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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트러블러 필수템 유럽에서 온 김치 사우어크라우트

by 닥터 키드니
삶이 복잡해질수록 우리 장도 복잡해진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장 트러블, 그리고 내과 의사가 된 지금


중학교 시절, 시험 전날이면 어김없이 배가 아프곤 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친구 관계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마다 장은 예민해졌다. 나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병원에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시험 기간이면 복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들이 호소하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스트레스받으면 배가 아픈 이유는 명확하다. 장은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과 뇌는 신경과 호르몬을 통해 쌍방향 소통을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장을 예민하게 만들고, 반대로 장이 불편하면 기분도 덩달아 나빠진다.


스트레스 많은 세상, 장이 불편한 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장이 편안해질 수 있는 단순한 음식 처방이 필요한 순간이다.


의학 논문에서 찾은 음식 처방전

하루에도 몇 번씩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를 만나지만, 내가 환자들에게 하는 대답은 매번 비슷했다. "스트레스 줄이시고, 자극적인 음식 피하세요."


내 조언을 들은 환자들의 질문은 "그럼, 뭐 먹어야 하나요 ?" 였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증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음식을 찾기 위해 의학 논문을 찾았다. 그러던 중 최신 논문에서 반가운 소식을 발견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 34명에게 어떤 발효 식품을 6주간 섭취했더니 증상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였다. 사우어크라우트다.


양배추와 소금만으로 충분한 사우어크라우트

사우어크라우트는 유럽인이 사랑하는 채소 요리 중 하나로 일명 독일식 김치다. 사우어(Sauer)'는 독일어로 '시다', '크라우트(Kraut)'는 '양배추'를 뜻한다. '신맛 나는 양배추'로 한국의 백김치와 비슷하지만, 재료는 훨씬 단순하다.


한국의 김치는 배추와 마늘, 젓갈, 고춧가루 등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것에 비해, 사우어크라우트는 단순하다. 필수 준비물은 단 두 가지, 양배추와 소금만 있으면 된다.

양배추와 소금을 함께 치대면 발생하는 일

양배추는 원래에도 슈퍼 푸드다. 글루코시놀레이트, 폴리페놀, 섬유질,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다. 이런 슈퍼 푸드 양배추가 소금을 만나면 또 다른 슈퍼 푸드가 된다. 소금에 치댄 양배추는 시간이 지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몸에 유익한 유산균과 발효 대사산물(postbiotics)이 탄생한다.


사우어크라우트, 유산균 폭탄을 넘어 '발효 대사산물 폭탄'

이때 살아있는 유산균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이 남긴 유산물(postbiotics, 포스트바이오틱스)로 발효 대사산물이다. 단일 유산균보다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장벽을 보호하고, 염증성 사이토카인에 의한 손상을 막아준다. 사우어크라우트의 발효 대사산물 핵심 성분들은 다음과 같다.


D-PLA (phenyllactic acid): 장 점막을 나쁜 균으로부터 보호한다.

ILA (indole-3-lactic acid): 장내 염증을 진정시키는 천연 소방관 역할을 한다.

GABA: 긴장한 장을 이완시켜 주는 안정제다. 장-뇌축을 조절할 가능성도 있다.

젖산: 장내 pH 조절해 좋은 균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과학이 말해주는 사우어크라우트의 효과

장건강에 좋은 사우어크라우트


1. 과민성 장 증후군 증상 완화 (Nielsen et al., 2018)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 34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는 다음과 같다. 하루 75 그램의 사우어크라우트를 6주간 섭취했을 때, 과민성 장 증후군 증상이 개선되었다.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도 증가해 장이 튼튼해졌다. 유산균이 살아있는 사우어크라우트뿐 아니라 익혀서 사멸된 사우어크라우트도 효과적이었다. 이는 유산균뿐 아니라 그 발효 대사산물이 중요함을 알리는 결과이다.


2. 장점막 보호 (Wei & Marco, 2025)

염증성 사이토카인에 의해 장이 손상되었을 때 사우어크라우트는 장 손상을 방지했다. 이는 생 양배추나 소금물에는 없던 보호효과였다.


3. 혈청 단쇄지방산(SCFA) 증가 (Schropp et al., 2025)

8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4주간 매일 사우어크라우트를 섭취한 결과, 일부에서 장내 단일 박테리아 종의 변화가 관찰되었다.


