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
책을 내게 되면서 또 다른 책 출간이나 기고 제의를 받게 되었다.
쉽게 말해, 일정의 비용을 받고 ‘원하는 방향’의 글을 써주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돈을 받고 원하는대로 글을 쓴다는 것
너무너무 쉽고, 간편했다.
주제도 인상쓰며 고민할 필요 없이 먼저 정해주는 것은 물론, 원하는 방향마저 정확하기에 공식에 대입하듯 척척 써서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글 쓰는 건 언젠가부터 나에게 사회생활과도 같아서 요구한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미에 맞게 글을 쓰는 능력이 갖춰져버린 것이다.
결코 문장력이 좋다거나 하는 그런 뜻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인성이 올바르고 됨됨이가 빼어남과 동격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 사회생활의 절반 이상은 눈치다. 눈치껏 상대(주로 상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되도록 선호할 만한 단어 선택과 태도를 취하면 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본의 아니게 그렇게 해동 하는 것에 꽤 단련된 덕에,
사회생활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하게 되었고 고과도 잘 받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글에도 그것들이 점차 반영된다는 것이다.
글만큼은 단 한 명도 보지 않을 때부터 쭉 쓰던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 중 몇 안 되는 꾸준하고 진실된 것이었는데
남에게 보이는 글, 심지어 팔리는 글을 쓰다 보니 나의 고민보다는 상대의 니즈에 맞춤형 글쓰기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부터 내 생각을 담고 고민하는 게 조금 어려워진 느낌도 든다.
정말 ‘누가’ 읽었으면 좋겠는지, 혹은 ‘누구에게’ 전하는 말인지 조차 고민하지 않고 자판을 두드릴 때도 있다.
첫 책 <덕후가 브랜드에게>는
1. ”팬들에게 당신들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고
2. “팬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팬들을 한심하게만 보지 말아라.” “무시하지 말아라”는 얘기가 두 번째였다.
그래서 타깃이 명확했기에 진심을 다해 술술 적어 내려갈 수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책은
또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은 분명한 한 명의 독자를 정해서 진심으로 쓰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깨달음을 아주 늦지 않게 얻게 됨에 감사하다.
가짜는 분명 가짜다.
누가 봐도 가짜다.
아침에 게으름을 이겨내고 바다 근처를 땀이 줄줄 흐르도록 뛰었다.
이건 누가 봐도 진짜였다. 나태함도 지침도 이겨냄도 진짜였다.
죽기 전에 단 한 가지만 하고 산다면 선택할 독서 혹은 글쓰기.
여기에 만큼은 진심을 다하도록 하자.
안 그러면 내 삶 자체가 너무 빈껍데기처럼 공허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