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콩 Jun 07. 2022

'허영의 시장'을 헤쳐나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

윌리엄 M. 새커리 <허영의 시장> 1849년 영국소설 

이 소설이 나올 당시는 19세기 초반의 빅토리아 시대로 독서층이 두 개의 써글로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고 해요. 바로 디킨스의 독자층과 새커리, 트롤럽의 독자층입니다. 디킨스의 소설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하층민의 삶을 주로 다루고 대중의 입맛에 맞게 아주 쉽게 읽히면서 권선징악을 기반에 둔 통속소설이지요. 디킨스가 소시민의 정체정을 갖고 있기도 했지만 결말부분에서 소유계급의 사사로운 선의에 기대고 있는 박애주의 소설이라 해결방안 제시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중상류층 사교계를 더 잘 묘사하고 비판적깊이를 원하는 독자층은 디킨스소설보다 새커리와 조지앨리엇의 작품을 읽었다고 해요. <허영의 시장>(웅진지식하우스, 2019)은 새커리가 중상류층 사교계를 치열한 시장판으로 상세하면서도 풍자적으로 묘사한 소설입니다. 당시 찰스디킨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중 작가라면 <허영의 시장>은 새커리에게 디킨스에 맞먹는 인기를 선물해준 대표작입니다.


1. 줄거리

소설은 고아 출신 하층민 레베카와 중산층 주식중개인의 딸 아멜리아가 사립학교인 핑커턴학교에서 우정을 쌓고 졸업하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레베카는 하층민의 가장 좋은 일자리였던 가정교사로 취직을 하고 아멜리아는 학교에서 신부수업도 마쳤겠다 신부감으로 간택되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연재로 풀어낸 소설이기에 한 회 분량의 이야기가 시트콤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두 젊은 여성은 집안 어른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하는데 레베카는 계급상승을 위해, 아멜리아는 사랑을 위한다는게 다른 전제입니다. 이런 전제에는 디킨스식 뻔한 결말로 이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과 철저한 비니지스로 점철되는 사교계묘사가 새커리의 필체로 신랄하게 펼쳐집니다. 


(p.168)게다가 이런 돈거래, 삶과 죽음을 둘러싼 투기며 유산배분을 둘러싼 암묵적 전투 등은 이 허영의 시장에서 형제간의 우의를 참으로 돈독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나만 해도 두 형제가 5파운드짜리 지폐 한 장 때문에 장장 50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세속적인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견고하고 변치 않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실로 감탄하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특히나 사교계 여성들이나 인사들이 서로를 험담하고 시샘하는 장면을 그리거나 표현할 때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마치 신문의 논평을 읽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계급상승을 원하는 중하류층에게는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중상류층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주인공이라는 충족감을 주며 전계층을 아우르며 사랑받았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p.193) 나만 해도 대단히 존경하는 지인들로부터 몇 번이고 브라운 양은 보잘것없는 계집아이일 뿐이며 화이트 부인 역시 작고 예쁘장한 그 얼굴 말고는 볼 것 없는 위인이며, 블랙 부인은 말 한마디 변변히 할 줄 모른다는 등의 조언들을 들어왔다. 그러나 정작 나는 블랙 부인과 가장 즐거운 대화들을 나누었으며(친애하는 부인, 그 내용은 물론 공개할 수 없지요), 모든 남자들이 화이트 부인의 의자 주위로 모여드는 것을 보았으며 젊은 남자들이 브라운 양과 춤을 추려고 경쟁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같은 동성에게 경멸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 그 여성에게 대단히 큰 칭찬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 작가의 넘치는 해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저자의 이런 적극적인 간섭이 당시유행이자 대중적인 방법이어서 친절한 해설이 될 수도 있지만 독자의 비평이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해석이 될 수 있기에 저자에게 끌려가지 않으며 읽는 게 좋겠어요. 특히 당시 하층민 여성이 이 소설을 읽었다면 속물 근성이 뿌리깊은 레베카를 새커리가 했던 것처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야 했던 레베카는 기회가 올때마다 자신의 생존을 염두에 두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요즘 시대로 보자면 아멜리아가 더 수동적이고 답답한 여성상이지요. 자기 집안이 망하자마자 자신을 버린 연인을 주구장창 기다리기만 하고요. 홀어머니가 되서는 아이에게 지나치게 헌신하며 자신의 마음을 모른척 하며 새출발을 하지 않으려는 아멜리아. 레베카는 '허영의 시장'에 너무 잘 적응해서 시장에 잡혀먹혀버렸다면 아멜리아는 시장에는 관심도 없이 그 바깥에 머무느라 자신까지 돌보지 못하고 어머니로서의 인생만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새커리는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연민도 놓치지 않지만 그 연민이 아멜리아에게 치중된 느낌을 받은 건 저 뿐인가요?  


3. 피라미드 꼭대기, 올라가면 행복할까?

귀족들, 상류층의 삶이라는 게 올라갈수록 더 치열한 시장판이구나, 부와 권력이 들어오는 순간 시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마는 것이 부의 속성같네요. 그 가운데 결혼제도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호해주는 가장 거대한 합병이자 비지니스였겠고 상대적으로 선택권도 권리도 미미했던 여성은 결혼을 안해도, 결혼을 해도, 어머니가 되어도 계속해서 약자로 머물러 있었으니 어쩌면 레베카의 발악은 하층민 여성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을수도요.(죄책감과 같이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을 헐뜯으며 자신의 자의식을 보살펴야 했던 게 아닌가, 허영의 시장은 오늘날까지도 끊기지 않고 재연되고 있는 이야기인가봅니다.


이로써 천년넘게 주류 어른들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이 허영의 시장에서는 거저주는 게 없는 것이 확실하네요.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유지되는 시장의 속성, 그런 시장에서 오는 초대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시장의 규모나 냉혹함, 불행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인간 속물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사교계를 풍자함으로써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레베카와 아멜리아는 두 여성을 그려내는 새커리의 필체에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결말부분을 어떻게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지 고민한 흔적도 있어 보이구요.^^ (와닿지 않았다는 것이죠.ㅋ)


하지만 새커리의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빅토리아 시대 때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인 워털루 전쟁 전후로의 상황들이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입장에서 어떤 분위기였는지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식민지 건설과 산업화, 전쟁 참가로 인해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영국의 권태로우면서 소란스러운 시대 느낌, 군인들과 멀리 식민지에 파견된 관리들에 대한 당시의 정경들과 상류층 마차나 사교계 소지품들의 묘사, 이런것들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눈에 선했습니다. 새커리의 마지막 일침을 남기며 다음엔 새커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심리소설의 문을 열어보인 여성작가 조지앨리엇을 만나보려 합니다. 


(p.428) 안보이는 곳에 숨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성질 나쁜 지혜의 신은 착하고 온순하며 지혜로운 사람들을 비참하고 수치스럽게 만들고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사악한 인간들을 출세시키며 기쁨을 느끼는가 보다. 그러니 잘 먹고 잘사는 형제들이여, 부디 그대들의 성공을 부끄러워하기를, 그리고 그대들보다 나은 사람들, 아니 혹 더 낫지 않다면 운이 더 나쁜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기를. 당신의 미덕이란 그저 이미 충분히 있으니 유혹을 좀 덜 느끼는 것뿐이요, 성공은 운이 좋았던 덕이며 높은 지위는 조상 덕이고 부는 조롱의 대상이나 되어야 마땅한 이 마당에 어찌 다른 누구를 경멸할 수 있을 것인가.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p.200

매거진의 이전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기 전에 《파리의 우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