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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편식하는 내과 의사의 식탁

by 닥터 키드니

아무거나 잘 먹는 식성을 가졌지만, 유독 편식하는 음식이 있다. 양배추다.


양배추를 한 통 사면 처음부터 고민이었다. 이 양배추를 어떻게 분해할까. 그리고 기준이 생겼다. 내가 양배추를 가르는 기준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 중심이었다. 매끈하고 동그란 양배추 가운데 불쑥 튀어나와서 양배추의 식감을 방해하는, 양배추 잎의 중심 잎맥이라고 불리는 줄기 부분이다. 양배추를 주재료로 하든지, 부재료로 넣던지 툭 튀어나온 이 부분이 전체적인 조화를 거스르는 것 같았다. 잎맥 부분만 모아다가 따로 먹기도 했다. 잘게 썰어서 수프에 넣거나, 스무디로 만들어 먹고는 했다. 나만의 양배추 해체식이었다.



나만의 양배추 부위 구분법

나의 양배추 해체식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겉잎: 손으로 쉽게 떨어지는 초록색 3~5장

중간잎: 연두하얀색, 적당한 두께

속잎: 단단히 뭉쳐져 칼로 잘라야 하는 하얀 부분

심지: 가운데 딱딱한 기둥 부분

중심 잎맥 : 양배추를 가르는 딱딱한 줄기



양배추는 하얀색인가, 초록색인가.

양배추를 살 때마다 양배추 해체식을 하곤 했던 나는 양배추를 자세히 보다 보니,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색이 다르면, 맛도, 식감도, 영양학적으로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과학이 증명한 양배추 부위별 효능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나만은 아니었다. 태국의 연구진 (Kramchote et al., 2012)은 이런 가설을 세웠다. 양배추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많은 층의 잎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잎들의 위치에 따라 영양 성분이 다를 수 있다. 그들은 양배추 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어 부위별로 영양성분을 비교하였다. 마치 내가 양배추를 해체하듯이, 하지만 훨씬 더 체계적으로.



그들은 양배추 1 포기를 잎 위치별로 4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바깥에서부터 1~3장은 가장 바깥잎 (Outermost), 4~10장은 바깥-중간잎 (Outer-middle), 11 ~ 17장은 안쪽-중간잎 (Inner-middle), 18~24장은 가장 안쪽잎 (Innermost)이었다.



각 부위에서 항산화 성분 클로로필, 카로티노이드, 비타민 C 및 당함량을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클로로필, 카로티노이드, 비타민 C는 바깥잎에 가장 풍부하며 안쪽으로 갈수록 감소했다.

반대로 당 함량은 안쪽으로 갈수록 높았다. 중심부는 온도가 낮고 당이 잘 축적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김건희, 2003, Table 2 요약)


국내 덕성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연구진 (Kim, G.H.,2003)은 식물의 비타민 U 함량을 측정하며, 양배추는 부위별로 비타민 U 함량이 다르다고 보고한다. 양배추의 중간잎과 속잎 그리고 심지(Core) 부분의 비타민 U는 겉잎보다 높은 수준으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양배추의 안쪽으로 갈수록 위장 보호에 좋은 비타민 U가 풍부하다.


양배추는 잎의 위치에 따라 영양학적 가치가 다르며, 각 부위의 특성을 고려해 조리와 식단에 활용하면 건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양배추 겉잎 : 항산화 성분의 보고

겉잎의 특징:

클로로필 63.11mg (가장 높은 함량)

카로티노이드 6.0mg

비타민 C 22.61mg

식이섬유와 칼륨이 풍부


초록빛을 띠며 손으로 분리 가능한 부위가 겉잎이다. 양배추의 가장 바깥에 존재하는 겉잎은 햇빛을 많이 받아 광합성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마치 식물의 태양광 패널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겉잎은 두껍고 질긴 편이다. 하지만 이 질긴 식감 속에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항산화 성분들이 농축되어 있다. 마치 갑옷처럼 양배추를 둘러싸고 있는 겉잎은, 실은 가장 귀한 영양소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겉잎은 그냥 먹으면 질기기 때문에, 수프, 국, 볶음 등 열에 가열해 먹거나 볶아 먹으면 부드러워진다. 가장 바깥쪽 겉잎은 이송 과정에서 더러워지고, 잔류 농약 가능성이 있으니 1~2장은 제거하고 사용한다.



