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말톡 9월호
“으악”
아침에 일어나서 발을 땅에 딛는 순간 비명이 나왔다. 평소에 스트레칭이나 준비운동도 게을리하면서 최근에 운동강도만 높였더니만 족저근막염 초기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발을 땅에 딛을 때마다 불편해 죽겠다. 평범한 인간이 몸을 조금만 무리해도 이런데, 사람보다 월등하게 운동을 많이 하는 ‘프로 운동러’ 말은, 운동 강도가 높은 만큼 부상도 훨씬 자주 생긴다.
“말이 다리를 절룩거려요.”
말은 무거운 몸의 무게에 비해서 몹시 얇은 다리와 작은 발굽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다리의 질환이 자주 찾아오게 된다. 다리가 아플 때에는 특히 아픈 다리에 체중이 가해지는 순간, 통증 때문에 최대한 체중을 안 실으려는 상태로 걷는다. 체중을 안 싣고 살짝 살짝 다리를 딛으려고 하니 목을 더 과하게 꾸벅 꾸벅 거리기도 하고, 엉덩이가 더 과하게 들썩 들썩 거리는 게 두드러지게 보인다. 마치 내가 오늘 아침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말 관리자는 평소와 다른 말의 걸음걸이를 보고 다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눈치를 채게 된다. 그리고 수의사 진단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간다. 어쩔 때는 관절 안의 뼈에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갈 때도 있고, 어쩔 때는 얇은 다리에 있는 힘줄에 무리가 가서 일부가 찢어져 있을 수도 있다. 각 원인에 따라서 휴양 기간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여기까지가 경주마의 흔한 근골격계 직업병의 카테고리라 말 생산농가에서는 이런 패턴이 다소 익숙할 수 있겠다.
“말이 몸을 비틀거리고 뒷다리가 휘청대는 것 같아요.”
여기서부터는 조금 문제가 달라진다. 단순히 국소적인 뼈나 인대, 또는 발굽의 손상이 아니고 조금 더 다른 문제일 수가 있다. 그 때는 수의사의 진단이 필요하다. 걸을 때(평보), 뛸 때(속보)의 걸음걸이 뿐만 아니라, 뒤로 걷기, 제자리를 돌아보기, 원형운동 해보기, 다리의 특정 부위를 눌러보거나 구부려보기, 꼬리를 잡아당겨보기 등을 통해 원인을 좁혀간다. 그 중, 특히 다리의 특정한 부위가 아파서가 아니고,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신경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번 9월의 말톡은 뒷다리의 신경계 유래의 몇가지 질환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의 경우, 외상으로 목뼈(척추)를 다치거나 여러가지 감염원이 척수에 염증을 유발할 때 몸의 부분마비 증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루게릭병 같은 신경 퇴행 질환이 생길 때 역시 정상적으로 걷는게 어렵다. 이런 유형의 질환을 ‘신경계 질환’ 이라고 하며, 말도 이 질환을 피해갈 수 없다.
말의 뒷다리 보행이상과 관계되는 신경계 질환
워블러병 (Wobbler Disease)
말은 평소처럼 밥도 잘 먹고 정신이 또렷해 보이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걸을 때에 뒷다리가 술취한 듯이 균형을 잘 못잡으며 걷는다. 워블러병은 말의 목 안의 척추뼈를 다치거나 감염, 영양이상 등의 문제로 뼈 안에 있는 척수신경이 압박이 되어서 뒷다리의 비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1세 이하의 어린 말, 또는 2~4세에 생기며, 뒷다리 발굽을 끌으며 걷고, 뒷걸음질이 어렵다. 또 회전시킬 때에는 다리를 휘두르고 목이나 등이 뻣뻣하다. 진단은 방사선 촬영과 척수 조영으로 하게 되며, 척추 수술이나, 약물요법의 치료가 있으나, 조기 치료가 되지 않으면 예후가 좋지 않다.
말 원충성 뇌척수염 (Equine Protozoal Myeloencephalitis)
오염된 사료나 물 등에 있는 원충 (S.neurona) 이 감염되어서 중추신경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신경에 관계되는 여러가지 증상이 일어나며, 균형을 잡지 못하는 뒷다리의 비정상적인 걸음걸이 뿐만 아니라, 다리와 몸의 근육의 감소, 안면마비, 머리가 기울어지는 증상, 행동 이상 까지 보이기도 한다. 치료제로는 항원충제, 비타민 E 등의 약물요법이 있다. 증상 개선은 있어도 완치율은 높지 않다. 예방을 위해서는 중간숙주인 쥐가 마사에 들어오지 않도록 사료 봉지를 밀봉하고, 음식물을 놓으면 안된다.
말 운동신경 질환 (Equine Motor Neuron Disease)
말의 운동신경이 퇴행해서 생기는 질환으로, 비타민 E가 결핍으로 생기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령 말에게 주로 발생하며, 근육으로 가는 운동신경의 퇴화로 사람의 루게릭병과 유사하다. 주 증상으로는 뒷다리의 둔부근육이 빠지고, 서 있을 때 근육이 떨린다. 체중이 점점 감소하며, 근육이 약해져서 공 위에 서있는 것처럼 서 있는 자세를 하거나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수의사의 진단을 통해 질환이 확진이 되면 마방과 초지를 옮기고, 체내 비타민 E의 수치를 높이는 치료가 필요하다. 증상이 심한 말은 예후가 좋지 않아서 안락사를 해야 하기도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비타민이 풍부한 양질의 푸른 목초지가 있는 곳에 항상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생초가 없는 겨울 시즌에 비타민 E 제제의 추가 보충이 필요하다.
제주도 생산농가에는 어린 망아지부터 노령의 씨암말이나 씨수말 까지 다양한 나이의 말을 키우기 때문에, 그 나이에 다발하는 각종 신경성 질환을 드물지만 만나게 된다. 다리의 한 부위가 아파서 생기는 절룩거림이 아니고, 위에서 언급한 걸음걸이와 신경 증상을 발견한다면, 조기 진단과 치료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청결한 마사 유지와 영양 관리, 그리고 세심한 관찰은 역시나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