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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Dec 09. 2024

여러분, 오겡끼데쓰까~~~?

삿포로에서 안부 여쭙니다


오겡끼데스까~~~?

(잘 지내시나요?)


와따시와 갱끼데스~~~~!

(저는 잘 있답니다.)




생각지 않게 가족들과 일본여행을 오게 되었다.

친정부모님의 사정으로 오래전 예약한

패키지여행상품을 위약금 물고 취소하게 된 상황.


"엄마, 그거 내가 갈게."


이유는 2가지.

하나, 1년간 고생한 가족들을 위해 주는 선물.


연말이 다가올수록 유독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강제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 허락 없이 무작정 예약을 하고 통보했다.


"12월 초 3박 4일이니까 휴가 알아서 빼."

"아니, 잠깐만. 안될 수도 있어."

"몰라. 예약했으니까 알아서 해."


어르신들 가는 패키지여행이라 조금 비쌌지만

마침 남편 모르게 만기 된 적금이 나를 살렸다.

덕분에 큰 소리도 좀 쳤다.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한 학년이 올라간다는

압박이 조금씩 올라올 것이다.

어른도 아이도 그런 현실을 조금은 멀리서 보자.


둘, 이곳은 눈 보기가 어려운 남부지방.

우리나라가 겨울의 초입부터 호되게 당했다.

경기북부지방 눈이 예상밖으로 많이 오면서

휴교까지 맞게 된 상황.


"엄마, 서울은 좋겠다! 학교도 안 간데!"


정전이 되어 추위에 떠는 악조건은 생각도 않고

학교 안 간다고 부럽다는 이 아이들...

눈에 대한 환상을 안고 있다는 건

그만큼 태어나 눈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그래, 눈 실컷 봐라!


그렇게 우린 삿포로로 향했다.



요 장난꾸러기들을 귀엽게 봐주시는 어르신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안고 3박 4일을 함께 했다.


여행 3일 차 우리네 여행을 중간점검해 보자면...


눈이 많이 올 정도로 습도가 높은 섬나라면서

하늘색은 또 기가 막히게 맑다.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두 아이는

코세척과 스프레이 없이 숨쉬기가

편하다는 마법을 경험 중이다.

거기다 가이드님이 설명해 주시는 재미난 이야기를

맨 앞자리를 놓치지 않고 앉아 듣는 중이다.

막내가 잠깐 3일을 책 한 권 못 읽고 지나갔다고

말했지만 금세 잊고 노천탕으로 향했다.

책이 주는 간접 경험보다 여행이 주는 직접 경험을

체화 중이니 아이들은 지금도 공부 중인 것과 다름없다.

오늘 공부 다 했으면 얼른 온천욕을 즐기렴.



가성비부터 따지는 남편이 이 여행이 비싸니 돈 아깝니 두 말하지 않고 여행 중이다.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밀려오는 업무전화에

입술이 부르튼 채로 밤잠을 설친 남편이다.

그러다 출발 전날 뒤늦게 1년 업무 평가 결과가

나왔다는 회사 동료의 연락을 받았다.

남편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평가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마저도 마음 편히 여행을 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그저 잊고 4일을 즐기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아침저녁 온천욕과 뷔페 식사를 열심히 챙기는 것을 보니 알아서 잘 즐기는 것 같다.


하얀 눈밭을 버스로 달리며 

나도 가만히 생각에 접어들었다.

나는 이 사치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일 년간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런 자격을 누가 나한테 주는 건지

준다면 나에게 줄지 주지 않을지.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즐기는 것에 나도 한 몫했다는 것.

그래서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충분히 이번 여행을 즐길 자격이 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건 내년부터 채워가면 돼.

애썼다, 나야.'



타국에서 여러분의 안부를 여쭙는다.

괜찮으시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시기 바란다.

길고 비싼 해외여행을 가라는 게 아니다.

올해가 어떠했든 우리는 내년에도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의 쉼은 사치가 아니가 필수라는 것.


큰 이변이 없다면 우리 가족은 연말쯤

우리 자신의 돌아보는 여행을 떠나게 될 듯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과거의 나와 우리에게 안부를 묻는다.


"오겡끼데쓰까~~~~?"




사진출처 : 나무위키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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