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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원 Aug 18. 2022

자연에 인간을 품다: 멕시코 건축(1)

멕시코 건축에서 나타난 자연 친화성과 색감 다양성

건축은 본디 자연에 저항하는 일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건축이 중력의 제한을 극복하는 일이라는 건축공학적인 접근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 인간여타 동물들처럼 대지를 침대 삼아, 하늘을 이불 삼아 잠잘 수 있다면, 건축이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선조인 원시인들이 동굴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이래, 인간은 늘 불규칙한 자연으로부터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대피처 안에서 살았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움집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아파트까지 발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 주거생활에서 자연을 배격하게 되었다. 당장 외딴 자연에서의 주거생활을 대하는 현대인들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아마 빽빽한 아파트숲에 환멸을 느껴 귀농생활에 혹하다가도 벌레 따위를 떠올리고선 금세 마음을 접게 된다. 


특히 한국은 인구과밀화와 도시화가 지나치게 진행되어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 주거생활에 적응한 지 오래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세계 중에서도 건축문화가 가장 자연친화적이지 못다. 일례로 당장 유럽이나 미국의 여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공원의 규모나 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사람들이 그 공원을 즐기는 방식도 굉장히 소극적이다. 따라서 유명무실한 채로 관리비만 소진해 골칫거리인 공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파리 도심 한가운데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

이런 현실에 처한 한국에게 멕시코식 건축은 큰 본보기가 된다. 그들의 건축은 자연을 배격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연을 활용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들의 건축을 크게 두 축으로 정리하면 한 축은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 있고, 다른 한 축은 다양한 색감을 활용하는 것에 있다.


이 두 요소에 대해 설명하려면 멕시코식 가드닝과 자연친화적 휴식공간의 밀접한 연관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몬테레이 공과대학교(Tec de Monterrey) 게레타로 캠퍼스

사진은 멕시코의 한 대학교 캠퍼스 내부 모습이다. 이 얼마나 자연친화적인가? 이와 같은 정원 겸 휴식처가 캠퍼스 도처에 널려 있다. 사진에서 나무에 의해 그늘지어진 공간 반쯤 누울 수 있는 의자를 배치하여 학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반면 그늘없이 햇볕이 들이치는 공간고정되지 않 의자를 배치하여, 사용자들이 의자를 편의에 맞게 옮겨가며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의자의 색감을 결정할 때 그늘진 부분의 의자는 갈색으로, 햇빛이 직접적으로 드는 부분의 의자는 다채로운 밝은 빛깔을 활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만약 두 의자의 색이 바뀌었다고 생각해보면 그늘 탓에 다채로운 색감이 죽었을 것이고, 햇볕 탓에 칙칙한 갈색이 더 튀었을 것이다.


이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휴식공간이 모두 실내에 배치되는 우리와 극명히 대조되기 때문이다. 채광을 통해 자연빛을 받아들이긴 해도 근본적으로 우리의 휴식공간은 자연을 적으로 돌린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빛과 자연바람, 잔디를 모두 활용하여 자연을 공간 내에 녹여냈다. 누군가는 멕시코의 기후가 한국보다 덜 더워서 저런게 가능하지 않느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이곳이 더 더우면 더웠지 한국보다 결코 시원하지 않고, 태양빛 또한 훨씬 강력하다. 물론 변화무쌍한 사계절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보다 자연친화적 건축을 구축하기에  훨씬 유리한 입지가 많다. 그러나 이를 구실로 그들의 자연친화적 건축의 공을 폄하하거나 한국 자연배격적 건축을 방임하려는 것은 비겁한 태도다.


우리가 멕시코식 건축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경우 이러한 자연의 불편함을 덜어내고자 최대한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결코 자연 자체로부터 피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 멕시코의 공원들은 나무를 적극 활용한다. 멕시코의 거의 모든 공원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대형 나무 그늘이 굉장히 많다. 이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줘 뜨거운 태양빛뿐 아니라 때로는 비까지 피하게 해주는 매우 기능적인 녀석이다. 더위와 태양빛을 피하고자 무조건 콘크리트 건축물을 만들어 천장 밑으로 대피하고 에어컨을 빵빵 틀어버리는 한국의 건축 특징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 방식은 자연친화적인 지속가능성뿐 아니라 특유의 분위기 형성에도 긍정적이다. 실내 건축물 안에 들어가는 형태의 대피적 휴식은 건축주에게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카페가 그렇다. 한편 저 나무 그늘은 그 어떠한 대가도 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통제불가능성이라는 불편함을 조금만 감수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해준다. 과거 우리나라의 선비들의 청산을 노래하며 자연을 예찬했던 것도 비슷한 정신이 아닌가 싶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정신이 현대 한국에 와서는 거의 멸종된 반면 멕시코에선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공원의 나무 그늘 주변에는 늘 아이스크림 가게나 과일상들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며 흥겨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고양이도 즐기는 멕시코의 나무그늘


하지만 결국 이런 활용법에 대해서도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조시킨 것이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용과 활용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사용은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지만 활용은 그것이 가진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깐 말이다. 이들은 태양빛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인공적인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닌, 나무라는  다른 자연을 빌려 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의 활용은 있을지언정 결코 본질을 해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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