짓 사랑을 이용해 백작 부인과 독대할 기회를 얻는다.
게르만은 부인에게 권총을 들이대며 이기는 카드의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종용한다. 졸지에 당한 부인은 놀라 자빠져 지레 죽고 만다. 게르만은 굳이 죽일 의향은 없었다고 말한다.
혼령이 된 백작 부인은 어느 날 밤 게르만의 꿈에 나타난다. 이기는 패는 “3, 7, 에이스”라고 일러준다. 3, 7, 1의 순으로 카드를 내면 꼭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대신 다시는 도박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사라진다.
이기는 패를 아는 자, 그 게르만 같은 사람들이 요즘 뉴스에 나온 LH공사 직원들이 아닐까? 직무를 통해 알게 된 또는 알아낸 정보, 아니 저절로 알게 될 수도 있겠다. 그게 바로 백작 부인의 ‘3, 7, 에이스’가 아니었을까?
매스컴에 나온 뉴스를 보면 최근 정부는 공공주택 특별법으로 3기 신도시에 협의 택지를 사고팔 수 있게 하였다. 협의 택지란 한 사람의 땅 면적이 1,000㎡ 이상이면 현금 보상과 함께 주택지구 내 조성된 단독주택용지 공급 권리도 부여했다. 현금 보상도 받고 싼 가격에 전원주택도 마련할 수 있는 일거양득 이상의 수다.
이것을 발표 전에 안 그들은 미공개 개발정보를 이용해 부지를 사들였다는 것이다. 살 때부터 최고의 보상을 노린 고도의 기술을 사용했다. 상대적으로 사용가치가 낮은 개발제한구역이나 맹지 등에 집중하였다. 저렴한 곳을 사서 협의 택지를 불하받으려 했다. 가족과 친지, 지인들끼리 쪼개서 나중에 값이 올랐을 때 세금을 절약하려는 효과도 내다봤다.
제방이나 통로는 공작물로 분류하여 토지 보상 시 평가 가치가 높은데, 그런 제방을 경매받은 공무원도 있었다. 보상 가치를 높이려 구매한 땅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했거나 속성으로 자라는 용버들이라는 나무를 촘촘히 심은 이도 있었다. 어떤 곳은 콘크리트 포장이었던 바닥을 흙으로 살짝 덮은 후 나무를 꽂아놓듯 심기도 했다. 개발지역 발표 한 달 전쯤인 1월의 언 땅에 나무를 심었다. 빨리 자라서 보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개발 전까지 농지 취득의 명분을 위한 거라고도 하니 참으로 영리하고 기상천외하다. 마치 노련한 타짜들이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해치운 신기술이거나 패를 조작하여 승리를 꾀한 만행이다.
영화 〈타짜 1〉에 보면 우리나라 최고의 타짜 평경장이 나온다.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 찾아온 고니에게 화투는 슬픈 드라마라며 아예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한다. 그래도 아는 게 힘이라며 고니가 타짜 되기를 원하자 평경장은 타짜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손은 눈보다 빨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떤 패를 잡고 싶냐고 물으며 “아수라발발타, 아수라발발타.”를 외친다. “돈을 벌고 싶냐? 부자가 되고 싶니?”라고 묻다가 “이것이 정주영이고, 이것이 이병철이야.”라며 화투 1월의 5끗과 광을 바닥에 패대기치듯 펼쳐 보인다. 그러면서 전라도 타짜 아귀는 기술을 쓰다 걸려서 귀가 잘렸고, 경상도 선수 짝귀는 들켜서 손모가지가 끊겼다고 말해준다. 평경장은 또 “고니 너도 곧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질러준다. 자신은 화투를 거의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하면서 내가 화투고 화투가 나인 몰아 일치의 경지, 혼이 담긴 타짜라 으스댄다. 하지만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로 회자하였던 정 마담의 사주에 살해된다.
