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의사들에게 플랜 A가 있다. 나만의 병원을 갖는 것, 개원이다. 대학병원에서 정년을 마친 교수님들도 종국엔 개원하시는 걸 보면, 어쩌면 보통의 의사뿐 아니라 모든 의사들이 한 번쯤 꿈꾸는 것이 개원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보통의 의사로 개원이 플랜 A였다. 플랜 A 계획대로라면 10년 차 전문의가 된 지금쯤엔 나는 내 이름을 건 병원을 운영하고,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한때는 이미 계획대로 플랜 A에 다다른 친구, 선배, 후배를 보며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나만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너는 언제 개원하냐'는 인사말에 나는 '해야지!'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곤 했다. '개원해야지'라는 말 뒤에 숨겨진 말 줄임은 기약도 없는 '언젠가'였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0년째 봉직생활 중이다. 내 병원을 운영하기보다 아이를 키워야 했다. 개원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가진 질병이 재발할까 봐 불안했다. 직원들의 들고 남에도 흔들리지 않는 멘털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매월 25일을 기다린다.
내가 다른 봉직 의사들과 다른 점은 이직도 없이 한 병원에서만 10년 가까이 근무 중이라는 거다. 다른 친구들처럼 연봉 협상에 성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수많은 플랜 B가 있었다. 나는 플랜 A보다는 B로 채운 삶이었다.
고등학생 때 나의 플랜 A는 인서울 의대였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탓에 지방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플랜 B로 지방에서 대학을 나오고 수련은 서울에서 받았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수련을 받으며 다양한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두 명쯤 갖는 게 플랜 A였다. 하지만 결혼 4년 차에 아이도 어렵게 가졌다. 어떻게 해서든 두 명을 가지고 싶어서 시험관 시술도 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그때는 좌절스러웠지만, 지금은 아이 하나도 괜찮은 플랜 B로 살고 있다.
이제 나는 개원이라는 플랜 A 대신 플랜 B가 있다. 나에게 플랜 B란 SNS에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내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없어도 나를 만날 수 있는, 내가 죽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공간에서 글과 영상을 만들고 있다. 남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플랜 A가 아닌 플랜 B에서 나만의 길을 찾고 있다.
누구나 플랜 A를 바라지만 모두가 플랜 A로 성공할 수 없다. 플랜 A는 누구나 원해서 좁고 어려운 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플랜 B 가 필요하다. 플랜 A가 잘 되지 않았을 때, 나에게 맞지 않을 때 나만의 플랜 B를 세워두는 일이 필요하다.
꼭 그 길이어야 할까?
다른 길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뿐 아니라, 건강식의 성공 여부 역시 플랜 B에서 완성된다. 누구나 인정하는 맛, 플랜 A 대신 좀 더 건강한 방식의 플랜 B를 찾아야 한다.
양배추 코울슬로는 잘게 썬 양배추에 마요네즈. 설탕, 식초 따위를 버무려 만든다. 치킨과 햄버거 집에서 함께 나오던 그 음식이다. 건강식 좋아하는 내과 의사라고 해서 맛있는 음식의 유혹을 모르는 건 아니다. 마요네즈에 설탕 솔솔 뿌려 만든 코울슬로가 얼마나 맛있는지는 나도 잘 안다.
설탕 듬뿍, 마요네즈 듬뿍 넣으면 누구나 좋아할 맛이 나온다. 검증된, 확실한, 모두가 인정하는 방법인 플랜 A다. 하지만 몸을 생각한다면?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한다면 다른 플랜이 필요하다. 요거트로 바꾸고, 유자청으로 바꾸고, 파프리카로 바꾸는 것. 이것이 건강식의 플랜 B다.
마요네즈 베이스의 양배추 코울슬로의 플랜 B 버전은 요거트가 대신한다.
재료
양배추 1/4통, 당근 1/2개, 양파 1/4개 (채썰기)
노란 파프리카 1/2개 (옥수수 대신)
소금 1작은술 (절임용)
플랜 B 드레싱
요거트 3큰술 (마요네즈 대신) 100 그램
화이트 발사믹 식초 2큰술
홀그레인 머스터드 1/2큰술
유자청 1작은술 (설탕 대신)
만드는 법
채 썬 양배추, 당근, 양파를 소금에 10분간 절여 아삭하게 만든다
물기를 꼭 제거한다
드레싱 재료를 황금 비율로 섞는다
야채와 드레싱을 버무리고 파프리카를 넣어 완성한다
옥수수 넣으면 햄버거집에서 먹던 그 샐러드가 된다. 하지만 옥수수 대신 같은 색 파프리카를 넣으면 당분은 줄이고 비타민은 높인다. 조금 더 건강하게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플랜 A 부럽지 않은 플랜 B
누구나 원하는 맛 마요네즈 코울슬로도 맛있지만, 요거트 코울슬로의 상큼함도 매력적이다. 플랜 A가 어렵겠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플랜 B도 충분히 괜찮다.
인생이든 식단이든 플랜 B가 필요하다. 누구나 원하는 플랜 A 그것 말고도 괜찮은 나만의 플랜 B가 있는지가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플랜 B는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가능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무엇보다 내가 즐거우면 그뿐이다.
어쩌면 플랜 A나 플랜 B도 우리가 정한 기준에 불과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플랜 B가 누군가에겐 정말 간절히 원하던 플랜 A기도 하다. 남들이 원하지 않아서 더 소중한 나다운 길이다.
나는 내 이름을 건 병원은 없는 봉직의사지만, 나의 진료 철학을 담은 SNS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 의사다. 남들과는 다른 나 다운 길을 가고 있다. 내 명의로 된 어느 진료실이 아닌 전국을 누빈다. 가운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카메라를 켠다. 공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의사로 사람들에게 건강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남들은 모르는 이 길이 즐겁다. 플랜 B의 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가 된다.
오늘도 누군가는 플랜 A가 막혀 좌절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랜 B도 충분히 괜찮다. 매월 25일을 기다리는 봉직의사도, 마요네즈 대신 요거트를 넣는 작은 선택도, 모두 자기만의 플랜 B다. 남들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길에서 찾은 소소한 행복들이 모여 나다운 인생을 만들어간다.
요리든 인생이든 세상의 모든 플랜 B를 응원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플랜 A만 바라보고 계시지는 않나요?
여러분의 플랜 B는 무엇인가요? 함께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