장이 건강해지면 몸이 튼튼해진다.

사우어크라우트가 장건강에만 좋은 건 아니다. 장이 좋아지면 면역력도 개선되고 암을 방어하는 능력도 얻게 된다. 사우어크라우트에 관한 리뷰 논문에 의하면 슈퍼 푸드로서의 이 음식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4. 면역력 강화

유산균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해, 면역세포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5. 항산화 & 항염 효과

비타민 C, E, 페놀 화합물은 활성산소를 중화하고 염증 반응을 낮춘다.


6. 항암 작용

양배추 속 글루코시놀레이트가 발효되며 생성되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 아스코르비겐 등이 암세포 억제에 기여한다.


나의 사우어크라우트 도전기:

양배추 사우어크라우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년 전 첫 도전 후 실패했었다. 너무 짜기만 한 맛에 억지로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다시 만들 때는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원리를 알고 나니 그때 내가 왜 맛없는 양배추 사우어크라우트를 만들었는지 깨달았다. 그때 나는 소금의 양을 대충 넣었고, 발효되기까지 충분히 기다리지 못했다. 그래서 깊은 맛 대신에 그냥 짜기만 한 신맛 없는 양배추 크라우트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많은 양을 만들지 않고 500그램, 1 KG 씩 소량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식탁 옆에 두고, 한 번씩 어떻게 발효되는지 지켜보면서, 한 번씩 맛도 보았다. 그러다 진짜 내가 원하는 맛이 되었을 때 냉장고에 넣어서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다. 마침내 적절하게 신맛 나는 양배추 사우어크라우트가 만들어졌다.


이제 나는 양배추 사우어크라우트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샐러드에 드레싱 토핑으로, 수프 먹을 때 피클 대신, 토스트 위에 토핑 재료로, 김밥에 단무지 대신 활용한다.


실패하지 않는 핵심 포인트

양배추가 완전히 국물에 잠기도록 꾹꾹 눌러주기

소금은 정확히 2% (1kg당 20g) 지키기

발효 중 매일 한 번씩 상태 확인하기


장이 예민한 당신을 위한 단순한 음식 처방전

유럽식 김치 사우어크라우트 만들기

난이도: ★(하)

소요 시간: 준비 30분, 발효과정 상온 기준 3~7일


✔ 재료

양배추 1kg

소금 20g (양배추 무게의 2%, 약 2큰술)

김치통 또는 유리병, 누름돌 (누름 접시)

✔ 만드는 법

1. 양배추를 곱게 채 썰어준다.

2. 소금을 넣고 10분 이상 박박 문지른다.

3. 국물이 나오면 그대로 통에 꾹꾹 눌러 담는다.

4. 양배추 겉잎으로 공기 접촉을 차단하고, 누름 접시로 눌러준다.

5. 뚜껑을 덮고 상온에서 5~7일 발효시키면 완성!


TIP: 국물은 유산균 배양액! 버리지 말고 꼭 같이 담아둔다. 발효가 진행될수록 신맛이 강해지므로 기호에 맞게 조절한다.


보관 & 유통기한은?

발효 완료 후 냉장 보관 시 3-6개월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더 깊어지고 유산균도 안정화된다.


사우어크라우트 응용 레시피

샐러드에 드레싱 토핑으로

수프에 피클로

빵 샌드위치 토스트 위에 토핑 재료로

김밥에 단무지 대신


이런 분들에게 추천

과민성 장 증후군, 복부 팽만, 변비가 잦은 분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속이 더부룩한 직장인

항생제 복용 후 장내균총 회복이 필요한 분

면역력 약해 감기 자주 걸리는 분

매운 음식 못 먹는 어린이, 노인

가볍지만 포만감 있는 식사를 원하는 다이어터


삶이 복잡할수록 단순한 음식이 필요하다. 진료실에서 "뭘 먹어야 하나요?"라고 묻는 환자들에게 이제는 양배추로 만든 사우어크라우트를 추천한다. 복잡한 치료법보다 때로는 단순한 음식 하나가 더 큰 위로와 치유를 가져다준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장이 예민해진다면, 양배추와 소금이 만든 이 단순한 조합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환자에게 처방하기 전에 내가 먼저 경험해본 이 작은 음식 처방전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오늘 내용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https://youtu.be/0 QK5 DD5 kL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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