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가을인가 봐~'하고 완연한 가을을 실컷 즐기던 때에,
갑자기 들이닥친 불시검문처럼 '어림없지 요 놈!'하고 낯설 정도로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는 시점. 보통 11월 수능 즈음이다.
수능 추위라는 말이 익숙하다 못해 상투적일 정도인데 신기하게도 추위를 느끼는 그 순간은
수험생에게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공포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의 고3 시절을 떠올려봐도 추위를 느끼는 순간
누군가 예리하게 벼려진 칼 날을 내 턱 끝에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사실 고등학교 이전에 나는 우등생이었던 순간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받는 특혜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오히려, 아예 배제되거나 대놓고 모멸감이 느껴지게 혼나는 경우가 더 일상적이었다.
쓸데없이 성실해서 숙제는 참 잘해갔는데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혼났던 게 이제와 생각해보면 억울하기도 하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때 수 계산을 단박에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들 앞에서 맞았던 핵꿀밤을 잊을 수 없다.
그날을 계기로 나의 합리화까지 더해져 난 전 과목 중 특히 수학과 급속한 결별 수순을 밟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주요 과목을 못하니까 나머지에도 무심해지면서 전 과목 선생님과의 친밀도도 훅훅 떨어져만 갔다.
나중에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선생님들이 차라리 편했다.
그런데 성적이 오르며 고1 첫 중간고사에서 처음으로 반 1등이란 걸 해보면서 정말 충격을 받을 정도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반 1등'이라서 받았던 모두가 날 기대하는 눈빛과 특히 담임 선생님의 그토록 안온한 차별 대우가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약 16년 간 나는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등학생 이후의 나의 삶은 좀 더 입체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바뀐 세상이 매일 신기할 정도로 낯설었기에 수험생활에 지치거나 질릴 틈도 없었다.
그렇게 쭉 상위권을 유지했음에도 11월의 추위로 느껴지는 수능시험의 서늘함은 나에게도 꽤나 공포스러웠다.
수능 날 단 하루로, 단 한 번의 기회로 내 인생에 꽤 많은 것들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와 생각하면 코웃음도 안 나오지만,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대학, 소위말하는 3대 명문대를 못 가거나 재수를 하면 인생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심지어 말로 옮기기도 했었다.
결론적으로 운 좋게 세 개의 대학 중 하나에 진학했지만,
사실 대학의 진학여부가 나의 인생의 종료까지 고민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 내가 속한 세상이 너무나 좁았기 때문에, 또 되고 싶은 장래희망 또한 눈이 아플 정도로 또렷했기 때문에 집착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집착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고1 때부터 고3 때까지 생일은 물론 크리스마스 때도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일과를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다. 그렇게 안 하면 지옥불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이렇게 차디찬 바람이 불면,
목표가 뚜렷했던 수험생 이전 시절을 생각하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꾸미는 데 썼던 반짝이풀의 형체와 향기가 생각나고
수험생 당시를 생각하면, 쫓기는 듯한 조바심과 공포가 느껴진다.
양 쪽 모두 나를 성장시킨 것들이고,
어찌 보면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연예인을 좋아하고 티비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연말 3사 시상식을 동시에 모두 볼 수 없는 것을 한스러워하며 연말을 실컷 만끽하며 키웠던 방송에 대한 꿈이 곧 수험생 시절의 뾰족한 목표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도 좋아했던 연말 시상식이 나에게는 업무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 갖가지 실무적인 고민과 회의를 하고, 개인적인 소망도 가져보며 그렇게 11월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11월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물론 크고 작은 고민과 중압감은 존재한다.
그 또한 내가 선택한 직업적 숙명이자 멀리서 보면 보람이자 기쁨이기도 하다.
다시 오지 않을 올해 11월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