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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un 30. 2024

훔치고 싶은 필력, 『밥 먹다가, 울컥』

『밥 먹다가, 울컥』_박찬일 산문집

고등학교 시절, 책을 읽고 나서 뺏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문장들을 꾹꾹 베껴서 눌러쓰곤 했다.

손가락에 굳을 살이 생길 정도로 사력을 다해서 쓰면 결국 내 필력이 될 것이라는 주문을 걸며 쓰고 또 썼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필사 수기에서 타이핑으로 넘어왔는데,

타이핑으로 옮길 때만큼 내 미간에 긴장이 바짝 들어간 긴장의 순간은 없다.

그만큼 탐이 나기 때문이다.


어제 읽은 박찬일 셰프의 산문집에서 책 제목대로 상투적이지만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던 문장이다.


영정 안에서 웃고 있는 후배를 보니 심장이 턱 막혔다. 요즘도 마트에서 고추장을 볼 때마다, 내게 보내준 것과 같은 똑같은 빨간 상표 고추장을 볼 때마다 나는 발바닥이 쑤욱 꺼지는 것 같다.

사람은 기왕이면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기억도 막 쌓아서 나중에 죽어도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게 하는 게 좋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녀석의 마음이 왔다> 중


늙은 아버지의 등을 함부로 보지 마시라.
슬픈 그림을 영원히 당신에게 남기는 일이다.

-<너나없이 쓸쓸한 식욕으로 함바집을 찾았다> 중

대학교 때 기자 인턴을 할 때 늘 나에게 넘치는 칭찬을 해주는 언니가 있었다.

현재 시사인 기자이고 책도 여러 권 집필한 장일호 언니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도 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딱히 꿈이 없었고,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하던 대학생 기자인턴이었기에 열정과 영혼이 1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무언가 글이라도 쓸라치면, 언니는 감탄에 감탄을 아끼지 않아서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싸이월드에 나만 볼 수 있는 비밀 방명록에 나의 필력이 너무 탐나서 베껴쓰기를 하고 있다고 남긴 적이 있다.


언니의 성품이 원체 따뜻하고 남을 칭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20년 이상 해오 던 베껴쓰기의 대상이 내가 된다는 게 얼떨떨했다. 그럼 세련되게 기뻐했으면 좋았으련만 “뭐야 놀리는 거지?”하고 비아냥댔던 것 같다.


인생의 첫 책 출간을 1주일도 채 남짓 남기지 않은 지금도 그렇다.

평생을 꿈 꿔왔던 일인데 불나방처럼 뛰어들거나 행복감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늘 이루면 당연한 것처럼 익숙해지지만,

기꺼이 흠뻑 젖어 즐기는 것도 능력임을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덕후가 브랜드에게> 출간 D-5

글 작가가 될 수 있어 무지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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