양배추 겉잎을 이용한 토마토 수프
1. 양배추 겉잎은 물에 담가 잔류 농약을 제거하고 사용한다.
2. 큐브 모양으로 손질한다.
3. 아보카도 오일에 다진 마늘, 각종 야채, 감자, 양파와 함께 손질한 양배추를 넣어준다.
4. 소금으로 채소가 가진 풍미를 살린다.
5. 홀 토마토를 넣는다.
6. 소금, 간장, 발사믹 식초로 간을 맞춘다.


균형의 미학, 중간잎

중간잎의 특징:

적당한 두께와 탄력

비타민 C, 수분, 섬유질이 조화롭게 분포

말기 좋은 식감


중간잎은 연둣빛에서 하얀빛을 띤다. 바깥의 거친 세상과 안쪽의 보호받는 공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 맛과 영양성분이 고루 조화를 이룬다. 적당한 두께와 탄력, 비타민 C, 수분, 섬유질이 적당하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특히 말기 좋은 식감을 가졌다. 쌈, 롤 등 속재료를 감싸는 요리에 최적이다. 살짝 쪄서 유연성을 높이면 속재료를 포근하게 감싼다.



양배추 중간잎을 이용한 쌈밥
1. 중간잎을 한 장씩 조심스럽게 분리한다.
2. 찜기에 양배추를 넓게 펴고 3분 정도 찐다.
3. 밥을 넣고 양배추를 말아준다.
4. 참치나 두부 쌈장에 올려먹는다.



양배추 롤 캐서롤
1. 데친 중간잎 안쪽으로 다진 야채와 두부, 돼지고기를 넣어 말아준다.
2. 토마토소스에 뭉근하게 끓여낸다.
3. 마지막에 모차렐라 치즈를 올려 마무리한다.


단맛 가득한, 부드러운 속잎

속잎의 특징:

비타민 U가 가장 풍부 (위 점막 보호)

수분 함량 높음 (약 92.5%)

당도 높아 자연스러운 단맛

부드러운 식감


가장 안쪽의 속잎은 단단히 뭉쳐져 손으로는 분리할 수 없다. 바깥 잎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이 잎들은 순수한 단맛을 간직하고 있다. 속잎은 보호의 아이콘이다. 마치 부모의 보호 아래 자란 아이처럼, 속잎은 세상의 거친 바람을 맞지 않고 자라 가장 순수한 영양을 간직하고 있다. 위장을 보호하는 비타민 U가 가장 많이 농축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수분이 많고 당도가 높아 달콤한 속잎은 생으로 샐러드나 코울슬로로 먹으면 단맛과 아삭함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양배추 속잎을 이용한 양배추 코우슬로
1. 양배추 250 그램, 당근 50 그램, 양파 50 그램 준비한다.
2. 양배추는 속잎을 얇게 채 썰어준다.
3. 소금 1작은술로 10분간 절여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다.
4. 요거트 100 그램, 화이트 발사믹 식초 2큰술, 홀그레인 머스터드 1/2큰술, 유자청 1작은술, 참기름 조금 넣어 드레싱을 만든다.
5. 물기 제거한 양배추, 당근, 양파에 드레싱을 버무린다.
6. 옥수수도 함께 넣어주면 더 맛있다.


양배추의 숨은 보물, 심지

심지의 특징:

비타민 U 풍부

생장점으로 미네랄 집중


가장 안쪽의 심지는 대부분 버려진다. 딱딱하고 질기며, 먹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심지는 생장점으로 양배추의 중심이자 성장의 출발점이다. 모든 영양이 이곳으로 모인다.



