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주방 앞에 서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팬을 달구는 일조차 망설여지는 날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토마토를 볶는 일이다.
토마토를 먹으면 의사의 얼굴이 파래진다는 유럽 속담이 있다. 토마토가 몸에 좋기 때문에 의사를 만날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11년 차 내과 의사인 나조차도 이 속담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토마토는 내가 환자들에게 가장 자주 추천하는 슈퍼푸드 중 하나다.
토마토의 핵심은 그 붉은색에 있다. 라이코펜이라는 이 천연 색소는 단순한 색깔이 아니다. 라이코펜의 항산화력은 주황색 베타카로틴의 2배, 비타민 E보다 10배나 높다. 우리 몸이 녹슬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천연 방부제 같은 존재다. 심장, 혈관, 뇌 등 우리 몸 곳곳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몸에 좋은 토마토를 그냥 먹으면 조금 아쉽다. 아니, 많이 아쉽다.
토마토의 숨겨진 비밀
토마토의 라이코펜은 금고 속 보석처럼 세포벽에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냥 먹으면 대부분 그대로 통과해 버린다. 게다가 라이코펜은 지용성이다. 물에는 녹지 않아 생으로만 먹으면 흡수율이 현저히 낮다. 기름칠하지 않은 자물쇠처럼, 기름이라는 열쇠가 함께 있어야 우리 몸에 흡수될 수 있다.
2004년 미국 임상영양학회지에 발표된 연구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방울토마토 샐러드를 그냥 먹었을 때 라이코펜의 흡수는 거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일 드레싱과 함께 먹으니 흡수율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름의 양이 많을수록 라이코펜의 흡수율도 높아졌다.
또 다른 마법은 열에 조리하는 것이다. 토마토를 가열하면 단단한 세포벽이 부서지면서 라이코펜이 자유롭게 방출된다. 흡수율이 2배로 뛴다. 게다가 열에 익은 토마토는 감칠맛이 살아난다. 글루타민산이라는 천연 조미료가 활성화되어 설탕 없이도 달콤하고 깊은 맛을 낸다.
기름과 열처리를 함께 적용하면 단순 계산으로만 최대 8배까지 흡수율이 증가한다. 같은 토마토를 먹어도 지지고 볶아 먹으면 라이코펜 흡수를 8배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토마토는 그냥 먹으면 안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생토마토도 충분히 훌륭한 건강식품이다. 오히려 비타민 C만큼은 생토마토가 더 우수하다. 열에 약한 비타민 C의 특성상, 가열하지 않은 토마토에서 온전히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 목이 마를 때 시원한 토마토 한 알이면 충분하다. 90%에 달하는 수분이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 준다. 게다가 풍부한 식이섬유는 장 건강을 돕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완벽한 건강 간식이다.
다만 토마토의 진정한 보물인 라이코펜을 온전히 우리 몸에 선사하고 싶다면, 가끔은 불 앞에 서는 용기를 내보자는 것이다. 생으로도 좋고, 볶아서도 좋다. 중요한 건 토마토를 꾸준히 먹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무더운 여름에도 불 앞에 선다. 토마토를 지지고 볶기 위해서다. 친정 엄마표 김치를 꺼내 토마토 김치 볶음밥을 만든다. 처음 들으면 "김치볶음밥에 토마토?"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조합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토마토의 자연 단맛이 김치의 짠맛을 중화시켜 나트륨 부담을 30%나 줄여준다. 김치의 유산균과 토마토의 식이섬유가 만나 장 건강을 개선한다. 여기에 양배추까지 더하면 포만감은 늘리고 칼로리는 줄이는 완벽한 다이어트 식품이 된다.
무엇보다 맛이 좋다. 토마토의 감칠맛과 김치의 매콤함, 그리고 양배추의 아삭함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에 올린 계란 프라이의 고소함까지 더해지면 한 그릇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완성된다.
준비 재료 (1인분)
토마토 50g (방울토마토 추천, 씨 제거 후 다짐)
김치 50g (잘 익은 신김치, 다짐)
양배추 50g (다짐)
잡곡밥 150g
대파 + 아보카도 오일
간장 1큰술
참기름 약간
토핑: 계란 1개 (프라이) 어린잎채소 아마씨가루
만드는 방법
1. 토마토는 반으로 갈라 씨를 빼고 다져서 준비한다.
2. 팬을 중불로 예열 후 아보카도 오일 두르고, 대파를 넣고 볶아 파향을 충분히 낸다.
3. 토마토, 다진 양배추를 넣고 숨이 살짝 죽을 때까지 볶는다.
4. 다진 김치를 넣고 매콤한 김치향이 올라올 때까지 저어준다.
5. 간장 1큰술을 넣고 전체적으로 섞는다.
6. 잡곡밥을 넣고 윤기가 날 때까지 볶는다.
7. 마지막에 참기름 넣어 고소함을 더한다.
8. 계란 프라이 올리고 어린잎채소로 색감 살린다.
9. 아마씨가루를 뿌려 오메가 3까지 완벽하게!
요리 의학적 팁
방울토마토 씨제거 : 볶을 때 물기를 줄여 더 진한 맛을 만든다.
아보카도 오일의 불포화지방산이 토마토 라이코펜 흡수를 도와준다.
토마토는 최소 3분 이상 볶아야 변화 시작된다. 토마토에서 수분이 날아가고 색이 진해질 때까지 충분히 볶아야 신맛이 사라지고 감칠맛이 올라간다.
양배추를 추가하면 밥의 양을 줄여주고 포만감은 증가한다.
토마토 김치볶음밥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40대 이상 남성 : 라이코펜의 전립선암 예방 효과, 항산화 성분으로 혈관 건강 개선 식단
혈압 혈당 관리가 필요한 분 : 잡곡밥, 양배추, 토마토로 식이 섬유 + 건강한 지방 + 단백질 혈압 혈당 안정화 만성 관리 식단
다이어트 중인 분 : 양배추로 부피는 늘리고 칼로리는 낮춘 다이어트 식단
이쯤이면 토마토는 더운 여름에도 불 앞에 설 가치가 있지 않을까? 모르고는 그냥 먹었어도, 알고 나면 달라진다. 작은 습관들이 모여 내일의 건강한 나를 만든다. 토마토를 볶아 먹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의사의 얼굴이 파래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