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아버지

24.07.20

by 조니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기독병원 응급실로 이동하였다. 응급실에는 형이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싶어 형이랑 보호자를 교대하고, 바로 아빠의 얼굴을 보러 들어갔다.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도 참담했다. 인공호흡기가 입속에 넣어져 있었고, 황달 증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얼굴이 전체적으로 주황빛이셨다. 눈을 뜨고 계셨지만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으셨고, ”아빠 아빠 저 왔어요! 알아보시겠어요?” 몇 번이고 이야기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직 초점 없는 노르스름하게 변한 아버지의 눈동자만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보다 고집세고, 성질부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던 나였지만 이렇게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계시는 한 없이 나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 나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평소에 단 한번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효도 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했다.


주말에 새벽에 일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로 다시 내려간다. 아버지의 상태가 7월 1일 입원하신 이후로 호전되지 못하고 있고, 간기능이 거의 상실된 상태였다. 몸에서 전체적인 해독 작용이 어려운 상태라 황달 증세와 손, 발의 붓기가 처음에는 복수 제거 시술을 통해 개선되었었는데 지금은 손과 발이 거의 터질 듯이 엄청 부어 있었다. 웅크려져 있는 아빠의 손을 조금씩 펼치고, 손을 맞잡았는데 여전히 온기가 느껴지고, 손의 미세한 떨림도 느껴졌다.


아버지의 귀는 열려 있으리나 믿고 계속해서 ”아빠, 작은 아들 왔어요! “를 반복해서 인지 시켜 드렸다.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고, 작은 아들이 아버지 옆에 있다고… 의사들 조차 아버지의 상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고, 담당 의사가 오셔서 가족들과 앞으로 약물치료나 응급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상의하라고 했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아버지가 생을 마감한다는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저 돌아가셨으면 하는 눈치들이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부모, 아내, 형제, 자식들에게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고, 또한, 금전적으로도 많은 사고를 일으켜 가족들에게 신뢰, 존중 그리고 믿음까지도 모든 면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이셨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 또한 본인이 저지른 사건, 상황들에 대한 책임이겠지만 자식이자 남편이자 형님이자 아버지인 존재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태인데 아무렇지 않은 모습들을 보니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는 가족들이 싫다.


가족들이 왜 존재해야 하고, 삶에서 필요한지 그 존재 의무가 나에게선 이제 사라졌다. 혈육과의 밀접한 관계, 추억을 함께 간직하며 성장해 온 관계의 중요도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가족의 존재에 대한 필요성이 무의미 해졌다.


항상 스스로 외치고 다녔던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문장이 이제는 우리 가족들에게 더 성립되는 단어가 되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게 되는 감정들을 항상 마음속에 상처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재산이나 다른 문제들을 생각하기보다는 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할 일들을 생각하고, 나의 위치해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버지 죄송해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