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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Aug 02. 2023

드라마 악귀와 '기록'에 대한 단상

드라마 악귀를 보고 있는 요즘이다. 무서움과 안 무서움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귀신의 악함과 인간의 악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 귀신이 더 무서운가 인간이 더 무서운가를 저울질하며 보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며, 뜬금없지만 기록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를 파헤칠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더듬어가는 과정에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기록이 있었다. 학술 논문, 책, 범죄 수사 기록, 호적부, 지도, 장례식장 손님 명단, 졸업사진첩 등... 누군가가 순간을 살아가며 자의든, 타의든, 직업 때문이든 남겨놓은 기록들이 커다란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조그맣게 보이지만 큰 단서가 되어, 한 인간의 억울한 사연을 알게 되고, 결국에는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게 될 것이었다.(사실 누가 알아준들 그 한이 어찌 다 풀리랴마는..)

악귀에서는 이런 오래된 기록들을 보며 수사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교적 객관적으로(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알 수 있는 것도 기록 덕후였던 우리 조상님들 덕분이다. 가장 잘 알려진 조선왕조실록은 무려 472년간의 기록이며 총 1893권이라 했다. 그 외에도 승정원일기, 일성록, 의정부등록, 비변사등록 등 다양한 기록물들이 왕실에 있었으며, 그 기록을 객관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 사관 외에는 아무도 읽지 못하도록 극비문서로 분류되었고, 후대에 남기기 위해 정기적으로 바람과 햇볕에 내어놓아 말려주고, 평소에도 나무상자, 보자기, 기름종이 등으로 보존에 만전을 기해왔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가 단군조선 시절부터 내려온 우리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이유는 그 오랜 세월 매일매일 성실히 자신의 일, 기록하는 일에 집착해 온 이름 모를 왕실 직원들과, 후손들이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해 온 이름 모를  왕실 직원들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갑자기 이렇게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 이유는, 아마 내가 요즘 기록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덮쳐오는 ‘생각들’ 때문에, 그 생각들에 시달리다 보니 ‘기록’까지 하기에는 여력이 없었다.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을 생각만 하다 보니, 실체 없는 고민들은 눈덩이만큼 불어나고, 나는 그 눈덩이에 짓눌려 갔다. 생각해 보면 고민과 생각들을 기록으로 풀어냈더라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인풋과 밖으로 표출되는 아웃풋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또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훌륭한 덕목이었던 '꾸준함''기록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꾸준함이라는 덕목은 어떻게 하면 생기는 것일까.




얼마 전 내가 취미로 다니고 있는 음악 학교에서 피아노 발표회가 있었다. 피아노 수업을 시작한 지 벌써 3년 가까이 되었는데, 나로서는 처음 맞이하는 발표회였다. 이 날을 위해 선생님과 내가 고른 곳은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배운 지 벌써 1년이나 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배우기도 했었고,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기도 하고, 함께 쳐 주는 파트너가 없다면 칠 수 없는 곡이기에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기엔 좋은 곡이라 판단하였다.


문제는 이 곡이 너무나 어렵다는 데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있는 곳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곡이었지만, 또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곡이라 잘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가 이 발표회를 열심히 준비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내 자존심이 걸려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 아들들 때문이었다. 우리 아들들에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면 우리 아들들도 그런 삶의 자세를 조금은 따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었다.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발표회에 대한 부담감이 내 마음을 덮쳐올 때는 그러한 솔직한 내 마음도 큰아들 작은아들에게 번갈아가며 표현했다. “아~악 엄마 너무 부담돼~~~~ 어쩌지!!”

그러면 우리 아들들은 씩 웃으며 그랬다. “엄마 파이팅!”

이렇게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고, 결국은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연주회 도중 그 살 떨리던 순간에도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아들들에게 잘 보였으면 했다.

 



내가 ‘기록’을 하지 못했던 시간을 깨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된 것도 우리 아들들 때문이다. 드라마 악귀를 보며 ‘기록’이 참 소중하구나 깨닫게 되었는데, 문득, 나중에, 오랜 세월 후  내가 이 세상에 없게 될 때에도 우리 아들들이 내가 남긴 ‘기록’ 들을 보며 엄마를 ‘객관적’으로 추억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서의 헤어짐으로 인한 감정적인 윤색이 더해진 엄마가 아니라, 때로는 잔잔한 바람에도 마구 흔들렸으나 결국은 올바로 살아보려 애썼던 엄마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잘 살아낸 엄마로 그렇게 기억해 줄 수 있도록 꾸준히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님들이 꾸준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직업이라서, 급여가 나와서, 때로는 사명감에 등등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나에게도 기록을 이어 가야 하는 원동력이 떠올랐으니, 이제부터는 제발 꾸준히 기록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문제는 강제적인 원동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조상님들과는 달리 나의 원동력은 나에게 ‘기록’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하지만 수없이 자주 흔들려도 결국은 잘 해낸 엄마로 기억되기 위해 최선은 다해봐야겠지. 파이팅.


아들들아, 엄마 멋찌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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