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2
연세 세브란스 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렀다. 아버지께서는 저녁에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서 다음날 하루는 온전히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그다음 날 특실로 장소를 옮겨 조문객들을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정신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하기보단 가까운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멀리 부산,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까지에서도 전국에서 퇴근하고, 멀리 지방까지 직접 찾아와 준 지인분들이 있어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룸메이트까지 깊은 우정을 나눈 진정한 친구가 아버지 운구까지 함께해 주고, 곁에 있어 너무나 든든하고 고마웠다.
아버지의 장례 소식을 지인이나 친구의 친구를 통해 전해 듣고 직접 찾아오거나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 준 고마운 분들도 많이 계셨다. 직접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고, 그 당시 감사한 마음을 더욱 값지게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 나를 생각해 주고, 위로해 주는 지인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시다는 부분들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고, 서로 왕래가 다소 적어져서 잘 모르는 먼 친척분들과 지인분들도 계셨지만 한 분 한 분 감사함을 가지기 위해 그분들의 얼굴과 성함을 기억하려 노력하였다.
화장터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낼 때의 심경은 너무나 가슴 아펐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인정하는 시간인 것 같아 더욱 감정이 고조되고, 참을 수 없는 눈물을 다시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다.
혈연관계로 이어진 가족이라는 존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고, 끈끈한 무언가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서로를 미워하다가도 슬퍼할 일이나 기뻐할 일이 생기게 되면 가족부터 생각나는 것이 가족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장례식을 마치고, 가져올 물건이 있어서 도시개발로 철거 예정인 집으로 잠시 들렸다. 저녁 10시라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비치는 1층에 위치한 아버지 방의 창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항상 창문을 열고 창틀에 재떨이를 올려놓으시고,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 올랐다.
아버지 방 앞쪽에 도달했을 때 “아빠~”하고 부르면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어 “어~ 막내 왔구나!”하고, 반겨주실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칠흑 한 어둠 속에서 아버지 방의 창문을 바라보며 “아빠”하고 불러보고 싶었지만 입만 벌려질 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3, 4번 반복 끝에 아빠라는 단어가 목소리에서 나오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 보았다. “아빠 난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어. 아빠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고. 아빠가 항상 자랑하던 아들. 꼭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게.”이 말을 어둠이 가득해 희미하게 보이는 아버지 방 창문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을 되뇌었다.
얼마 전 이사 간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는 다시 뵙지 못할 아버지와 그 추억이 담긴 집의 마지막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묵묵히 가슴속 깊은 무엇보다 소중한 그곳에 고이 간직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