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

24.07.01

by 조니

오전 08:49 형한테 부재중 전화 2통이 핸드폰 배경화면에 떠 있었다. 무뚝뚝한 형제지간이라 평소에 용무가 없으면 잘 전화를 하지 않는데 2번이나 전화를 한 것을 보면 급한 일인 것 같아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은 전화를 받자마자 "병훈아 아버지께서 새벽에 쓰러지셨어, 지금 응급실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셔"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깨어나실 수 없을 수도 있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쿵광쿵광 요동치는 심장박동을 무시한채 고속버스 좌석을 예약을 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서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저번주 월요일에 본가에 내려가 할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집 앞 밭에서 감자를 캐고, 다음날 새로 이사 갈 집 앞 밭에 아버지와 단둘이 마늘을 캐러 갔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늘을 캐고,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함께 들린 GS 편의점에서 컵라면, 탄산음료, 과자 이렇게 3가지를 구입해서 편의점 안에 배치되어 있는 테이블에서 먹은 것이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초라한 인스턴트로 구성된 점심 식사가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라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멤돌며 나의 마음을 계속 짖눌렀다. 본가로 향하는 한시간 반동안의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흐르는 눈물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잠겨지지 않았다.


평소에 아버지의 잔소리가 귀찮았지만 유난히 이번에 본가에 내려갔을 때는 잔소리도 안 하시고, 화도 안 내시고, 오랜만에 부자지간의 대화를 했다. “함께 요즘 사는 게 어떠냐 이사 올 집이랑 토지를 너 명의도 해줄 거다 형이랑 이야기했는데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니깐 집 지분 몇 프로를 가지고 싶냐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라고 물어 보셨다. 나는 솔직히 “돈이 얼마가 됐든 크게 상관이 없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이유가 아무리 아버지 때문이라도 하지만 형제들 사이에 돈 앞에서 형제간 우애의 밑바닥을 어디까지 인지 보았고, 그런 모습이 정말 싫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말다툼하는 순간에 나는 참지 못하고 “집에서 이런 꼴 보기 싫어요”라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 순간 작은 어머니 중 한 분께서 나에게 다가오셔서 다소곳이 말하셨다. “너도 시간이 지나면 왜 그런지 알게 될 거고 이해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더 큰 소리로 "저는 안 그럴 거예요."라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드렸다. 거의 10년 넘게 된 일인데도 아직까지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최근에 형한테 집 사는데 얼마를 해줬든 그런 거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똑같이 될 거 같아 그러기 싫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말했다. ”애초에 아버지한테 제가 돈 필요하다고 한 번이라도 말씀드린 적 있나요? “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아니, 없지.”라고 말씀하셨다. “저도 돈 있으면 좋죠,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하지만 전 애초에 형제가 그렇게 돈 때문에 싸우지 않으려고 그런 거예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아빠는 네가 뭐라도 있어야 어디 가서도 자신감 있게 발언도 할 수 있고, 생활하는데 큰 이점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래.”라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 주제로는 아버지와 나의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너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냐고 물어 보셨고, 저도 결혼을 왜 안 하고 싶겠어요 주변 친구들 사촌 동생들도 결혼을 하고 있는데 현재 준비되지 않은 나의 상황과 아직 목표를 이룬 것이 없어 속상하다고 말씀드리니 “네가 결혼하게 되면 아빠가 달러 빚을 지더라도 너 집을 해주지 “라고 하신 말씀이 정말로 내가 시기가 맞아서 일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보금자리인 집을 사주시고, 조금은 편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도와주셨을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 길지 않았던 몇 분간의 대화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자간의 대화였다.


마늘 밭 잡초 제거를 끝내고, 뽑아 놓은 마른 고추를 태워야 한다고 하셔서 집 쪽과 옆집 담장에 붙여져 있는 마른 고추를 밭의 중앙 쪽으로 옮겨 놓았다. 다음날 할머니와 함께 와서 마늘을 캐기로 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집은 일단 6:4 지분으로 하고 나중에 집이랑 땅 다 너 이름으로 해줄게. “ 이 한마디를 하셨는데 평소에도 계속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둘째 아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과 자식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고, 몸이 편찮으신데도 많은 생각을 하셨구나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15년 전에 친구분한테 돈을 빌려주기 위해 땅들과 집을 담보로 16억이 넘는 돈을 빌려 주시고, 아직까지도 받지 못하고 계셨다. 그 친구분은 그저 이자만 대신 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실수가 아버지의 형제들과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 모두와의 관계에 문제가 되는 큰 부분 중에 하나였다. 그 스트레스로 몸 상태를 살피시지 않으시고, 불 꺼진 방 안에서 외로이 술을 더 자주 드셨던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약 2달 전부터 아버지의 몸상태가 안 좋아지셨고, 예전에 문제가 되셨던 간 쪽에 다시 문제가 생기셔서 복수가 차고, 발도 퉁퉁 부어 있었다. 평소에도 병원 가시는 것을 무서워하셨던 아버지는 이번에도 병원에 가시기 싫어하셨고, 나는 그래도 몸의 심각성이 보여서 “아빠 내가 있을 때 같이 병원에 가자.” 몇 번이나 말했지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아지고 있어.” 저번주 금요일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억지로라도 내가 병원에 모시고 갔더라면 아버지가 지금 응급실 침대 위에서 인공호흡기를 끼고 계실까 하며 자책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버지께서 쓰러지시기 이틀 전에 아버지한테 마지막 전화가 왔었다. 그날 오전 07:00 집 근처 공원에서 8km 러닝을 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자다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귀찮음에 다시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사실 그날 오전에 할머니께서 전화하셔서 셋째 작은 아버지가 할머니 일을 도와드리려 내려오셨는데 밀짚모자가 없다고 어딨냐고 전화를 하셔서 아버지도 비슷한 걸 물어보겠지 하면서 미리 짐작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에 먼저 전화를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을 때는 얼마나 많이 아프셨으면 자식한테 전화 걸은 게 아닌가 왜 받지 않았을까 평소에 아버지께서 형과 나에게 해준 게 없다 없다 이야기하셨는데 되돌아 생각해 보면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나도 아버지께 특별히 해드린 게 없다. ”평소에 계실 때 잘해라 잘해라 “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래야지 했는데.. 결국 그렇게 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불효자의 심정이 이런 건가 보다.


본가에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많은 심정의 변화가 있다. 평소에 미루기를 좋아하고, 뭐 하나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현재 나의 상황과 상태가 바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발자취의 결과이다. 기독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뵙는 아버지의 얼굴이 마지막이 아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