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놓아주고 앞으로 손을 내밀어보기
1단계. 과거를 놓아주기
나는 과거 나의 행동에 의해서 생긴 일에 대한 자책감이 지금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며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마음이 아직 불완전한 사람이다. 참 오랜 시간 노력하고 벗어나려고 했지만, 노상 잘 지내다가도 돌연 과거의 나 자신이 미워지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혼자 사무칠 때가 많다.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으나 사실 파도가 작아졌을 뿐 도돌이표라는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자책감이 자꾸 올라오는 이유는 복잡하지만, 그중에서 상대에 대한 미안함도 한편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제는 자책 자아가 나오더라도 애써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서 안아주고 싶은 절실함에 이번 미션을 용기 내서 정해 보았다.
도전
미션: 과거 나의 잘못에 대하여 상대에게 사과하기
마음 한편 미안함을 가진 사람에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이미 지난날이라 회복할 수 없는 과거라고 단정 지어서 사과라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는데, 거절 미션 덕분에 나를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과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나비효과이다.
이미 시간도 많이 흘렀고, 과거를 생생히 기억할 만큼 큰 무언가가 상대에게도 같은 양으로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아니면 영영 마음을 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재회할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일이 꼬여 만나지를 못했고 다시금 기약이 없어지고 멀어질 것 같았다. 이대로 그냥 보낼까 하다가 나는 만고의 고민 끝에 나는 용기 내어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아니면 평생 사과를 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사과문의 예시를 찾아보며 여러 번 지우고 썼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는 상대에게 과거의 나의 잘못에 대하여 사과했다. 상대가 사실 기억이나 할지, 어이없어할지, 받아주기나 할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결과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긴 답장이 왔다. 그리고 그 답장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한 3일은 시도 때도 없이 펑펑 운 것 같다. 감사한 마음인지, 경계가 풀려서인지, 힘들었던 시절이 다시 생각나서인지, 꾹꾹 눌렀던 눈물이 무장해제가 돼서 며칠을 그렇게 울며 눈이 퉁퉁 분 채로 살았다. 가족이 뭔 일 있냐고 오해하면, 아니야 나 기분 좋아서 우는 거야 라며 계속 울어댔다.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즐겁게 만나자는 그 마지막 말을 받아, 나는 이제 자책감 침투를 정말 사투를 벌여서라도 거절하여 더 이상 나를 스스로 사지에 내몰지 않기로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용기 내지 못했으면 몰랐을 그 전해진 마음이 오랫동안 꽁꽁 언 나를 지금도 녹이고 있다. 덕분에 어쩌면 언젠가는 정말로 자책감 없이 훌훌 털고 후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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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절당하기 위한 행동을 하려면 먼저 나의 내면을 잘 알고 인정해 줘야 행동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절당하기 싫어하는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는 한 나는 계속 도망 다니고 억지로 끌려다녀 힘겹게 미션을 하다가 결국은 멀어질 테니 말이다. 나는 계속 '왜?'라는 질문으로 찾아 들어가 왜 내면의 소심 자아가 힘이 강하게 자라왔는지, 왜 두려움 자아가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왜 자책 자아가 나를 그렇게 다그치는지 곰곰이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나이 사십 넘어서 이런 행동을 나 스스로 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건 내가 찾아 헤매던 그 어떤 다른 해결책보다 훨씬 강했다.
거절 미션을 해보기 전의 나는 말 그대로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그냥 현재 상태의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리고 안팎으로 큰 문제없이 잘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절 미션을 매달 루틴으로 행하며 내 삶의 기존 궤도를 완전히 이탈하며 온데 튀어다니다 보니 그때마다 반복적으로 내가 저항하고 도망치는 동일한 포인트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격렬히 반발해대는 내 내면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그 모든 자아들을 그저 안아주었다.
내가 안아줄 수 있는 힘은, 거절 미션들을 수십 번 경험해보며 태어나서 기어가다 걷고 일어나다 달리는 아기처럼 힘이 찬찬히 길러졌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 행동이 고장 난 것처럼 막 저항할 때마다 내 안의 나와 즉석 협상을 하게 만들며, 두려움의 원인을 찾고, 또 자책감의 원인을 같이 찾아보고, 그간 피하고 묻어둔 것을 잘 생각해보고 끄집어도 내보고, 인정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며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다독여서 앞으로도 거절 미션을 루틴으로 궤도 이탈을 보다 편안하게 시도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보태는 방법을 배웠고, 그렇게 나는 계속 내 힘으로 내 모든 마음들을 안아주며 친해질 생각이다.
