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수박 킬러가 산다. 남편이다. 마트에서 수박을 봤다 하면 포기하는 법이 없다. 구축 아파트라 수박 이동이 쉽지 않은데도 낑낑거리면서도 구태여 이고 지고 온다. 남편은 '오늘 저녁은 수박이다!' 하면서 다이어트 식으로 수박만 아귀아귀 먹는다. 먹을 때마다 꿀렁거리는 남편 배를 보며 수박 반통을 꿀꺽 삼켜 배에 그대로 들어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저렇게 산처럼 먹는 건 다이어트가 아닐 텐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요즘 같은 계절엔 집에서 선풍기 켜고 시원하게 베어문 수박이 최고의 피서지다. 달고 차갑고 물이 많은 수박은 한국에서 즐겨 먹는 제철 과일이다. 초록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외형에 안쪽은 빨간 과육을 가진 모습이 반전 매력을 가진다.
수박의 빨간 맛에는 라이코펜이 풍부하다. 이는 강력한 항산화제로 토마토보다도 1.5배 더 많다. 전립선암 예방, 심혈관 건강에 도움 된다. 일반적인 라이코펜은 열에 가할수록 흡수율이 높아지지만, 수박의 라이코펜은 생으로도 비교적 흡수가 잘되는 구조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수박은 시트룰린이라는 아미노산이 혈관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자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가장 더운 계절에 가장 시원한 과일을 내어놓고, 그 안에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꼭꼭 숨겨두었다.
이렇게 달고 수분이 많은 맛있고 효능까지 좋은 슈퍼 푸드 수박을 환자들에게 "조금만 드세요"라고 한다. 내 환자들 중에는 수박 많이 먹어서 낭패를 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는 혈당 조절에 실패하고, 투석 환자는 수분 조절이 무너지기도 한다.
혈당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는 수박 권고량은 1쪽 이하다. 평균 150 g 정도로 한 컵 분량에 해당한다. 하지만
딱 한 조각만 먹어야지, 하다 보면 어느새 반통을 먹게 되는 게 수박이다. 적당히만 먹으면 문제없는 수박. 수박을 피하지 않고 적당히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혈당 안심 수박 샐러드를 소개한다.
수박이 파워 슈퍼푸드가 되는 4단계 변신
수박은 4단계를 거치면서 파워 슈퍼 푸드가 된다.
첫 번째. 녹색 잎채소는 혈당 스파이크를 억제한다. 식이섬유가 당분의 흡수를 늦춰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아준다.
두 번째 단백질 (치즈) 은 포만감을 높이고 인슐린 반응을 안정화시킨다. 단백질과 함께 먹으면 혈당 곡선이 완만해진다.
세 번째. 올리브 오일은 수박이 가진 라이코펜 흡수율을 높인다. 지용성 비타민인 라이코펜은 건강한 지방과 만나야 몸에 제대로 흡수된다.
마지막. 견과류는 식이섬유를 충전하고 건강한 지방을 보완하며 고소한 맛과 식감까지 담당한다.
혈당 안심 수박 샐러드 레시피 (2인분)
수박 150g (사각으로 썬 것)
녹색 잎채소 60 g
오이 60 g
자색 양파 30 g (얇게 슬라이스)
모차렐라 치즈 60 g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3큰술
레몬즙 1큰술
발사믹 식초 1큰술
소금, 후추 약간
견과류 한 줌 (피칸, 아몬드, 캐슈 등)
드레싱
올리브 오일 3큰술
발사믹 식초 1큰술
레몬즙 1큰술
소금 후추
만드는 법
1. 녹색 잎채소를 깨끗이 씻어 접시에 깔아준다.
2. 수박과 채소들을 보기 좋게 담는다.
3. 치즈와 견과류를 올리고 드레싱을 고루 뿌리면 완성이다.
수박샐러드로 맛본 인생의 맛
요즘 아침으로 수박 샐러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이어트한다는 남편에게도 적당한 수박 섭취량이다. 진짜 맛은 대비에서 나온다. 수박의 단맛이 더 달게 느껴지는 건 채소의 쓴맛 덕분이겠다. 수박의 달콤함은 녹색 잎채소의 쌉쌀한 맛을 만났을 때 더욱 빛이 난다.
꽃길만 걸을 때보다 자갈길도 걸어야 꽃길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처럼. 인생의 기쁨도 행불행이 함께 할 때 빛난다. 인생도 수박 샐러드처럼 달고 쓴 맛이 어우러질 때 삶의 맛도 깊어진다.
적당 함이라는 철학
'적당히'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다. 너무 적으면 아쉽고, 너무 많으면 탈이 난다. 인생도 그렇다. 적당함이란, 욕망과 절제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지혜다. 하나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것을 섞는 것에서 인생도 음식도 적당함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수박 살에 채소와 견과류, 건강한 드레싱을 얹어보세요.
왜냐면 수박은 적당히 먹기 어려운 과일이니까요.
그리고 인생도 적당히 살기 어려운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