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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준비가 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by 편은지 피디
그때는 몰랐습니다.

피해 의식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이
스스로를 피해자의 삶으로 만든다는 사실 말입니다.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_강민호 프롤로그 중

20대 때 친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사람독'에 취해있는 것 같다고.


당시 나를 떠올려보면 스펙과 경험을 쌓는다는 명목하에

늘 사람들 틈에 있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 했다.


여유 있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사람들을 바라보는지 고민해 볼 틈 따위는 없었다.


그냥 단 몇 초의 묵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사실 나는 겁 없이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다스리는 것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그것을 참 오랜 기간 깨닫지 못했다.


나는 오랜 기간 피해의식과 시샘에 힘겨워하고,

그 둘이 부재한 너그러운 이들이 대단하거나 이색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


꼬여도 단단히 꼬인 사람이었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그것이 문제라고 자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들 틈에서 나름 명랑하게 제 할 일을 잘하며 지내왔기에

이것이 고쳐야 할 흠이라고 너도나도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타인들이 나에게 그만큼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석하지만 부족한 인간에게는 이런 핵심적인 깨달음이 참 불현듯 찾아온다.


두 번째 책에 혼신을 다해야 하는 지금.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원고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가장 좋아하는 비 오는 날인 오늘 아침 들른 도서관에서

내게 스승 역할이 되어줄 소리 없지만 묵직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늦었지만 이제야 나는 진심으로 배우고 개선할 준비가 되어있었구나 싶다.


잘해보고 싶은 순간은 많았다.

그러나 마음 다해 그야말로 헌신한 순간은 손에 꼽는다.


물론 그런 척!한 적은 또 많다.


그러나 상한 과일을 파는 상인의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고 들킬까 못내 초조하듯 마찬가지다.


진짜일 때만 나타나는 스승.

그 스승을 붙잡고 써 내려가는 글.


비로소 나도 나의 책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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