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먼저 전화해 주어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준다면
호몽님의 전화
나의 사생활을 이야기한다는 것 먼저 꺼내기보다는 누군가 물어준다면 이야기할 수는 있는데 가끔 전화해서 물어주는 분이 호몽님이다.
전날 밤잠을 설치고 파 다듬어 김치 만들어 놓느라 잠을 못 잤는데 남편이 잠을 안 자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물건을 끄집어내고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자라고 해도 계속 잤다면서 못 자고 배회를 한다. 자려고 눈을 감아도 불안해서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초저녁엔 시어머니가 올라와서 맥반석인지 돌을 세 개 가져와서 목뒤에 붙이면 치매가 낳는다며 붙이라고 주는데 밋업준비하느라 어수선하고 맘이 급해 분주하게 모니터 켜고, 폰을 켜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돌을 붙이는 테이프를 달라고 한다. 우리 집엔 살에 붙이는 테이프가 없다. 밴드나 파스 여러 가지 있어도 사용기간이 지나 접착력이 떨어져 몸에 붙지를 않는다. 여러 번 시도하다가 안 돼서 성질이 났는지 하는 말이 “눈까리 좋은 지가 좀 붙이지” 하며 구시렁댄다. 갑자기 그 말에 귀에 꽂혀서 “눈까리요? 저도 어머님만큼 눈까리가 나쁘거든요.” 되받았다. 그러니 한다는 소리가 “맨날 폰이나 쳐다보고 있으니 안 나빠질 리가 있나?” 열이 더 받았다. “한 푼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폰으로, 또는 컴퓨터로 하는 일을 해야 몇 푼이라도 생기니 하는 건데 뭐가 잘못되었어요? 집에 환자 놔두고 나가서 일하는 게 좋겠습니까?”
나도 나가서 활동하며 다니는 게 집에서 있는 것보다 훨씬 좋고 에너지가 팍팍 생기는데 종일 화면만 쳐다보고 있으니 우울증 올 거 같고 집에서 사고만 치고 있는 사람 뒤치다꺼리 하는 게 좋기만 하겠냐고 자기 정신 올바를 때는 마누라 보기를 종처럼 취급하던 사람인데 치매가 발병되고 보니 아무것도 자기 불리한 거는 다 생각이 안 난다고 하고 애처럼 변해버리고 덩치만 산만해져서 100킬로가 넘는 3살 애를 다루는 수시로 폭언이 나오고 긴장하며 살아가는 내 처지가 힘든지도 모르면서 하루저녁 데리고 있어 달라고 말해도 못 본다며 딱 거절하는 노친네가 수시로 와서는 치매가 낫는다며 돌발행동을 하니 더 힘들었다.
마침 호몽님이 전화를 했다. 그래서 호몽님한테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같이 요즘에도 그런 몰상식한 말을 하는 시어머니가 있느냐며 맞장구를 쳐주니까 속이 후련해지는 듯하였다.
호몽님은 내게 많은 응원을 해준다. 자신감이 없어서 도전을 못하면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그대로 쓰면 된다며 책 쓰기를 추천하고, 수시로 먼저 전화를 해서 힘드냐고 물어준다. 남편과 같은 나이라 공감대가 비슷하여 편하게 말을 할 수가 있다. 힘들면 전화하라고 하지만 선뜻 먼저 하지는 못한다. 꼭 먼저 전화를 해 준다. 사는 곳이 가까우면 밥이라도 사주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더 고맙게 여겨진다.
딸이나 아들 남편한테 덜 신경 쓰고 나 자신을 위해 살라고 하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져야 되는데 그렇게 훌훌 벗어 던지지를 못한다.