실제 연구(Kim, G.H.,2003)에 따르면 심지 부위는 겉잎보다 더 높은 비타민 U 함량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비타민 U의 전구체가 되는 메티오닌은 중간잎의 3배, 겉잎의 2배가 넘었다. 이는 비타민 U를 생성하거나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부위라는 뜻이다. 또한 메티오닌은 간 해독인 글루타티온 합성에도 관여한다. 항산화, 해독 작용으로 위장 건강뿐 아니라 간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식물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생장점은 세포 분열이 활발한 부위로 칼슘, 칼륨, 마그네슘 등 생장에 필요한 무기질이 응축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단단한 심지는 채소 육수에 사용하거나 갈아서 스무디로 먹는다. 데치면 쓴맛이 사라지고 단맛이 살아난다.


양배추 심지 미네랄 스무디
1. 양배추 심지 및 중심 잎맥 (줄기) 포함 150 그램 (심지는 작게 자르고 데치면 단맛이 증가)
2. 사과 1/2개 바나나 1개 (기호에 따라)
3. 물 2컵
4. 재료를 넣고 믹서기에 갈아준다.



중심 잎맥


내가 늘 먹기 싫어서 갈라놓았던 양배추의 줄기 부분은 중심 잎맥이다. 각 잎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두껍고 하얀 부분이다. 양분이 이동하는 주요 통로로 물관과 체관이 지난다. 영양소와 수분을 잎 전체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섬유질이 풍부하며, 칼륨,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두껍고 딱딱한 식감으로 그냥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잘게 썰어 요리에 넣거나, 갈아서 스무디로 마신다.


양배추 편식에서 배운 철학

양배추 줄기를 피하려다가 시작된 나의 편식은, 결국 양배추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다. 내가 싫어했던 그 중심 잎맥 부분도, 쓰레기통에 버리기만 했던 양배추 심지도 사실은 각각의 영양학적 의미와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그게 싫었을까.


돌이켜보니 단순했다. 불편했고, 거슬렸고, 내가 원하는 완벽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양배추의 거친 겉잎은 햇빛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이었고, 양배추를 가르는 두꺼운 잎맥은 양배추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이었다. 버리고 싶었던 심지는 모든 영양이 모이는 창고였다.


싫어했던 것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려워하거나 피하고 싶어 하는 경험들, 불편해서 외면하려는 관계들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각각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양배추의 거친 겉잎, 피하고 싶은 두꺼운 잎맥, 버리고 싶었던 심지처럼 불편하다고 그냥 지나치면 될 일이 아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싫어하고 피하기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본다. 내가 피하고 싶어 하는 것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도 혹시 양배추 잎맥처럼 겉과는 달리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도 삶에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라고.



양배추 편식의 끝에 서서

이제 양배추 한 통 사도 어디부터 먹을지 고민 끝이다. 양배추를 자세하게 알고 나니, 양배추를 더욱더 편식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편식이다. 각 부위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받아들이며, 버려지기 쉬운 것까지 소중히 여기는 건강한 편식이다. 겉잎부터 심지, 중심 잎맥까지, 양배추 한 통을 야무지게 먹는다.


당신에게도 나처럼 양배추 중심 잎맥 같은 것이 있는가?


피하고 싶고, 불편하고, 왜 있는지 모르겠는 그런 것들을 한 번쯤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그 안에 숨겨진 보물 같은 이야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Kramchote et al. (2012) Nutritional Quality Differences of Leaves in a Cabbage Head, Acta Horticulturae

Kim, G.H. (2003). Determination of Vitamin U in Food Plants. Food Science and Technology Research, 9(4), 316–319.

오늘 내용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https://youtu.be/O4EakzqiN6s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저를 계속 글 쓰게 합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 작가 소개 : 닥터 키드니

내과 전문의 & 워킹맘이다. SNS에서 내과 의사의 건강한 잔소리 채널을 운영하며 건강에 대해 잔소리한다. 저서로는 에세이 <봉직 의사>가 있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doctorkidney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OZtZEv_llHWQ0jLpmhVV5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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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doctorki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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