2단계. 앞으로 걸어보기
내 내면에는 두려운 아이가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어 왔다. 그리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거대하진 않고 가끔씩 올라오면 지금도 끊임없이 다독여주고 이해해 주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사실 그렇게 두려운 자아가 커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래전 어느 날 나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험담하는 대화를 어쩌다 그대로 듣게 되었다. 마치 드라마에서 있을 법 한 상황처럼, 나는 정말 그들의 긴 대화 그대로를 날 것 그대로 그야말로 우연히 듣게 되었다. 물론 타인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걸 짐작하는 것과 다이렉트로 바로 내 욕을 신나게 하는 대화를 듣게 되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큰 차이였다.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나를 지키는 내 내면이 강하지 않던 시기였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나는 괜찮은 척 모르는 척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나는 그룹에서 실제로 내쳐지는 게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끼어야 살아남을 것 같아서 막 연기하며 애쓰며 살았던 혹독한 기간이었다. 그러던 중 짝짓기 게임 행사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는 여전히 막 퍼주며 애쓴 이들에게서 나만 또 선택받지 못하였고 그 이후 내 안의 두려운 자아는 더더욱 거대해지며 완전히 장악하며 두꺼운 자물쇠를 여러 개 채우고선, 광대의 가면을 쓴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서론이 길었다.
도전
그렇던 내가!
오랜 시간 버티고 버티고, 나를 객관적으로 아는 능력도 조금씩 기르고, 그러면서 또 스스로 조금씩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와중, 드디어 올해, 나는 새로운 사람에게 같이 놀자고 내가 손을 '먼저' 내밀기로 결심했다. 시시때때로 울면서 나타나는 두려운 자아에게 나 이제 좀 변했다고 말해주고도 싶었고, 이제는 지긋지긋한 피해자 코스프레의 왕따놀이도 좀 그만하고 싶었다. 내가 알고 싶은 다른 새로운 세상 사람들이 보였다. 세상은 넓었다. 알고 보니 우물은 수천만 개였다. 내가 안 걸어갔을 뿐. 어느 휴일, 속으로는 백만 번 고민했지만, 겉으로는 별 일 아닌 척 슬쩍 밝은 메시지로 먼저 말을 걸어 보았다. 그렇다. 나는 두려운 자아에 역행하는 굉장한 거절 미션을 나도 모르게 시도했던 것이다.
미션: 나랑 같이 놀자고 손을 내밀어보기
사실 엄청 두려웠다. 또 거절당할까 봐. 그리고 나를 알다 보면 내가 싫어질 까봐. 내가 보잘것없는데 억지로 만나주다 결국 차갑게 식을까봐. 그들은 고맙게도 흔쾌히 응해줬고, 우리는 좋은 그룹이 되었으며 이번에 나는 애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냥 내가 노잼일 지어도, 꼰대처럼 보일 지어도, 외계인처럼 보일 지어도 원래의 나 자체를 그냥 드러냈다.
결과
이번에는 잘 보이려 애쓰면서 속으로는 막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냥 겉과 속 그대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 그냥 다 보여주고 나를 표현했고 잘 들었다. 과하게 밝은 척도 친근한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맑은 토끼들이 나와 함께 해 주는 것만으로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고, 감사한 마음이 더 클 뿐이었다. 계속 가면 계속 가는 것이고 약해지면 약해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놓으면 될 일이다. 나는 어느새 내 두려운 자아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외투를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는 거절당하기를 자처해보는 나의 의도적 행동이 만들어낸 덕분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이전의 혹독한 겨울을 경험한 덕분에, 현재 이들의 따스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이제는 왕따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지도 않는다. 그리고 오래된 내 두려운 자아가 가끔 존재를 드러내더라도, 조금 더 진심으로 위로하고 다독여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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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이번 나를 안아주기 미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자신의 두려움의 원인을 스스로 찾고 끝까지 들어가서, 그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딱 맞는 유일한 열쇠를 스스로 찾게 만드는 하나의 치유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 정말이지 나는 깊은 내면적으로도 참 많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모든 건 내 안에 있었다. 그렇게 나오기 싫어했던 내 안의 두려운 자아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방법을 찾느라 온데 헤맸는데, 나만의 열쇠를 결국 내가 만들어 주었고, 나 스스로 발로 걸어 나오게 했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인지하게 되어서 참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며 거절 미션을 알게 해 준 분들께 다시금 고마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