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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l 05. 2024

디어 찬란,

뮤지컬 디어에반핸슨의 ‘나에게 쓰는 편지’


뮤지컬 디어에반핸슨은 얼마 전 한국버전으로 국내 최초로 공연이 올라온 미국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이다. 주인공 에반은 불안장애를 가진 외톨이 청소년이다. 미국에서는 너드, 한국에서는 찐따로 보통 칭한다. 대인기피와 불안 장애 치료를 위해, 상담선생님은 에반에게 스스로를 위한 긍정의 편지를 쓰라고 숙제를 낸다.


에반은 숙제를 제출하기 위해 아주 억지로 스스로에게 편지를 쓴다.

‘디어 에반 핸슨. 오늘은 정말 좋은 하루가 될 거야. (생략)... 나로부터.‘


극의 줄거리는 이 편지로 인해 생기는 엄청난 오해와 연결된 일련의 성장극이다. 사실 이 편지 자체는 에반에게 효과가 있지 않았다. 그와 별개로, 나는 오늘 왠지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하루 안에는 좋은 일, 나쁜 일, 큰 일, 작은 일 등이 많았을 텐데 요즘 나는 좋은 일을 소중히 여기는 데에 크게 둔감해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에반처럼 머리를 짜서 스스로에게 편지를 한번 써본다.


’ 디어 찬란,


오늘은 아주 좋은 하루가 될 거야. 왜냐하면, 오늘 아침 하늘은 이상하게 맑았거든. 그런데 엄청 큰 물개 같은 모양의 구름이 운전 중에 내 눈을 자꾸 사로잡았어. 거대한 그 구름은 광활하고 투명한 하늘 속에서 잠실롯데타워 같이 우뚝 존재감을 드러냈지. 참 특이한 광경이어서 감탄하느라 잠시 설렜어. 내가 마치 하늘 위에 떠있는 섬에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하지만, 조금 있으니 온통 비구름에 바람이 하루를 덮었어. 그래도 난 오늘 그 와중에 세차를 했지 뭐야. 가랑비 오는 날 내 하얀 차를 거품으로 세 번쯤 닦고, 실내까지 다 청소하니 내 몸이 비와 땀에 젖었어. 천연 미스트는 내 머리를 결국 완전 다 적셨어. 내 얼굴은 끈끈해졌지만, 그래도 몇 개월 만에 내 차가 아주 깨끗해져서 마음은 꽤 상쾌했어. 심지어 차 지붕의  검정 곰팡이 같은 얼룩을 내가 까치발 하며 기어코 지운 거 있지.


지붕 닦기는 내가 처음 해본 건데, 이 놈은 아마 정수리까지 내가 신경 써줘서 오늘 아마 감동했을 거야. 그런데, 내 차는 여전히 옆으로 휘날리는 비바람을 맞고 있어. 그래서 아무도 내 차가 오늘 묵은 때 뺀 줄은 모를 거야. 그래도 흰둥이 내 차와 나만의 비밀이 생겼으니 오히려 좋아. 비 오는 날 세차했다고는 아무한테도 말 안 하려고.  


오늘이 또 좋은 이유는, 7월부터 글쓰기 모임이 재개해서 우리만의 글쓰기 미션이 시작되었다는 거야.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지 알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누군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 감사한 일이야.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읽을 기회가 있다는 것 역시 나를 두근대게 해.


그럼, 이만 쓰도록 할게. 오늘은 내내 혼자였는데, 이 글을 쓰고 나니 오늘 하루는 나름 좋았다는 증거를 남긴 것 같아서 실제로 기분이 좋아졌어.

- From me.'


그림출처: 에스앤코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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