나의 일이라고 하면 기숙사에 있는 딸을 금요일 저녁이면 데리고 와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엔 세탁한 옷을 챙기고 교복을 다림질해서 학교로 데려다줘야 하고, 아들이 파김치를 좋아한다고 엄마가 해주는 파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하니 파만 보면 김치를 담게 된다. 반찬 챙겨서 평택까지 가져다주고 와야 된다. 남들은 그걸 택배로 보내지 왜 가냐고 하지만 잠시라도 잘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맘이 편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남편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내 손이 가야만 제대로 생활이 가능하다 보니 잠잘 때 외엔 항시 주시하고 있어야 된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것이 성당에 미사 가고, 이프랜드에서 노래하고, 수다 떨며 보내거나 나가는 일은 봉사하거나 취재하거나 교육받거나 그것이 스트레스 푸는 나의 돌파구 숨 쉬는 일이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라는데 이것들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딸은 친구이자 내 속마음을 잘 알아주는 상담가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주말에 나누는 이야기들로 위로가 된다. 그런데 자기 일은 제대로 못한다. 그나마 기숙사에서 세탁기를 한 번씩 돌린다니 수건이나 속옷은 덜 가지고 온다.
입고 온 체육복이나 교복은 세탁하고 다림질해서 보낸다. 내가 전부 다 해서 그렇게 잘못 길들인 탓인가 스스로 하는 게 없다.
내가 자라면서 너무 많이 일을 해서 내 딸은 편하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나 보다. 공주처럼 크면 나중에 시집가서도 공주처럼 대접받고 산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 귀에 박혀서 나처럼 살지 않게 해야지라고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 손과 딸의 손을 보면 차이가 많다. 예쁜 손을 지켜주기 위해서 일을 안 시키는지도 모른다. 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생각하며 딸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깨물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을까마는 큰아들은 늘 걱정이 되고, 잘 있는지 신경이 쓰인다. 전화 통화하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보면 몰골이 안쓰럽다. 온몸은 아토피로 얼룩이 져 있어 대중탕에도 맘대로 못 가고, 돈을 벌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확천금이 어떻게 생기겠는가?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사이트는 얼마간 있다가 돈을 어느 정도 모으면 닫아버리는 사기성이 많은데 거기서 헤어나질 못한다. 몇 번이고 해오면서도 또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넣고 벌다가 청산당하고 이러기를 생활로 하는 것을 보면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고 자꾸만 빚이 늘어가는 것을 보니 부모가 능력이 없으니 아들이 저러나 싶기도 해서 더는 말을 못 한다. 몸으로 일해서 번 돈을 사이트에서 다 날리고 조금 벌면 기분이 좋다가 털리면 잃고 이런 생활을 반복하니 건강이 좋아질 리가 있나? 걱정이 되어 이야기하면 잔소리로 듣고 귀찮아하니 더는 안 하고 있다. 작은 아들이 혼자 있다가 큰아들과 합쳐서 살고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긴 하는데 둘이 성격이나 행동 패턴이 달라 서울서 같이 있으면서 티각태각 하며 살다가 따로 헤어져 있었는데 지난해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이번에는 잘 살고 있는 듯해서 맘이 놓였다. 작은 아들은 파김치를 좋아한다.
파김치를 먹으면 엄마 파김치가 생각이 나더라며 제일 맛있는데라고 하니 파만 보면 사서 담고 싶어 진다.
둘째가 연락이 2년 안 되다가 이제 왕래하는데 어째 난 십자가가 길까 싶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나 스스로 내려놓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더 더 생각이 밀려온다. 다 표현을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말은 함부로 하면 되지 않음을 절실히 느끼고 산다.
평소에 버릇처럼 하던 말.
밖으로 돌던 남편을 보며 하느님 제발 나만 바라보게 해 달라는 그것이 기도가 되었는지 지금은 나밖에 모른다. 이렇게 해 달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먹는 것, 입는 것, 씻는 것까지 다 손이 간다.
암보다 무섭다는 치매. 가족 중에 있다 보니 생활이 말이 아니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손도 많이 쓰고, 많이 걷고, 먹는 것도 주의해서 먹어야 하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된다. 머리로는 생각이 나는데 뭐더라?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혹시 나도 치매일까?
치매 예방 유튜브를 수시로 보게 되는데 깜박이는 건망증이 치매로 연결이 되지나 않을까? 다른 가족들도 혹시나 하고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