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어김없이 아이스크림 마트 앞에서는 작은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하는 딸 때문에 요즘 같은 찜통 더위엔 마트에 가는 일조차 긴장이 된다. 마트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발견한 아이는 기어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겠다는 주장이 시작된다. 더우니깐, 스트레스 받았으니깐, 학원 끝마쳤으니깐. 이유는 그럴듯 하다.
그날도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였다. 막무가내로 나를 막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자고 했다. 어제도 아이스크림에 관대한 외할머니 찬스를 써서 먹은 것을 알고 있는데, 오늘도 먹겠다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도대체 너는 아이스크림을 얼마나 먹어야 만족스러울까.'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낸 누군가가 원망스러웠다. 왜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서 아이를 유혹하느냐 말이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은 행복이다. 오감을 동시에 자극한다. 차갑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색도 예쁘고, 향긋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 조합이 마법처럼 작용한다.
아이들의 혀끝은 단맛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어린 아이일수록 성인보다 5-10배 높은 농도의 단맛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단맛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켜 쾌감과 만족감을 준다.달콤한 음식을 더 본능적으로 갈망하는 이유다. 우는 아이도 아이스크림 사줄게 하면 울음을 뚝 그치곤 한다.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보상의 감정과 연결된 음식이다.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즐겁고 특별한 상황과 함께 기억된다. 생일 파티, 나들이, 친구와 함께한 하굣길에서 아이스크림은 늘 함께 한다.
아이들은 그 맛과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자주 찾는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갈망하는 환경을 만든 부모도 한 몫 하는 셈이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해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아이스크림을 쉽게 우리집 식탁으로 가져 올 수 없다. 얼마전 학교에서 실시한 신체 검사에서 과체중 판정을 받은 경고도 큰 이유중 하나였다.
습관적으로 자주 먹는 아이스크림은 아동 비만의 출발점이다. 2019년 인도네시아에서 실시된 아동 대상 연구에서는 단맛을 좋아하는 아이일수록 체질량지수가 높았고, 비만 유병률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졌다. 아이스크림 하나에는 평균 20g의 당이 들어 있다. 각설탕으로 따지면 약 6개 반. 한 개만 먹어도 하루 권장 당류 섭취량을 넘기기 쉽다.
문제는 한두번 먹고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반복적인 단맛 노출은 미뢰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만든다. 여러 논문들은 반복적인 단맛 노출이 미뢰를 둔화시키고, 평생 단맛 선호를 고착시킨다고 지적한다.
단맛에 너무 자주 길들여지면, 평범한 과일 조차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이스크림 하나쯤 괜찮겠지, 하기엔 우리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너무 자주 찾다는데에 있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두려움에는 나의 불안이 담겨 있다. 내가 없는 먼 훗날, 아이가 마음의 허할때마다 아이스크림에 의존하게 될까 두렵다. 자연스러운 단맛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하고 자극적인 달콤함 것만 찾아다닐까봐 걱정이다. 결국 달콤한 것을 갈망한 댓가로 잃게 되는 건 건강일테니깐. 내가 아이스크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행복해 하는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앗아가버리고 싶지는 않다. 아이의 행복도 소중하고, 건강도 포기할 수 없다. 달콤함은 줄이지 않 방식은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찾은 건 공장이 아닌 자연의 단맛을 조합하는 것이다.
재료
냉동 딸기 1컵
잘 익은 바나나 1개
우유 1 컵
레몬즙 1작은 스푼 (옵션)
냉동 딸기 한컵, 잘 익은 바나나 하나, 우유 한컵, 레몬즙 조금 넣고 믹서기에 갈아 딸기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바나나: 천연 행복 호르몬의 보고
바나나는 아이를 행복하게 한다. 바나나에는 트립토판이 풍부하다. 이는 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원료가 된다. 바나나의 트립토판이 혈액으로 흡수되어 뇌-혈관 장벽을 통과한 후, 뇌에서 세로토닌으로 변환되어 행복감, 안정감, 만족감을 선사한다.
특히 검은 점이 생긴 잘 익은 바나나는 당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이때를 '슈가 스팟'이라 부르는데, 전분이 당분으로 완전 전환되어 Brix 당도가 15-20도까지 올라간다. 설탕물 20% 농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천연 감미료로서 완벽한 역할을 한다. 냉동실에 얼려 두면 아이스크림의 차가움과 단맛을 흉내내기에 충분하다.
냉동 딸기: 영양소 보존 그대로 얼음
냉동 딸기는 아이에게 에너지를 준다. 수확 직후 급속냉동하기 때문에 비타민 C, 안토시아닌, 엽산 등 딸기의 주요 영양소가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때로는 생딸기보다 영양가가 높을 수 있다. 세포벽이 파괴되어 영양소 흡수율도 증가한다.딸기의 안토시아닌은 단순한 색소가 아니라 강력한 항산화 성분으로, 면역력 강화와 염증 억제에 도움을 준다. 색과 향을 담당하는 빨간 딸기는 바나나, 우유와 함께 갈면 핑크빛으로 변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유 : 완전 단백질
우유는 부드러움을 담당한다. 우유에는 고품질의 완전 단백질이 풍부하다. 아이들의 근육 발달과 성장에 필수적이다. 또한 우유의 유지방은 냉동 과일과 만나면 부드러운 질감으로 변한다. 일시적으로 우유를 아이스크림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부드러운 질감이 토라진 아이의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레몬즙: 작은 첨가 큰 효과
여기에 새콤한 레몬즙을 한 스푼 넣으면 더욱 상큼한 딸기 바나나 아이스크림이 완성된다. 레몬즙의 비타민 C는 딸기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항산화 작용을 극대화하고, 우유의 철분 생체이용률도 높인다. 단조로운 단맛에 깊이를 부여하고, 딸기의 색감을 보호하는 역할도한다. 상큼함보다는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생략해도 좋다.
공장에서 만든 아이스크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집에서 만든 딸기 바나나 아이스크림은 차갑고 부드럽고, 달콤하며 향기롭고 예쁜 색으로 역시 오감을 만족한다. 냉동 과일로 만들어낸 달콤함은 시중에 판매 중인 아이스크림과 단맛은 비슷할지라도 차원이 다르다.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함께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하고, 포만감도 2-3시간 지속된다. 각종 인공 첨가물이 없는 대신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는 3번에 한번쯤은 마음을 바꾼다.
"엄마, (아이스크림 대신) 딸기 바나나 해줘."
그래, 그런 아이스크림이라면 얼마든지 !
물론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그거 말고 진짜 아이스크림" 이라며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때면 못이기는 척 사주기도 한다. 눈깜짝할 사이, 순식간에 아이 입으로 사라지는 아이스크림을 보며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사주었다간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아찔한 생각을 한다.
먼 훗날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이 음식을 기억해서, 나중에 엄마가 없을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혼자 만들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진짜 달콤함이란 설탕 덩어리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선물에 엄마의 사랑을 더한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달콤함이야말로, 평생 잊지 못할 진짜 맛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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