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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울 Apr 29. 2023

2. "너는 귀가 '왜' 그래?"

존재하지 않는 왜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는 것

고니 : 대충 얘기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아귀랑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짝귀 : 으 취한다. 기술을 쓰다 걸려서 귀가 잘리고, 기술을 안 쓰니까네 이게 잘렸나?

 - 영화 <타짜>


선천적이고 희귀한 기형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언뜻 당연해보이지만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바로 내 귀가 '왜' 그러냐는 것이다.


내 생김새에 대하여 '왜'를 설명해야한다는건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너는 왜 못생겼어?"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례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 이유 1 : 애초에 사람이 그따위로 생겨먹은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 이유 2 : 볼 때마다 매번 저 질문을 하기엔, 우리는 일평생 너무 자주 못생김들을 접한다


그러나 그 생김새가 '흔히 보기 어려운 특성'이라면, 사람들은 '왜'를 물어볼 용기를 조금 얻는 것 같다. 그도 그럴만하다. 다른 7,999명과는 달리 어떤 한놈의 귀가 반쪽짜리라면, 필시 아귀와 화투를 치면서 기술을 쓰다가 걸렸다던가, 고갱과 싸우고는 스스로 귀를 잘라서 창녀에게 줬다던가, 볼드모트의 부하들과 싸우다가 살을 잘라내는 마법주문을 귀에 맞았다던가하는, 인과적인 사연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상도의 전설적인 타짜도, 아를의 고독한 예술가도, 악의 무리와 싸우는 마법사도 아닌 나는, 그러한 인과적인 사연이 없는 관계로 '왜'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퍽 애매하다.

내가 왜 못생겼는지에 대해 설명해야하는 것과 같은 난처함을 나는 느낀다.


물론'왜'에 대한 답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이렇게 대답할 경우 아주 훌륭한 대답이 될 수 있을 터이다.


"응, 임신 초기 4~8주 태아 시기에 귓바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유전자 이상, 고령 출산, 산모의 약물 투약, 바이러스 감염, 방사선 조사 등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선천성 기형질환인 소이증(microtia) 때문이야. 태생 5주 때에 귓바퀴가 될 6개의 이개융기가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조직 덩어리들이 모여 귓바퀴를 형성하기 시작하거든, 나의 경우는 이러한 이개의 발달과정 중에 어떤 이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지"


게 '왜'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나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


그러면 사실상 '왜'에 대한 답은 주지않고 '그냥'이라는 가장 불성실한 답변을 준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는다. 저 간단한 문장으로 그들의 궁금증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가성비 좋은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뭐 어줍잖게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왜'를 묻지 마세요. 그것은 폭력입니다" 따위의 말을 하면서, 일반인들의 몰이해나 배려부족을 성토하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나의 경우는, 그런 질문들이 기분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도 않는다. 사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나였어도 누군가에게 엄청 물어보고 싶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소수자이거나 기형아로 태어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왜'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는 삶이라는, 소소하고 자질구레한 깨달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인간의 속성이란게 그런 것 같다. 다수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지만, 소수의 양상에 대해서는 꼭 '왜'를 탐구한다. 말하자면 general한 양상을 상수 a로 두고, exceptional한 양상은 그 a에 어떤 변수 X가 더해지고 곱해져서 생긴 결과값 Y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부분에서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 속한다면, 당신은 필시 어떤 변수에 의해 소수가 되었는지 질문받는다. "당신은 왜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나요?", "그 분은 왜 여지껏 결혼을 안했대?", "걔는 왜 옷을 그렇게 입는대니?", "너는 왜 귀가 반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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