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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와요

일상의 낯섦을 발견하다

by 빈틈


2주에 한 번 아침자습시간

초등 친구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갑자기 추워진 날에 맞게 그림책에 겨울을 담아갔다.


"와~~~!! 선생님, 눈이 와요!"

"그러네. 너희랑 올해 첫눈을 같이 보내."


그림 속 하얀 눈 밭을 덮고 나니

나의 세계에도 눈이 왔다.




1년 중 꼭 한 번은 어디서든 눈을 본다.

우리 동네에서 못 보면 스키장에서 라도.

정 안되면 TV 뉴스, 하다못해 아이들 교과서까지.

세상에 나와서 살아낸 해만큼

눈을 본 횟수도 1년에 한두 번은 함께 늘어난다.

그렇게 질리도록 보는 눈인데 아직도 설레다니.

새삼 내 마음이 촌스럽다.


그런 눈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몇 가지.

일상에서 늘 보지만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아이들이 없는 고요한 집.

늘 북적이던 이곳이 오전이면 조용하다.

익숙한 곳에 낯선 적막이 흐른다.

없으면 보고 싶은 이 녀석들...

마침 하교시간이 다가온다.


아이들과 함께 보던 그림책.

같은 책이지만 늘 다른 이야기를 나눈다.

대여섯 살쯤 읽어주던 책이지만

어느새 번갈아 읽고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바라본다.


11월을 보여주는 달력.

눈이 오는 것을 보니 마치

곧 크리스마스일 것 같은데

아직 달력은 11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을 것만 같다.

시간이 빨리 가는 건 싫으면서

얼른 달력은 넘겨버리고 싶다.


방금 얼굴을 내민 해님.

오전 내내 흐리다 이제야 모습을 보인다.

매일 보는 사이인지라 잠깐 안보였다고 서운했나 보다.

낯설긴 해도 이토록 내 마음이 반가운 걸 보니.


그리고 휴대폰 앨범 속 나의 모습.

철없던 어린아이 일 때부터

결혼 전 한 없이 의기양양했던 젊은 나.

언제 이렇게 엄마라는 역할에 깊이 파고든 건지.

거울에서 양치할 때마다 봤던 얼굴인데

같은 나지만 참 낯설다.



그래도 이만큼 자란 나야,

대견하다.

사랑스럽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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