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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Jan 19. 2023

나의 버킷리스트

3. 아이슬란드 여행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부산이 떠나고 싶었다. 자라는 동안 가족들과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격렬하게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넓은 세상이 그리웠다. 미지의 세계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떤 길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혹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으니 아마 타고난 것이었을 거다.


소원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을 떠났다. 그리고 어학연수로 간 러시아를 시작으로 운이 좋게도 외국의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는데, 결혼 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7여 년 동안 살면서 비교적 가까운 유럽 여행을 많이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좋은 것도 많이 보다 보면 처음의 경탄하던 마음도 시들해지고 나중에는 다 비슷비슷한 풍경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도시의 가장 볼 만한 곳은 보통 올드 타운, 구시가지인데 그곳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커다란 성당 내지는 교회가 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주변에는 옛 가옥을 그대로 살린 상점과 호텔 등이 늘어서 있어서 광장 한가운데 서 있다 보면 마치 옛날 유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라마다 조금 더 화려하거나 더 수수할 뿐 거의 그런 모습이다. 나중에는 독일 쾰른의 대성당이 체코 프라하의 대성당과 모습이 비슷해 보이는 폐단도 생기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독박육아를 하던 시절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영희언니가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말했다. 이번 여름휴가를 아이슬란드로 간다고.. 엥 아니 왜? 나의 첫 반응이었다. 갈 수 있는 멋진 유럽의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이름만 겨우 아는 아이슬란드? 싶었다. 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며 늘 색다르고 멋진 선택을 하는 그녀였기에 거기에 뭔가가 있구나 싶었다. 15일간 아이슬란드 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다시 우리 집에 놀러 와 (그 당시 완이가 두 살에 불과했으므로 나는 자유롭게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고 언니가 종종 놀러 와주었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이 세상 같지 않은 풍경과 퍼핀이 있었다.


그 후 아이슬란드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랐다. 어린아이들을 끌고 가기에는 만만찮은 곳이었으므로 우리 아기들이 조금 더 자란다면 언젠가 반드시 가리라 다짐했었다.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쳐 가며 여행을 했던 언니는 한 캠핑장에서 일본 가족을 만났다고 했다. 아이가 셋이었는데 막내가 6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부모의 식사준비를 도왔던지, 한 명은 주먹밥을 빚고 한 아이는 거기에다 소금을 넣고 막내는 후리가케를 뿌리는 식으로 그들의 식사를 스스로 준비했다고 했다. 그 일본 가족과 같은 삶을 꿈꾸던 나는 우리도 언젠가 아이슬란드 캠핑장에서 건이완이와 함께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그날을 상상했다. 그때부터 아이슬란드는 꼭 가보아야만 하는 나라로 내 마음에 각인이 되었다. 2013년이었다.


나만의 버킷리스트가 있으면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성취감이 생긴다. 이 일을 이루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기에 아무래도 좀 더 노력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 같긴 하다. 반면 버킷리스트가 마음의 짐이 되기도 한다. 이루지 못하면 숙제를 덜 끝낸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예전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슬란드 여행이 많이 고되므로 할 수 없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이제는 스스로 주먹밥을 빚을 수 있게 된 두 아들과 함께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지 않을 핑계가 없어졌다. 사실 일상을 살다 보면 여름휴가만큼은 좀 편안하게 해변에 누워 수영하거나 일광욕을 하면서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은 유혹이 짙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고 마침 우리는 유럽에 있다. 배부른 소리겠지만 우리 눈에는 일반적인 유럽 도시들의 모습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들다는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눈에 담을 때가 왔다. 독일에서 아이슬란드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우리 집 아이들은 집에 있는 것을 심하게 좋아한다. 그래서 방학 동안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으면 그냥 집에 있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을 꼭 해야 한다면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눕다가 쉬다가 먹다가 수영하다가 하는 타입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알고 있는 아들들은 엄마의 꿈이라며 기꺼이 지난여름휴가에 아이슬란드 여행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아이슬란드는 섬을 일주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차를 많이 타야 하고 산에도 올라가야 하고 많이 걷기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엄마가 꼭 가고 싶기 때문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좀 숙제를 해치우는 느낌이기도 했다. 저세상 같은 풍경은 꼭 눈과 마음에 담고 싶었지만 고생길이 뻔한 여행길이 될 것이 자명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비행기표는 샀는데 숙박이 문제이다. 미리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인구밀도가 너무나 낮은 데다가 인구자체도 얼마 없어 숙소가 별로 없고 있는 숙소들은 가격이 매우 비싸다고 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캠핑카를 빌리기로 했다. 잠은 캠핑카에서 자고 밥을 해 먹거나 씻거나 하는 문제들은 캠핑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커다란 캠핑카는 말도 못 하게 비쌌기 때문에 우리는 커다란 suv뒤에 박스를 얹은 듯한 좀 작은 캠핑카를 예약했다. 물론 그 차도 말도 못 하게 비쌌다. 하지만 차를 렌트하는 것과 잠을 자는 것 둘 다 한꺼번에 해결한다고 생각을 하고는 과감히 저질렀다.

