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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Nov 06. 2024

남은 일정 없음

끝날 것 같지 않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니 오전 8시 30분.

이제는 나의 외출준비가 시작된다.

오늘은 9시 반에 나가면 저녁 6시가 되어야

아이들과 함께 집에 돌아 올 예정이다.


학부모 연수, 학원상담, 도서관, 치과...

중간중간 당 보충을 위한 곰돌이 젤리, 자두 사탕을

평소보다 두둑이 챙겨야겠다.




퇴사하면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퇴사 전 나는,

눈 뜨면 아이들친정에 맡기고 출근버스에 몸을 싣는다.

회사일을 하면서도 콧물을 훌쩍이던 아이들이

한 번씩 떠올라 휴대폰을 확인한다.

'열은 안 나겠지...? 제발 이번주는 병원 신세 지지 말고 무사히 넘어가자...'

정시퇴근을 서두르느라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고

100m 계주를 하듯 퇴근 버스로 골인한다.


지친 몸을 잠시 쉬고 나면 어느새 집 앞.

아이들 돌보느라 힘들었을 친정엄마를 도와

급히 저녁상을 차리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흡입한다.

씻겨서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들과

한 바탕 뒹굴며 사진 한 장씩을 남겨본다.

'내일 회사에서 일하다가 생각나면 봐야지!'

나는 100장을 찍어야 겨우 1장을 건지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찍어도 한 장 한 장이 작품이다.

그렇게 오늘도 작품 하나 건졌다.


잠들기 전 우리 셋이 옹기종기 모여 그림책 몇 권을 읽어주다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들을 눕혀 자장가도 불러주고 토닥여주면 그제야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아차, 설거지와 빨래가 남았구나.



드디어 퇴사.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몸이 더욱 바빠졌다.

눈 뜨자마자 서둘러 아침 등교준비를 한다.

아이들 보내면 땀 흘리며 운동하는 시간.


점심 먹기 전에는 간단한 청소와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결혼 10년 차라지만 주부 1년 차라

아직 요리가 서툴고 손이 느다.

끼니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저녁준비 하면서 내 점심도 함께 준비한다.


점심을 먹으며 한숨 돌리고 나면 어느새 하교시간.

그나마 피아노 학원을 가는 아이들 덕에

책 읽고 글 쓸 시간을 확보했다.

하지만 학교 봉사나 학부모 연

다른 일정이 생기면 그마저도 포기해야 한다.



이놈의 달력은 아이들과 내 개인 일정,

양가 대소사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주말이 뻥 뚫린 것 같지만 집안 대청소나 도서관이

기본 값으로 들어가 있다.

명색이 "빈틈"인데 어느 곳 하나 빈틈을 찾을 수 없다.

이름값 못 한다는 것이 이런 건가 보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퇴근 시간에 맞물려 밀리는 차 안에서

일정에 차질 없이 모두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으로

조금은 느긋하게 운전 중이다.

배가 고프지만 오전에 저녁준비를 해둔 터라

마음만은 가볍다.


시간이 얼마나 됐나 싶어 살짝 워치를 보았다.

문득 동그란 그곳 어느 구석자그마한 글씨 눈이 간다.


"남은 일정 없음"


바쁜 하루를 맞을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나"가 때 이른 응원을 전한다.


바쁜 하루에도 끝은 있더라.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조금만 더 힘내자!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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