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24.07.31

by 조니

17:35 형한테서 전화가 오는 벨소리를 듣고, 나는 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형은 차분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 같다고 의사한테서 연락이 왔어..” 그 소리를 들은 나의 마음은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나 또한 차분한 목소리로 ”알겠어. 얼른 준비하고 원주로 내려갈게. “ 아버지의 현재 건강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기다리고 싶지 않았던 그 기다림의 순간이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큰 백팩에 서둘러 필요한 짐들만 간단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10분 후 형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병훈아 아버지 맥박이 다시 돌아오셨데. 안 내려와도 될 거 같아. “ 나는 순간 “휴..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그래도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는 신호라고 생각되어 싸던 짐을 마저 싸면서 원주에 내려가는 고속버스 예매를 하려고 핸드폰으로 예약 어플을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지금 시간부터 막차까지 모두 매진이었다.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가야겠다. 생각하고, 컴퓨터로 하고 있던 업무를 다시 하면서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밥이 다 되고, 엄마가 요리해서 얼려주신 제육을 해동하면서, 김치와 마늘을 먼저 프라이팬에 볶고 있었다. 형한테서 연락 온 지 약 1시간 후인 18:53에 다시 형한테서 오는 전화 진동이 오고 있었다. “아.. 예감이 안 좋은데.. ” 왠지 안 좋은 소식일 거 같아 받기가 싫어서 5초 정도 그냥 쳐다만 보다가 결국 형의 전화를 받았다. “병훈아… 아버지 돌아가셨어..” 나의 눈가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알겠어. 얼른 준비하고 내려갈게.” 가지고 갈 짐들은 미리 다 싸 놓았고, 고속버스 예매 어플로 다시 들어가서 원주로 가는 버스가 전부 매진이 된 페이지에 하염없이 새로고침을 누르기 시작했다. 평소에 원주 가는 버스는 평일 저녁에 매진이 되는 일이 거의 없는데 휴가 기간이라 그런지 전부 매진이라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고속버스 예매 페이지로 들어갔는데 방금 전에 20:10 임시운행 버스 목록이 새로 생겼다.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예매 버튼을 눌러 예매완료를 했고, 챙겨갈 물건 중에 빠진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하고, 집을 나섰다.


신림역에서 교대로 향하는 2호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막 승객들을 내리고 떠났고,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은 예상시간과 딱 맞아서 혹시나 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다음 시간 버스 예약이 가능한지 고속버스 예약 어플로 들어갔고, 지금 해당되는 시간과 내가 예약한 시간 버스 빼고는 모두 매진 상태였다. 이번에도 하염없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는 중에 내가 예약한 시간인 20:10의 다다음 시간의 프리미엄 버스가 20:40에 한 자리가 예약 가능 상태로 표기되어 있어 빠르게 추가로 예약을 완료했다.


20:10 버스는 거의 포기한 상태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고, 약 5분 후에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 교대역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서 일단 빠르게 환승구로 달려갔다. 다행히 교대역 전에서 고속터미널로 향하는 지하철이 오고 있었고, 9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남은 시간은 단 4분이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역에 내리자마자 쉬지 않고, 스프린트로 원주로 가는 탑승구까지 뛰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서 서 있는 사람들이 옆쪽으로 미리 피하게 유도하였고, 다행히 출발 시간 단 2분을 남겨 놓고,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요즘 꾸준하게 러닝을 했던 효과를 이 순간 발휘할 수 있어서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배정된 좌석에 착석을 하고, 땀이 흥건한 옷을 에어컨 바람이 말리면서 다시 아버지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 나는 일단 원주로 내려가서 내가 뭐부터 해야 하지?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가족들에게 연락은 형과 어머니께서 하셨을 거고, 나는 일단 아버지가 계시는 기독병원으로 가는 것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2일 전 3주일 만에 아빠가 눈을 뜨셨을 때는 정말 마지막으로 가족들 얼굴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눈을 뜨셨던 사실이 다시 생각이 나고, 그때 아버지께 해 드렸던 말들과 다짐했던 순간이 나의 가슴을 먹먹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눈도 마주칠 수 없고, 손도 잡을 수 없어서 아버지의 체온을 느낄 수 없지만, 아버지께서 표현하시지 않으셨지만 속으로 품고 있던 아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을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자주 술을 드시고, 화를 내시는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점점 멀어지는 가족과의 사이에 관심을 원하는 표현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엔 그저 화가 나고,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들을 말하면서 언성이 함께 높아졌던 순간들에 대한 반성과 죄송함에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서울에 혼자 지내면서 가족들에 대한 신경을 거의 쓰지 않고, 나만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면서 살아온 나의 인생이 너무 부질없게 느껴진다.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해 드렸던 말인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았지만 결국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지 못한 지금 나의 모습은 그냥 불효자의 모습을 인증하는 것 같다.


이번에 새로 지은 집 앞에 심은 마늘 밭에서 아버지와 함께 마늘을 캐고, 마을 입구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함께 먹은 컵라면과 과자가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였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눈물이 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부모님 모시고 제대로 된 식당에 가서 식사 한번 대접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 잘난 맛에 가고 싶은 여행이나 다니고, 배우고 싶은 운동이나 배우고 살았던 나는 그저 불효자의 표본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이 불효자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되돌릴 수 없는 죄송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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