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빠 생신을 맞아 친정 거실에 모여 단란하게 밀린 담화를 나눌 무렵 저의 친모께서 주섬주섬 표지가 벨벳으로 된 책 네 권을 들고나오시더니 이런 대사를 치시더이다. “자, 여기서 니네 엄마 찾아봐라.” 그것은 다름 아닌 저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졸업앨범이었습니다. 이 무슨 유전자 검사 불일치가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랍디까.
토끼같이 귀여운 두 아이들이 전속력으로 달려가 유치원 졸업 사진에서 저를 찾아냈습니다. 토끼눈이 되더군요. 생각보다 예쁘진 않았지만 나름 일곱 살의 귀여움이 있길래 애써 덤덤한 척 “와~ 너네랑 닮았다~.”하며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앨범으로 유도를 했습니다.
제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초등학교 땐 얼굴이 꽤 많이 자리잡혔을 때라 이것보단 괜찮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자신있게 “엄마 3반이었어.” 기대감에 부푼 아이들이 서로 먼저 찾겠다며 다투다 거의 동시에 찾았는데 사색이 되더군요. 왜 저러나 싶어 들여다보는 순간 귓가에 추노 ost가 자동 재생 되대요. 노비3이 도망가기 직전의 표정으로 찍혔더라고요. 우리 엄마는 옷이라도 샤방한 거 입혀 보내지 거 참...
중학교 때는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확인을 했더니 노비3의 3년 후 버전으로 나왔더라고요. 나의 딕션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잖아요. 민망해서 웃는데 정말 또박또박 ‘와.하.하.하.하~’ 이렇게 소리가 나더라고요. 남편 쪽으로 쓰러지며 위로를 기대해봤지만 차디찬 그의 한 마디. “절로 가!” 아 뭐, 그렇지 않아도 속세를 떠날 참이었고요. 불국사로 가면 되겠구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마지막 고등학교 앨범을 봤는데 촌스럽긴 하지만 최소한 추노는 아니었어요. 다행이다 싶은 순간 애들이 왜 뒷부분의 스냅 사진까지 찾아보고 난리래요? 거기서 야간에 찍은 단체 사진 속 한 여자를 가리키며 “이거 엄마 아니에요?” 하는데 들여다보니 후레쉬가 터지면서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는 한 여자가 검은 눈동자는 하얗게 변해가지고 열심히 웃고 있는 거예요. 킹덤 킹덤! 전지현 말고 킹덤의 좀비7. 애들이 “엄마 왜 이랬어요?”이러는데 친정집이 87평인 줄 알았잖아요. 메아리가 울려요. 엄마 왜 이랬어요. 왜 이랬어요~ 왜 이랬어요우요우요우~
정신을 가다듬고 쿨하게 앨범을 치운 다음 남편에게 무료 영화나 찾아보자며 티비로 시선을 돌렸어요. 무료영화 썸네일 중에 ‘액션 경주’라 쓰여있는 영화가 재미있어 보이길래 액션 경주를 보자고 했더니 남편이 꺽꺽 까마귀처럼 웃으면서 “당신 괜찮아?” 묻더라고요. 그러더니 저거 “액션 경주 아니고 액션 강추야. 충격이 너무 커?” 그럼요. 제가 캐치미 이프 유 캔의 레오나르도 디카폐인 오빠 싸다구를 날린 것 같은 기분인데 충격이 크고 말고요.
다가오는 설 연휴! 친정에 졸업앨범이 있거든 모조리 찾아 아이들과 엄마 찾는 놀이를 해봅시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충격! 공포! 스릴러! 영화가 필요 없을 쫄깃한 연휴를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