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트에 가면 아웃사이더가 된다.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중앙 통로를 누빌 때, 나는 마트의 가장자리를 의도적으로 천천히 걷는다.
마트에 가면 신선 식품이 가득한 채소, 과일 코너로 간다. 그곳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다. 진열대에 올려진 상품 중에서 가장 싱싱한 것들로 고르기 위해서는 매의 눈이 필요하다. 잎사귀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뿌리를 확인한다. 흙의 존재 여부도 중요하다. 어떤 채소는 최대한 흙이 없는지 살펴보고, 당근과 같은 식재료는 흙이 묻어 신선함을 유지하는지 본다. 며칠 만에 금방 상해버리는 연약한 블루베리나, 산딸기는 조그만 흠집도 없기를 바라며 집는다. 선납선출의 원칙으로 눈에 보이는 쪽에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을 배치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긴 재료를 선점하기 위해 손을 쭉 뻗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어서 위치하는 생선, 정육 코너를 거쳐 치면 나의 장보기는 끝난다. 마트의 바깥쪽만 도는 동선이다.
마트의 중심은 가장 넓고 화려하다. 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이 일렬 배치되어 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반짝이며 "나를 데려가세요"라고 속삭이다. 과자와 스낵, 라면과 같은 간편 조리식품, 소시지, 햄과 같은 가공육, 탄산, 과일 음료가 대표적이다. 나도 그것들이 맛있다는 것도, 편리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구태여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보면 사게 되고, 사면 먹게 되고, 먹으면 후회하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초가공 식품(Ultra-processed foods)은 수십 년간 식품 산업계가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였다. 식품 산업계는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맛과 구매욕을 자극할 식품을 끊임없이 찾아왔다. 값이 저렴하면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감미료, 착향료, 착색료, 유화제 등 각종 화학 첨가물을 개발했다. 달고 짜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감각을 자극시키는 음식들을 만들었다. 한번 먹게 되면 계속 먹고 싶어지는 신기한 음식들이었다. 누구나 뚝딱하면 근사한 요리가 완성될 수 있도록 조리 방법을 간소화시켰다. 포장지만 뜯으면 곧바로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도록 유통기한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음식을 썩지 않게 만들 수 있었던 건 각종 화학 첨가물 덕분이었다. 그들의 노력은 성공했고, 우리는 환호했다. 초가공 식품은 대히트를 쳤다. 전 세계적으로 초가공식품의 섭취 비율은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인은 전체 열량의 60%를 초가공식품에서 얻는다.
초가공 식품의 편리함과 맞바꾼 것
세계 비만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OECD 국가들의 평균 비만율은 약 25%에 달하지만,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미국, 영국, 호주에서는 성인 3명 중 1명이 비만인 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비만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바로 '초가공 식품(Ultra-processed foods)' 섭취율이다. 보고에 의하면 같은 유럽이라도 영국인의 초가공 식품 섭취 비율은 전체 식단의 50%에 달하고 비만율은 25%에 육박한다. 반면, 프랑스인의 초가공 식품 섭취 비율은 약 14%에 불과하며 비만율도 7.1%로 훨씬 낮다.
2023년도 Critical Reviews in Food Science and Nutrition에 발표된 <Ultra-processed food consumption and adult obesity risk: a systematic review and dose-response meta-analysis> 논문에 따르면, 초가공 식품 섭취량이 10% 증가할 때마다 과체중, 비만, 복부 비만의 위험이 각각 7%, 6%, 5% 높아졌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초가공 식품 섭취량 10% 증가할 때마다 심혈관 질환 위험 1.9%, 2형 당뇨병 위험이 15%, 암 발생 위험 2%, 암 사망 위험 6%, 난소암 19%, 만성 콩팥병 위험 7% 증가하고 결국 조기 사망률까지 높아진다.
초가공식품은 겉만 번지르르한 선물 상자다.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는 부족하고 불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식이섬유, 항산화 물질, 비타민, 미네랄, 양질의 단백질은 턱없이 부족하고, 정제된 탄수화물, 첨가당, 나트륨, 트랜스 지방, 식품 첨가물은 넘쳐난다. 몸이 아닌 입만 즐거운 음식이다.
마트에 가면 외곽만 도는 나의 마트 동선은 초가공 식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몸무림이다.
어쩌면 마트 동선이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중심에는 언제나 화려한 유혹들이 있다. 반짝이는 포장지에 싸여 우리에게 손짓한다. 간편하고 즉석에서 만족감을 주는 달콤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순간의 만족과 맞바꿔 건강을 빼앗아 간다.
진짜 소중한 것들은 가장자리에 있다. 그것들은 화려하지 않다. 유행을 따르지도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떠벌리지도 않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서 그 가치가 평가절하 되기도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건강도, 행복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중심으로 이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화려하게 살라고 부추긴다. 그동안 몰랐던 건강과 행복의 비밀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살면서 중요한 것은 항상 존재했지만 미처 그 가치를 몰랐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제철 채소로 정성스럽게 차린 한 끼, 가족과의 저녁 식사, 친구와의 진솔한 대화,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물 한 잔,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우리 삶을 지탱하는 진짜 기둥들이다.
마트 중심엔 화려한 유혹이, 가장자리엔 소박한 건강이 있다. 유행을 말하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자리에서 진짜 가치를 발견한다. 나는 오늘도 마트에서, 그리고 삶에서 아웃사이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