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

24.07.29

by 조니

업무를 하다가 전화벨 소리가 울려 핸드폰 스크린을 보니 형한테서 오는 전화였다. 왠지 모르게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 일 것 같았고,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형은 거의 한 달 만에 아버지께서 눈을 뜨시고, 눈동자도 움직이시며, 사람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아버지의 몸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지신 상태라 아마도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 얼굴 보시려고 눈을 뜨신 거 일지도 모른다고 서둘러 본가로 내려와 보라고 했다.


나는 바로 본가로 가는 저녁 고속버스를 예약하고 내려갔다. 아침에 담당 선생님께서 회진을 돌으시는 시간인 08:20분에 형과 조카들과 함께 아버지께서 계시는 기독 병원으로 갔다. 할머니께서도 근처 안과에 약을 받으러 다녀오신다고 하셔서 안과에 들렸다가 기독병원에서 다 같이 만났다.


아버지께서는 4일 전에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신경외과, 내과계 중환자실로 병실을 옮겼고, 지금은 건강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지셔서 임종면회처럼 변경이 되어있었고, 중환자실 정규 면회 시간 오전 10:00이 아닌 시간에도 면회가 가능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 조금 일찍 갔는데 그날은 회진을 안 하시는 날이라 그런지 만나 뵐 수 없었다. 형이 아침마다 병원에 가서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고, 담당 선생님을 만나 뵙고 들은 아버지의 전체적인 상태를 간략하게 전달받지는 했지만 난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오전 10:00에 할머니와 함께 중환자실로 면회를 들어갔고, 아버지는 눈을 뜨고 계셨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황달기로 가득하셨다. 눈의 초점도 확실하게 보실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람 목소리에 반응하듯 그쪽으로 고개와 눈동자의 움직임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에 일하시다가 머리를 다치셔서 시신경 손상으로 한쪽 눈만 보실 수 있으셨다. 할머니께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시자마자 목놓아 울음을 터트리셨다. 할머니의 울음소리와 자식을 부르는 소리에 아버지께서는 반응을 하셨고, 아버지의 눈동자와 고개는 할머니가 서 있으신 방향으로 지그시 옮기셨다. 그 반응에 할머니는 더욱 통곡하시며, 아버지를 껴안으셨다.


나는 하염없이 목놓아 울고 계시는 할머니 건너편에 서 있었다. 간이 몸속의 해독 작용을 하지 못해 더욱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과 발을 덮여있는 이불을 걷어 확인하였고, 아버지의 손을 맞잡았다. 나지막한 아버지의 손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이 왔다고 손을 주무르면서 아버지를 부르며, 자극을 주었다. 이네 아버지께서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셨다. 그 시간이 5초 넘게 지속이 되었고, 이건 분명히 나를 알아보시고, 보고 싶으셨고,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는 의미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계속 울고 계셨고, 5분 정도 경과했을 때 중환자실 전체적인 병원 간호사 같은 오셔서 혹시 지금 임종면회를 하시러 오신 건지 여쭤보셨다. 그건 아니고, 담당 선생님께서 여러 명이 면회를 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규정상 정규 면회시간 10:00에는 한 명만 면회가 가능하고, 혹시 더 면회를 하실 계획이시면 정규 면회가 끝나는 시간인 10:30분에 다시 들어오실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아버지 옆에 할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나와서 기다렸다.


밖에 나와 대기실에 앉아있는 조카들은 아직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서 그저 핸드폰을 하며, 음료수를 먹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더욱 찡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사실만 인지한 채 어쩌면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10:30분이 돼서 정규 면회를 마친 다른 가족들이 모두 나오고, 할머니께서도 나오셔서 형과 조카들과 먼저 차에 가 있으라고 말하고, 10분 후에 난 아버지 한 번 더 보고 간다고 말했다. 입구에서 안내를 도와주는 간호사는 나의 이야기를 전달받았고, 나는 바로 다시 아버지를 뵙기 위해 위생복과 위생장갑 그리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시 중환자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눈은 다시 감겨 있었고, 나는 아쉬움에 “아버지 저 왔어요. 둘째 아들이 왔다고요! “ 몇 번을 부르니 다시 눈을 뜨시고 내가 있는 쪽으로 지그시 바라보시기 시작하셨다. 아버지께서는 힘드신지 실눈으로 유지하신 채 나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고 계셨다.


아버지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화를 녹음하고 싶어, 애플워치의 녹음기능을 켜고,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아버지에게 말한 것은 평소에 아들이 캐나다에 가서 생활하다 오고, 공기업 인턴도 하고 언제나 착실하게 살아왔지만 특별한 결과물이 없는 별 볼 일 없는 둘째 아들이 주변 사람들한테 얼마 있지 않은 자랑거리 중에 하나였고, 항상 주변에 자랑하는 말씀을 하고 다니셨다는 사실을 주변 아버지 지인분들을 만나 뵙게 되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변변하게 자랑할게 하나 없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예전에 전해 들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아버지가 항상 자랑하던 둘째 아들이 왔다고요 “라고 하는데 아버지에게 진정한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 현재 상황이 죄송스럽고, 효도다운 효도를 제대로 한번 못 해 드린 아들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속상해서 꾹꾹 참고 있던 눈물이 갑자기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 죄송해요.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 ”아버지께 뭐 하나 제대로 해 드린 게 하나도 없네요 “ 눈물을 흘리는 나의 눈동자를 아버지의 눈동자의 시선은 빤하게 계속 나를 쳐다보셨고, 초점이 흐리지만 괜찮다는 아버지의 떨리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다짐했다. ”아버지, 조만간 꼭 자랑스러운 아들이 된 모습을 보여 드릴게요! “ 만약에 아버지가 곁에 안 계시더라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한 다짐을 꼭 이루겠다고 반복해서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지금도 견디느냐고 많이 힘드시고, 우리 얼굴 보느냐고 더 피곤하실 텐데 조금 쉬면서 한숨 푹 주무세요. 제가 또 아버지 뵈러 올게요 “하고, 눈에 맺힌 눈물이 다 마르기 전에 아버지께 빠르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형이 주차장 오는 길을 카톡으로 보냈었는데 그걸 확인하고, 한동안 나는 잠시 중환자실 입구에서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다짐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가슴속 깊이 견고히 다지고, 할머니와 형과 조카들이 기다리고 있는 차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나온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자는 다짐은 항상 명심하며, 그 다짐과 행동이 빠르게 실행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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