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틈 Nov 15. 2024

캠핑, 온전한 집. 중. 시간

캠핑의 매력 4


물론 첫 캠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따뜻한 온실에서만 먹고 자고 했던 터라

바깥세상이 얼마나 혹독한지 알지 못했다.

밤이면 여름 빼고 어떤 계절이든

홑겹 텐트 안에서는 그저 겨울이었다.

최전방 부대 출신 남편은 이불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에게

뜨거운 물이 담긴 PT병을 안겨주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나와서 먹는 밥은 얼마나 꿀맛인지

숟가락을 놓지 못한다.

그만큼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었는데

그곳까지 가는 그 길도 구만리였다.

이건 비밀인데,

캠핑장 갈 때마다 발동하는 나의 귀차니즘 때문에

매번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혼자 속으로 삼킨다.

'이번 캠핑에서는 진짜 안 씻고 텐트 안에만 있을 거야!'

아무튼 집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핑 2년 차에 접어든 지금

우리 가족은 다음 캠핑지를 물색하고 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를 나서게 하는

캠핑 매력은 무얼까.


1. 할 일이 없다.

집에 있으면 쉴 시간은커녕

눈에 보이는 일거리를 처리하기 바쁘다.

그러다 성큼 다가오는 아이들 하교

그리고 저녁식사 준비.

숨이 턱턱 막힌다.

반면에 캠핑장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식사를 준비하게 되더라.


2. 내가 걷는 길이 곧 산책길이 된다.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대신

분리수거만 하고 돌아오는 일상이었다.

캠핑장에서는 신발만 신으면

어느 곳이든 산책코스가 된다.

산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아침 7시.

아무도 깨지 않은 아침,

그곳을 살금살금 둘러볼 때면

마치 아무도 밟지 않는 눈길을 밟는 것처럼

가장 먼저 들이마시는 시원한 공기의 맛을 나는 안다.


3.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캠핑장이 온통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니

배고플 때 빼곤 "엄마!" 소리 들을 일이 잘 없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 반짝 떠오른다.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뭘까?'


가방에서 스윽 책을 한 권 꺼낸다.

공감 가는 에세이에는 봉지과자,

진지한 자기 개발서에는 따뜻한 차 한 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책에는 시원한 맥주 한 캔.

이곳이 지상낙원이다.


광고 없는 장시간 음악영상을 틀고 털썩 누워버린다.

물놀이에 신난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에는 통통 튀는 귀여운 음악,

산들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봄 재즈,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풍경이 보일 때면 피아노 클래식.

즉석 라이브보다 값진 연주회가 펼쳐진다.


가장 좋은 건 남편과의 대화 시간.

매일 함께 잠이 들면서도 머리만 대면 잠드는 터라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잘 없다.

낮에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밤에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때마다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

다시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참 감사한 사람.



 

바닥 매트를 깔고 입구를 정해 텐트 방향을 잡는다.

텐트를 세우고 나면 내부 카펫을 깔고 짐정리를 시작한다.

밖으로는 부엌이 차려질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넉넉히 남아있다.


이제 온전히 나에게 집. 중. 할 시간이다.

"나"야, 오늘은 무얼 하고 싶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