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틈 Nov 18. 2024

단풍놀이 굳이 멀리 가는 이유

곁에 있을 때 소중함을 몰랐기에


매번 이런 식이다.

올해가 마지막이다 못을 박아 놓고는

또 앞뒤가 막힌 에 갇혀있다.

이번 정체는 또 언제쯤 뚫릴까.


굳이 이렇게 멀리 떠나야 했을까.




가을치곤 한낮의 따스함이 도를 넘었다.

평년 기온을 웃도는 날씨 때문에

단풍이 드는 시기도 조금은 늦어질 것이라 했다.

11월이 돼도 파릇파릇한 가로수 은행나무들을 보며

언제 단풍놀이 갈까 애가 탔다.


이제 막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잎과

위쪽부터 서서히 불을 지피는 단풍잎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아예 단풍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주말에 날을 잡아 무작정 길을 떠났다.

아직 해가 더운 듯했지만 

적당히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얼른 식혀주었다.


가을햇살 아래 즐거운 단풍놀이를 했다. 끝.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어땠을까.


저 멀리 단풍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대한민국 사람 전부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고 가는 관광버스에 밀려 올라가고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족사진이라도 하나 남기려니 단풍배경보다 사람배경이란 말이 더 맞겠다.



고생 고생해서 다녀온 단풍놀이 끝에 다시 일상.

아이들이 유독 피곤해하는 월요일 아침이라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침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겹치는 8시 전후.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집까지

밀리는 차 때문에 신호를 두어 번 받는 중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가로수 은행나무의 노오란 빛깔.

조금 더 멀리 바라보니 동네를 둘러싼 산들이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 말을 바꾸련다.

밀리는 차 "때문"이 아니라 "덕분에" 돌아본 것들.


곁에 있을 때 알아보지 못하고

굳이 그 먼 곳까지 고생해서 다녀와야지만

동네 단풍이 그렇게 감사하고 예뻐 보인다.

일상에서 잠시 멀어졌다 와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

평범하지만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그 아름다움을

나는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어쩌면 난 오늘의 감사를 위해

굳이 멀리 단풍놀이를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매거진의 이전글 문득, 브런치가 감사한 오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