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피디의 최고 덕목을 묻는 이들에게
KBS 예능 피디로 살아온 지도 10년을 훌쩍 넘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시간을 지나고 보니 내 직업의 명과 암에 대해서 더 초연히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지상파 예능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 지금임에도,
어떻게 하면 예능 피디가 될 수 있는지
또
예능 피디로서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지 묻는 경우가 있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대학생 시절 스트레스가 컸는지,
총을 맞아 즉사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긴박한 상황에도 '아... 예능 피디 꼭 돼보고 싶었는데...' 하는 중얼거림을 꿈속에서 시전 했을 정도로
간절히 예능 피디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렇게 간절할 때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사실은 모르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뭐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싶겠지만, 생각보다 많다.
실제로 예능 피디 선후배중에서도
"난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그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게 괴롭고, 새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을 알아야 하는 게 의무적인 학습처럼 느껴진다는 이들도 많다.
새로운 사람뿐 아니라 실제로 오랜 기간 함께하는 출연자들에 대한 애정조차 버거운 이들도 많다.
이해는 된다.
뭐든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별 같지만,
지척에서 생활하다 보면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뜨거운 열기와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듯이
분명히 부정적인 면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애정으로 품기는 사실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을 오래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찌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살피고 눈치 보는 것에 특화(?)되어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습관인데, 이것이 형성된 과정은 크게 밝은 것이 아니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쨌든, 의도치 않은 숱한 훈련 덕에 사람의 그늘이나 감정 변화 파악에 좀 빠른 편이다.
긍정적인 것은 그게 나에게도 기쁨이자 보람이며, 업무에도 꽤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살림남> 같은 경우 출연자의 일상을 보며 코멘트를 하는 관찰예능이다.
나는 타인을 관찰하는 출연자를 또 관찰하는 피디 입장이다.
은지원, 백지영, 박서진 이 세 사람은 2년 가까이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딱히 나의 지령 없이도 충분히 소통과 피드백을 잘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획의도에 맞춰서 특정 멘트나 반응을 더 해줬으면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면 좋겠다거나 고생한 부모님에 대한 일화를 좀 더 나누어 풍성하게 하면 좋겠다거나 하는 경우다.
이럴 때 출연자들만 볼 수 있는 모니터(예능에서는 이를 프롬프터라고 한다)에 나의 의견을 덧붙인다.
가끔은 출연자들이 느끼고는 있으나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난주에 백지영 씨가 딸을 가진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는 내용이었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울고만 있기에 프롬프터에 직접 써주었다.
"딸 가진 엄마의 마음으로 실은 마음이 가고 걱정이 됐는데 잘 지내는 걸 보니 안도가 된 마음에 눈물이 난다."라고 내 짐작대로 적었다.
그러자 백지영 씨가 하염없이 울다 깜짝 놀라 눈물을 그치며 나에게 말했다.
"뭐야.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어? 정말 딱 저 마음이었거든..."
오랫동안 봐왔기에 조용히 흐르는 눈물에도
그런 마음이겠거니 하는 조용한 짐작이 들었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대체적으로 이것들이 나의 무리한 억측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들이 출연자들과 쌓여가고 교감할수록 프로그램의 뿌리와 정은 더 단단해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 누구처럼 우리 출연자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면 나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예능 피디의 가장 큰 덕목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아니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매주 보고 설사 매주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으이그~'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가다듬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틈은 남겨놔야 하는 직업이다.
이제 구독자 4천4백 명을 넘긴 나의 유튜브 채널.
주로 방송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나 토요일 방송 전에 참고해서 보면 더 재밌을 만한 이야기들을 담는다.
애정이 없었다면 업무 외 시간에 추가로 하지 못할 일들이다.
물론 혼자 해내는 일이기에 화려하거나 현란하지도 않고 초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기는 사람들끼리 서로 아끼는 그 내용과 마음만큼은 소박할지라도 초라하지는 않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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