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울 May 11. 2023

바리새인임을 자처함

기독교 신약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이다




어느날 예수에게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물었다.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는 예수가 "돌로 쳐 죽여라"하면 "이웃을 사랑하라더니, 왜 말이 달라지냐? 이 협잡꾼"이라면서 비난하고
예수가 "돌로 쳐 죽이지 말아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 나쁜놈"이라면서 고발하려던 것이었다
요즘 말로 말하자면 가불기를 쓴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그러자 군중들은 어떻게 하질 못하고 입 다물고 모두 집에 갔다

예수는 그 간음한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하고 말했다.




이 짧은 일화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예수의 지혜와 자비, 인류애이다.
건수 하나 잡아서 어떻게든 엿을 먹여보려던 바리새인들이 꼬랑지를 내리고 돌아간 모습
이를 보며 우리는 통쾌함을 느낀다. "바리새 쉑들 깐족거리더니, 할말 없쥬? 아무고토 못하쥬?"


이 일화에서는 선과 악,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극명하다.



그러나 가만히 그 바리새인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유에서건 그들은 예수에 대한 강한 증오를 품고 있었고,

율법을 어긴 죄인을 처벌하고자 하는 나름의 강한 정의감에 불탔다.
그게 옳든 그르든, 증오나 정의감은 인간의지의 가장 강한 동인 중 하나임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미운 협잡꾼 예수가 던진 "네가 죄가 없다면 저 여자를 돌로 쳐라"라는 말에
스스로를 돌아봤고, 스스로의 자격없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돌아갔다.
이들의 태도는 사실 매우 놀라운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는 숱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무지로써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보며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모순, 한계에 대하여 일말의 관용을 허하지 않고 쉽사리 돌을 던진다. 특히 인터넷에서.


나는 사실 남 비난을 잘 못한다. 아주 불편할 정도로 그렇다.
내 스스로가 너무 많은 실수를 하고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 모질게, 사납게 평가하는 것이 도무지 안 된다.
내가 그들보다 특별히 더 도덕적으로 나은 사람이란 생각이 안 들고,

앞으로 나도 그러한 실수를 안 할 것이란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오만가지 욕구와 감정들... 명예욕, 승부욕, 물욕, 성욕, 허영심, 자존심 등등은 나로 하여금 크고 작은 잘못들을 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사랑, 동정심, 배려심 같은 언뜻 훌륭해보이는 감정이 원인이 되어 저지른 잘못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연히 타인에 대한 관용도가 아주 높은 사람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하거나 화나게 해도, 그 사람의 욕구나 콤플렉스, 심리적 압박, 자존감 등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게끔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결국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게 된다.


요즘, 특히 인터넷 세상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속죄와 용서, 자비와 갱생의 가치를 믿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
서로가 서로의 대법관을 자처하는 세상에서 나는 '쿨병', 'PC충', '위선자' 취급을 받는게 좀 외롭다



기독교를 믿어본 순간은 단 한번도 없지만

성서에서 우연히 동질감이 느껴지는 인물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리새인이다.
나는 내가 바리새인임을 자처한다.
결코 훌륭한 사람이라 불릴 수는 없겠고, 스스로도 그것을 괴로워하지만
내가 아무리 비열하고 못됐어도 눈 앞의 죄인 앞에서 쥐고 있던 돌을 내려놓는 만큼의 인간일수는 있음에
죄 많은 스스로를 조금은 더 쓰다듬어 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비오는 명동에서 김창완을 만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