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고삐 풀린 망아지
'자유'는 사실 냉엄하다.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순한 방종과 자유는 결정적으로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
-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 자본론>
서른 즈음에
흔한 2가지 경험
지난 글에서 운을 떼었듯 나는 흔한 90년대생이다. 일과 삶. 이 둘을 모두 좋아한다. 아니지.. 그 존재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상태. 즉, 주어진 삶을 나 다운 모습으로 즐겁게 운용하고 주체적으로 일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 이 과정을 사랑한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비슷할까?
이런 성향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먼저 2019년, 맹목적으로 단기적 이익만 좇는 회사에서 성장의 한계와 회의감을 느끼고 퇴사라는 뻔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흔한 실업자가 되었지.
첫 번째는 내적 욕망에 의한 자발적인 행동이었고, 두 번째는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한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덕분에 2년 동안 텅-장과 퇴직금 그리고 국가 보조금을 나란히 경험할 수 있었다.
텅장?
누구나 예상해 본 결과잖아
경제적인 타격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매달 안정된 월급을 지급하는 조직 안에서 '퇴사'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순간은.. 어쩌면 텅 비어버린 통장 아닐까. 차곡차곡 모아둔 월급이 바닥나는 순간 말이다. 나 역시 언젠가 '그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항상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코로나라는 대유행 바이러스가 우리를 찾아왔다. 퇴사 후 미래 걱정 없이 그저 '말로만' 자유를 외치며 호기로운 짐승처럼 뛰놀던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자리마저 잃었다.
다음 달 월급이 갑자기 사라진건 물론이거니와 그 흔한 아르바이트 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잔고는 바닥이 났고, 카드 값을 갚지 못해 카드사로부터 입금 독촉과 신용 등급 하락 안내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자금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과거 언젠가 이 순간을 그나마 예상해본 경험이 있다는 정도. 딱 그 정도랄까...
예상치 못한 녀석의 등장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 삶에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어서 차마 예상하지도 못한 바로 '일상'이라는 녀석.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있었다.
회사든 알바든 어딘가 소속되어 근무할 땐 언제나 '출퇴근 시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정해둔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고 퇴근하며 그 시간을 기준으로 내 삶을 구성했다.
이를 테면 오전 9시 출근인 경우, 아침에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회사 근처 카페나 사무실로 향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이후에는 보통 야근을 하거나,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친구들과 저녁을 먹거나 혹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처럼 회사에서 정해준 근무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가 바로 <일상의 기준>, 즉 삶의 기준이 되었다. 당연히 그 시간을 기준으로 밥을 먹고 취미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사라졌다. 그날그날 행동을 지탱하던 하루의 <기준점> 말이다. 이상했다.
나는 규정된 출퇴근 시간을 벗어나면 분명 자유로울 거라 상상했다. 누군가 정해 놓은 답답한 시스템 밖으로 나가기만 한다면 자유롭게 창의적인 결과물을 마구 생산할 수 있으리라.. 멍청한 착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생산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으리라 자만했던 거다.
규칙 없음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은 자유로웠지만 규칙이 없었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을 설레는 마음으로 읽으며 회사의 '규칙 있음'이 참 구시대적이라고 비판했던 나는 정작 규칙이 사라진 내 일상을 운용할 능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리저리 튀는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 또한 없었다.
초반엔 꽤나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노력을 한다고 착각했다. 즉흥적으로 강연을 신청해 배움을 얻고 오프라인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면 곧장 달려가 참여하며 즉흥적으로 여행 다니는 생활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즉각적으로 시도해보았다. 어떤 통제도 없이 마구잡이로 욕망을 분출해대는 시간은 정말 신났고, 그 당시에는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자유인 줄 알았다.
하지만 금방 깨달았지. 즉흥적인 삶에 도취되어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것을.
고삐 풀린 망아지의 최후
가장 먼저 일상적으로 반복되던 단순한 생활 패턴이 무너졌다. 몸무게도 8kg이나 늘어 난생처음으로 60kg이라는 숫자를 찍었다.
나는 굉장한 잠만보이다.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오전 10~11시 때로는 오후 1시까지 늦잠 자기 일쑤였고, 새벽 2~4시 올빼미 생활은 당연했다. 늘 불규칙한 식사를 했고 하릴없이 핸드폰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절제 없이 즉흥적으로 소비하며 그날의 기분과 욕망에 따라 행동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저지르기 바빴지만 정작 남는 결과물은 하나도 없었다.
점점 무기력해졌고 그저 시간에 이끌려 살아지는 대로 사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은 바삐 움직였지만 내게 남은 건 늘어난 몸무게, 외식과 배달 음식 중독, 유튜브 시청시간, 무너진 일상 그리고 반복되는 무기력함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조직 밖에서 규칙 없이 생활했던 지난 1~2년을 되돌아보았다.
하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스무 살이 된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학교로부터 해방되었다며 느꼈던 묘한 자유로움도 떠오른다. 평소 지각을 몇 번 하든, 술 먹고 다음날 결석을 하든, 시험 결과가 어떻든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얄팍한 쾌감만을 즐겼던 시절. 철 없이 으쓱하는 마음. 회사 밖에서 느낀 자유로움이 딱 스무 살의 나와 닮아있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것. 자유는 사실 냉엄하다는 것. 단순한 방종과 자유는 결정적으로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이 어리석은 인간이여..
악!!!!!!!
이래서는 안 되겠다
말 그대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무기력해진 일상과 불어난 몸 뚱아리, 회사 밖에서는 스스로 어떤 결과물도 창출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노답인 현재 나의 상태를 글로 적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 눈앞에 펼쳐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둘러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근무 환경이 변한 재택 근무자들은 어떻게 일상을 다스리며 일을 병행하는지 찾아보았다.
특히 자발적으로 조직을 나와 프리랜서, 1인 기업가로서 주체적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의 일상에 주목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삶을 운용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시간을 살고 있을까? 거침없는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어떻게 자신을 경제적으로 책임지고 있을까?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돈과 건강. 아이러니한 이 두 가지 명제를 잘 해결하며 살고 있을까? 자신의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하루를 보내는 걸까?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흐릿한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루틴.
저마다 규칙적인 습관이자 루틴이 몸에 배어있었다. 엄청난 비결이 숨어있는 게 아니었다. 하루에 꼭 필요한 활동을 정하고 그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지속할 뿐이었다.
정말 단순했다. 규칙적인 루틴은 마냥 고루한 존재라 생각했는데,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는 단단한 삶의 기준이 된다는 거다.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리듬이 내 몸을 무너뜨리고 정신을 흐릿하게 만든다고 했다.
나는 무너진 일상을 회복시켜야 했다. 무기력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특히 생산성 있는 사람인 척, 겉으로만 생산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생산력을 기르고 싶었다. 주체적으로 삶을 구성하고 독립적으로 나의 생계를 책임지며 몸과 정신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규칙적인 루틴을 설계하는 이 아이러니함이 어색하지만, 아직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 루틴을 만들고 생활에 적용시키는지 부족하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2021년 12월. 이 기록을 펼쳤을 때 흥미로운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즐거운 여정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