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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Dec 06. 2024

엄마 우리 뭐 할까?

딸과 데이트 2 : 기다림


어색하게 맞잡은 손.

꾹 다문 입.

터덜터덜 발걸음.


' 데이트부터 이게 뭐람.'


그때 아이가 첫마디를 열었다.


"마 우리 뭐부터 할까?"




이벤트 경험이 많지 않다.

아이를 놀래키고 감동시킬 만한 아이디어도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일단 발길 닿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도서관 갈래?"


주말에 딱히 할 일 없을 때 도서관만 한 곳이 없다.

서점도 좋지만 앉을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책도 반납할 겸 우선 가볍게 도서관으로 시작.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신간코너로 달려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다른 계획이 없으니 나도 여유롭게 책들을 둘러보았다.

평소 같으면 빌려갈 책 얼른 골라라

만화책 말고 다른 책도 좀 둘러봐라

잔소리를 해댈 텐데 오늘은 그 입을 다물었다.

재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그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맘 편히 할 수 있도록.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서

아이 옆에 조용히 올려주고

나는 나대로 책도 읽고 휴대폰을 보았다.


"엄마, 나 책 다 읽었어. 이제 갈까? 나 배고파."

"그럼 브런치 먹으러 가자. 엄마도 출출하네."


아침에 토라진 마음이 좀 풀렸는지

차로 이동하는 동안 옆에서 조잘대기 시작했다.


"엄마, 브런치가 뭐야? 먹는 거야?

어디서 밥 먹을 거야? 메뉴는 뭐가 있어?

거기까지 얼마나 걸려? 내가 가본 데야?"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도착했다.

눈앞에 화려한 디저트 앞에서 아이 눈이 반짝였다.


"먹어도 돼?"


나의 가벼운 끄덕임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OO아, 먹고 싶은 것 골라. 밥 먹고 같이 먹자!"

"근데 엄마, 나 초코바나나빵을 먹고 싶은데

동생은 왠지 피자빵을 좋아할 것 같아.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이런.

태어나고 1년 만에 얻은 동생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동생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도.


"OO아, 지금은 너를 위한 시간이야.

동생것은 네가 원하는 것을 고르고 골라도 늦지 않아.

네 것부터 먼저 골라봐."


이내 안심하고 초코바나나빵을 집어 들었다.


"이제 동생 거도 고를래!"


자기 것을 온전히 가진 후에 여유롭게

동생 것을 고르는 아이를 보았다.

데이트하기를 참 잘했다 나를 칭찬했다.

어쩌면 그간 아이에게 온전히 자기 몰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겠다.


재촉하지 않으니

아이는 자기만의 책 바다에서 헤엄쳤고

기다려주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갔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더 자주 가지리라 다짐하며

점심 메뉴를 주문했다.

남기더라도 각자 원하는 메뉴로 골랐다.



한참을 먹다 배가 부른 지 아이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엄마 우리 진실게임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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