백작 부인의 혼령으로부터 패를 점지받은 게르만은 어땠는가? 이기는 패의 비밀을 간직하다가 드디어 대규모 도박판을 찾아간다. 두 번이나 연거푸 거액을 딴다. 문제는 세 번째 게임이다. 확실한 패를 쥐었다고 자신한 게르만은 전 재산을 걸어 판을 키운다. 그런데 그가 에이스라고 펼친 카드에서 갑자기 스페이드 여왕이 나온다. 카드 속 여왕은 게르만을 향해 찡긋 윙크한다. 윙크를 보는 순간 그는 스페이드의 여왕을 에이스로 착각한다. 결국 지금까지 땄던 돈을 모조리 잃는다. 도박을 위해 사랑을 유린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게르만은 미쳐버리고 만다.
영화 〈타짜 1〉의 시작 부분에서 이대 나온 여자 정 마담은 이렇게 말한다. “화투, 말 참 이뻐요.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 근데 화투판에서 사람 바보 만드는 게 뭔 줄 아세요? 바로 희망!”이라고 말하며 배우 특유의 코 찡긋하는 표정을 짓는다. 마치 스페이드 여왕의 윙크를 떠올리게 한다. 흰 민소매 드레스와 새빨간 매니큐어가 강렬한 긴 손가락. 그 사이에서 타들어 가던 담배 연기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고혹적인 분위기는 도박 세계의 환상을 암시하는 것 같다.
타짜의 희망, 게르만은 도박으로 단번에 부자가 되고 새로운 신분으로 부상하여 출세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뜬구름 같은 욕심으로 그는 전 재산을 잃고 미쳐버렸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몰아 일치의 타짜 평경장은 기차를 타고 가다 살해되었다. 땅 투기로 부동산 타짜가 된 일부 LH 직원이나 공무원들은 어떨까? 그들은 현재 진행 중으로 지켜볼 일이다.
보도를 보면 그들은 우리라고 투자하지 말라는 법 있냐 하기도 하고, 한몫 챙겨서 이민 가겠다고도 한다. 퇴직했거나 머지않아 퇴직을 앞둔 타짜들은 노후 생활 밑천을 마련한 거라고도 한다. 아니꼬우면 우리 회사에 입사하라는 둥, 이번 같은 상황은 자기들 직장의 특혜라고 한다고 하니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들먹이기에도 부끄럽다. 청빈하고 의연했던 선비 정신은 웃기는 세상이 되었다.
하긴 그들도 처음부터 타짜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댓글에서 명명하는 국개의원들은 사리사욕이나 이전투구를 일삼고,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를 관장하는 검새를 비롯한 법조계도 신뢰가 바닥인지 오래다. 이들이야말로 이미 국민을 기만한 타짜 들일 수도 있는데 자신들이라고 알고 있는 이기는 패를 투척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백주에 실명을 버젓이 걸거나 이름을 빌려 또는 암암리에 여기저기 돈이 되고 맛있는 생선 가게를 덥석덥석 점유했을 터였다.
“아수라발발타, 아수라발발타.” 평경장이 외쳤던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어처구니없는 차에 따라서 외쳐본다. 한편으로는 ‘에라, 모르겠다.’ 하다가도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이?’라고 생각이 미치면 더디 끓는 돌 냄비도 슬슬 끓어오를 채비를 한다.
얼마 전 딸아이가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하려 발품을 팔다가 전화하였다. “아빠, 방 한 칸만 잘라서 택배로 보내주면 안 될까?” 응석 섞인 투정으로 얼버무렸지만, 살점이라도 떼어주고 싶은 남편의 얼굴에 금방 우수가 서렸다.
곁에서 보던 나는 평생 살면서 바보같이 헛발질만 날린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 비록 〈스페이드의 여왕〉에게 윙크를 받을 진정 지금이라도 게르만같이 백작 부인을 찾아볼까? 부동산 타짜 같은 꿈 한번 꿔보지 못하고 헛물만 들이킨 어리석은 인생을 탓하며 허공에 대고 일갈한다. 최근 〈빈센조〉라는 드라마 대사에 나오는 방송용 신종 육두문자로.
“이 쌰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