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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고 나서야 아는 인간이란

by 편은지 피디

인간의 유한함에 대해 한탄한 적이 있다.

뜨거운 여름날 캠퍼스를 걷던 날이었던 것 같다.


몇 걸을 못 걷고 목도 마르고, 몸도 축축 처지는 당시의 나 스스로를 보며

인간은 수시로 물도 넣어줘야 하고, 밥도 넣어줘야 하고

몸도 돌봐주어야 하는 참으로 손 많이 가고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당시 뭘 해도 잘 안된다고 감히 한스러워하던 때여서

더 그렇게 자기 비하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개탄까지 갔던 것 같다.


어쩌면 나 스스로를 꾸짖지는 못하고, 비겁하게 인간에 대한 한스러움으로 돌려서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정서를 느끼고, 한스러워하면서도 또 나아질 수 있는 것도 인간뿐이라는 걸 말이다.


늘 땡볕에 허덕이는 동식물은 스스로 본인의 처지를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바꿀 수 있다.


나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10km씩 매일 뛰게 되며 나름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숨차게 뛰는 것은 내 인생에 없고, 늘 과체중으로 살아야 함을 앞서서 인정하며 개탄스러워했다면


자연스럽게 군살이 줄어들고

근육이 표준 이상인 사람이 되고,


달릴 때 목에서 피맛난다는 변명을 했던 내가 오히려 그런 변명을 하는 이들한테 일단 뛰어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일순간에 말이다.


그렇게 달리는 맛에 취해 살던 몇 달,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10km를 달리고 출근할 때였다.


개운한 마음에 계단을 내딛었는데,

왼쪽 무릎에 난생처음 겪어보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냥 아픈 느낌뿐에서 그치질 않고,

차마 땅을 내딛을 수 없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가볍게 10km를 달리던 내가

샤워 후 절뚝이며 계단을 한 발 한 발 난간을 짚고 내려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얼음찜질을 해도 소용없었다.

단 4일이었지만 매일 뛰던 내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순간 기쁨으로 채워가던 러닝 기록표도 멈추었고,

일어났을 때 부디 통증이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4일쯤 쉬어주니 통증이 가셨다.

뒷산을 슬슬 오르는 것으로 소심하게 운동을 시작해 보았다.


그리고 5일 차인 오늘 아침 정말 느린 속도로 슬슬 뛰어봤다.

다행히 당장은 아프지 않았고 40분이 다 되어가니 살짝 같은 부위에 통증이 왔다.


평소라면 무시하고 10km를 채우기 위해 뛰었을 텐데 얼른 멈추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사실 뛰면서 힘듦을 느낄 새도 없었다.


다시 뛰게 되니 뛰는 것 만으로 충만하고 감사했기 때문이다.

괜히 늘 똑같은 내 무릎도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몸을 아껴주어야 한다는 걸 처음으로 공감한 순간이었다.


내내 몸을 아끼라는 얘기를 들어도 당장 중요한 일이 있고,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서 몸 정도는 혹사해도 된다고 가볍게 여기며 살아왔다.


가끔은 그것이 젊은 사람으로서 우겨볼 수 있는 특권이자 허세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치고 보니 겪게 되는 불편함과 경미하지만 넓고 끝없이 퍼져가는 좌절감이 있었다.


운동이 귀찮고 싫은 것만 괴로운 줄 알았는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괴로움이었다.


늘 부족한 인간에 대해 한탄했던 과거의 나였지만

부족함 보다는 아낄 줄 몰랐던 경솔했던 나에 대해 되돌아보게 해 준 며칠이었다.


잃고 나서 후회하는 진부한 루틴.

그런 루틴을 반복하지 말라는 깨달음을 준 통증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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