<일주일간 우리의 발이자 숙소가 되어주었던 캠핑카>


9년 동안 가보길 고대했던 아이슬란드는 기대했던 대로 비현실적인 풍광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태초에 조물주가 지구를 만들어 놓으신 직후였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나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산과, 수많은 폭포와, 바다와, 끝없는 평원, 사람보다 더 많던 양과 말들. 섬의 북쪽으로 올라가면 화성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화산 활동이 남쪽보다 활발한 지형이라 그런지 과거 언젠가 이루어졌던 화산 폭발로 땅에 떨어진 용암과 화산재, 돌덩이 같은 것들 때문에 땅이 검다. 게다가 아래 지방에서는 흔하게 보았던 양과 말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무서울 지경이었다. 렌터카 업체에서 차와 함께 빌려주었던 와이파이 공유기도 잘 터지지 않았다. 숙소인 캠핑장에 도착해서야 사람들이 많음을 보고 안심했다.


아이슬란드는 눈앞에 있는 풍경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여행은 고되었다. 첫날부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부는 바람에 캠핑카가 마구 흔들리고 여름이라 백야현상 때문에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 잠이나 잘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첫날에는 잠을 설쳤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는 피곤함 덕분인지 좁은 캠핑카 안에서 아주 푹 잘 잘 수 있었다.

여행의 성공 요인의 팔 할은 날씨라고 생각한다. 날씨가 좋은 날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감탄사가 나왔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안개 덕분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바닷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 바닥에 납작 엎드린 적도 있었다. 우리가 갔던 7월 초는 날씨가 변덕스러웠는데 일기예보를 보며 비를 피해 다니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의 여행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20킬로 트렁크를 가득 채워왔던 음식들을 요리해 먹었고, 6군데의 캠핑장에서 각국의 사람들을 만났다. 한여름에 한겨울 잠바를 입고 다녔고, 추운 야외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했다.  어느 캠핑장에서 다른 여행자들이 남겨 놓은 음식들, 스파게티 소스나 유럽식 라면 같은 것들을 챙겨 오기도 하고 다른 캠핑장에서는 설거지용 트리오를 얻어와 여행 내내 잘 사용하기도 했다. 공용 식당에서 다른 여행자들은 어떤 음식을 해 먹나 흘깃거리며 훔쳐보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동네마다 온천수를 이용한 실내외 수영장이 있었는데 몇 천 원만 내면 수영도, 사우나도, 샤워도 즐길 수 있어서 가는 동네마다 잘 이용했다. 이런 류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들의 마음을 달래어 주기에도 수영장은 더없이 훌륭한 시설이었다. 두 평 남짓한 캠핑카 안에서 밥을 하고, 식탁을 차려 먹고, 밤이 되면 내부를 개조하여 침낭을 깔고, 함께 영화를 보았다.


그렇게 우리 집의 남자 셋은 나의 버킷리스트 목록 하나를 지워주었다. 첫째 아들보다는 좀 더 살가운 둘째 아들이 물었다. 엄마의 다음 소원은 머에요? 엄마의 다음 소원은 오로라를 보는 거란다.

2주 남짓의 겨울 방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아이들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었다. 또다시 집에 있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덧붙인다. 핀란드가요, 오로라 보러. 진짜? 거기도 아이슬란드만큼 힘들 텐데 가도 되겠어? 네, 엄마 소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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